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훈련일지)

ITF 934일차- 나도 예전엔 그랬었지.

by Aner병문

오전반으로 다시 복귀해보니 이미 계시는 사제사매들, 선생님도 계시지만, 새로 찾아오신 분들도 많았다. 특히 ITF에 대한 열정이 넘치시어 사범님께 직접 개인 훈련 신청을 하고 정기적으로 배우고 계신 흰 띠 사제님도 계시었다. 태권도뿐 아니라 모든 무공, 기예가 다 그렇듯이 처음에 몸이 익숙하지 않으면 힘이 과히 들어가거나 반대로 힘이 너무 들어가지 않아 이도 저도 아니게 되는 경우가 많다. 완성된 형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도 모르며, 그저 지도자 하나만, 파도 사이 등대 불빛처럼 바라보며 막연히 바라고 훈련해야 하는 때가 바로 이 흰 띠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 흰 띠에게는 항상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먼저 제대로 서고 걷고 뛰고 숨쉬는 법부터 가르친다. 어떤 무공을 가르치든, 어느 도장이나 체육관도 비슷할 터이다. 특히나 급/단 제도가 있는 무공 같은 경우에는 단계별로 차근차근 기술을 익혀 올라가야 하므로, 오로지 링 위에서의 승패만을 나누기 위해 낱개의 기술을 우선적으로 분할하여 익히는 현대식 종합격투기 등과는 다소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사범님이 흰 띠 사제를 잠시 지도하시다가, 전 부사범은 태권도 배운지 8년 되었어, 거의 쉬지 않고 매일매일 훈련을 하지, 그래서 지금 검은 띠도 되고, 부사범도 하고 그러는거야, 라고 말씀해주시었다. 그 때 나는 아연하게 예전을 떠올렸는데, 나 역시 나보다 훨씬 빠르게, 한두 달만에 쭉쭉 승급하여 치고 올라가는 젊은 사형제들을 보며 부러워하던 생각이 난다. 그 당시 나이 서른, 나는 20대가 지나면 프로와 아마추어를 막론하고 기예의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더군다나 태권도의 기술이 과연 내 몸에 맞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기술 수련은 태권도의 한 부분일뿐, 태권도를 삶의 일부로 끌어들이는데 나는 8년의 세월을 썼다. 심지어 태권도를 하지 못할 떄에도 나는 태권도 생각을 자주 했다. 내가 태권도를 잘해서도 아니고, 태권도를 생업으로 삼아서도 아니다. 그냥 책을 읽듯, 술을 마시듯, 교회를 가듯, 하고 싶었고,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태권도를 좋아해서 끊임없이 곁에 있었기 떄문에 나는 예전보다 나은 실력을 가지게 되었다. 나보단 늦게 입문한 젊은 사제들이 색깔 띠를 매고 슬슬 어려워지는 손발 쓰임새를 배울 떄도 나는 계절이 바뀌어 새겨지는 도장 창문 아래에서 계속해서 싸인 웨이브의 걷는서기와 찌르기를 반복했었다. 그 세월들이 마치 전혀 없었던 듯 천연덕스레 행세할 수는 없으나, 사제들의 첫 훈련 등을 지켜보며 나도 몰래 옛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강 선생님과 다른 사제들의 3보 맞서기를 도와드리는 동안, 사범님이 슬쩍 다가오더니 속삭이셨다. 요즘 발차기 좀 잘 나오니까, 조금 만족하셧나? ㅋㅋㅋ 네, 사범님, 조오금은 만족하고 있습니다.ㅋㅋㅋ 발차기는 늘 어려우니까요..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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