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덧붙여서 쓰자면
저 멀리 인도에 계시는, 학식과 품위가 드높으신 강 선생님께서 친히 댓글을 달아주셔서 더 감사하기도 했는데(우리 딸 진지하게 인도에서 공부 가르쳐야 되나 고민하게 만드시는 장본인이기도 하다..^^;;) 일전에 신약 시대를 여는 선지자들의 이해하기 어려운 태생에 대해 새삼 의구심을 가진 바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남녀노소 막론하고 어젊어 고생한 영웅호걸은 많았어도, 태생 자체가 기구한 이들은 참으로 드물다. 저 석가모니 부처님 같은 경우에도 샤카 왕국의 왕자이자 문무를 겸비한 일세호한이셨고, 무함마드는 부와 미녀를 한 손에 거머쥐고, 강력한 율법과 반월도로 무장한 강병들로 사막을 호령하던 이슬람의 교조였다. 소크라테스는 그 극적인 사망에 비해 생년 및 삶이 정확치 않지만, 그래도 엄처 크산티페를 모시며 스스로 무장을 마련하여 시민권을 지키기 위해 참전할만한 재력과 무공은 능히 갖추었으며, 공부자께서도 비록 스스로 '야합에 의한 결과물' 이라고 자조하시듯 사생아로 나시긴 했으나 그렇다고 처녀수태나 저 포사마냥 육십이 넘은 궁녀의 몸을 빌어 나오지는 않으셨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위인들의 탄생은, 마치 신화나 전설처럼 극적이다 못해 과장되어 비현실적인 듯한 느낌까지 준다. 몇천년 후에 읽는 내가 그럴진대, 하물며 그 시대를 겪었던 이들이었을까.
지난 주일에는 오후 출근을 해야 해서 예배 중간에 몸을 빼야 했는데, 기본 예배 1시간 30분은 하시나, 우리 열정적인 목사님께서 그날따라 11시 30분부터 바로 본 설교를 시작하시었다. 평소에는 찬양도 여러 번 부르시고, 기도도 기신데다, 설교 또한 장장 1시간 가까이 진행되어 예배가 끝나면 거의 1시에 임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웬일로 설교 자체를 일찍 시작하시어 들어보니, 허, 내가 궁금하여 기도하던 내용과 아주 비슷하였다. 결론은 성경의 말씀을 믿고 따르라는 내용이시었다. 사실 대저 유일신 사상이란 것이 믿지 않는 이들이 보면 대단히 고집스럽다 못해 폭력적일 정도로 불통스럽기도 하거니와, 나 역시 어쨌든 고등교육을 받았던 사람이라 믿음이란 함부로 강요할 것도 아니요, 속세의 기준과 신앙이 서로 부딪히다보면 결국 서로 이해못할 어느 지점이 있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감히 이 곳에서 누군가에게 믿음을 불러일으키려 하거나, 나도 잘 알지 못하는 신학의 한 이론을 무슨 개똥철학마냥 길게 늘어놓을 생각도 없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어야 한다는 말씀은 참 가슴에 오래 남았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본디 사막의 목초지를 떠돌며 선지자의 계시를 받아 유목생활을 해오던 이스라엘 민족은 주변 강국들을 질시하다 못해 하나님을 조르고 졸라 마침내 왕국을 세우게 된다. 하나님께서 '왕은 너희들의 소유를 세금으로 빼앗을 것이며,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딸을 첩으로 삼아 더욱 힘들게 만들 것이다.' 라고 알려주셔도 그들은 그렇게 속세의 덧없는 엄정함에 더욱 눈을 빼앗겼다. 이스라엘 민족이 세운 왕국은, 예언하신 그대로, 서로의 분열로 북이스라엘-남유다 왕조로 갈라진 다음 숱한 왕들이 나고 스러지는, 이른비 열왕기의 시대로 들어서는데, 이 열왕기의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선지자 사제지간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그 유명한 엘리야와 엘리사다. 이들의 영험함은,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로마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져서, 훗날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주여, 나의 주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외치던 말씀이 마치 승천한 엘리야를 부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여하튼 이토록 온갖 신묘한 예언과 기적을 행하던 선지자다보니 심지어 믿음이 없는 이방인들조차 병을 고치고자 찾아오곤 했다는 기록이 잇는데, 그 중 하나가 아람의 장군이던 나아만이다. 위풍당당하게 전차부대를 몰고 온 나아만은, 오랫동안 피부병으로 고생했는데, 정작 엘리사가 그는 쳐다도 보지 않고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만 말하자 몹시 분노한다. '아니, 그깟 강이 내 나라에는 없어서 내가 이런 외국까지 찾아온 줄 알더란 말이냐!' 당장 돌아가자고 벼르던 장군을 말린 것은, 다름아닌 그를 모시던 시종이었다. '장군, 병을 고치기 위해서라면 그깟 강에 몸을 씻는일 뿐아니라 더한 일을 하라 해도 할 판인데, 몸을 일곱번만 씻으면 된다니, 이처럼 편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결은 좀 다르지만, 비슷한 내용은 예수님의 시대에도 전한다. 어떤 로마 장군이 혈루증을 앓아 예수님께 치료를 부탁하러 찾아오자 예수님은 냉랭하게 '믿음을 가진 자들도 내가 병을 고친다는 걸 믿지 않는데, 이방인인 장군이 나를 믿을 수 있겠느냐.' 는 식으로 말씀하시자, 장군은 뜻밖에도 '그러나 예수님, 저도 군대에서는 부하들을 부리는 몸이온데, 그들더러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옵니다. 하물며 제가 예수님의 명을 듣는 것이겠습니까.' 라고 대답하니, 예수님이 몹시 놀라 이스라엘에서도 이런 믿음을 보지 못했다고 칭찬하신다. 물론 두 장군은 모두 다 잘 나았다고 전해진다.
물론 앞서 적은 바와 같이, 신앙이나 믿음은, 설명되는 것이 아니요, 오로지 이해되고, 전해지고, 녹아드는 것이다. 다만 나는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내 안에 성령이 계시다면, 비록 술을 끊지 못할지라도 마땅히 믿으니, 이 믿음의 길을 잘 인도해주실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므로 목사님은 성경 창세기의 첫 말씀부터 믿어야 비로소 성경의 모든 말씀을 진실로 믿고 따를 수 있다고 하셨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만드셨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