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영화감평)

감독 박동훈, 주연 최민식,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한국, 2022.

by Aner병문

영화를 보다보면 의도야 알겠지만, 굳이 고전 명작의 제목을 빗대어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라고 붙일 필요가 있었을까 싶기도 하고, 사실 영화 제목과 설정에서부터 기승전결 대략 예측이 되는데다, 솔직히 전생의 충무공, 왕년의 세무공무원이자 건달(실례지만..어데 최씹니꺼?!), 한때는 위장경찰로 조폭을 잡으려 했던 늙은 형사 등을 열연하던 최민식 배우의 연기가 주축이 되어 끌고가는 영화라고 해도 솔직히 과언은 아니다. 그래도 미국 드라마 '넘버스'나 '박사가 사랑한 수식' 의 원작 소설과 영화를 모두 보기도 한 터라, 우리 나라에서 모처럼 순수 학문을 찬양하는 영화가 나왔는데, 어떤 내용인지 봐두고 싶기는 했다. 생각보다 일찍 OTT서비스에 풀려서 어렵지 않게 볼 수는 있었다.



영화 자체의 서사는 무난하다 못해 예상 그대로 흘러가며, 어떤 배역의 연기는 판에 박은 듯 밋밋하고, 또 어떤 배우의 연기는 도저히 서사나 설정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아 당혹스럽기도 하다. 다만 최민식 배우가 열연한 북한 출신의 천재 수학자 이학성이 나오는 장면들만은 그리 나쁘지 않았는데, '밑변이 12인데, 높이가 5인 삼각형의 넓이를 구하라' 는 문제 자체에 대해 생각하게 하거나, 수학을 즐기려면 먼저 수학과 친해져야 한다는 과정을 설명해주는 장면들 또한 좋았다. 나는 명심보감 강의를 하셨던 어머니의 밑에서 손가락이 휘도록 반복해서 쓴 상용한자 1,800개를 아직도 거의 다 기억하고 있고, 대단치 못할 실력일망정 태권도의 기초를 늘 되풀이하여 익히고 있다. 무엇과 친해지려면, 때로는 고된 수고도 감내해야 한다.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영화가 그려놓은 이른바 이 시대의 '멘토상' 에 대해 말해보고 싶었다. 내가 기억하는 '스승에 관한 영화' 는, 역시 젊은 날의 최민식 배우, 그리고 '아름다운 청년' 홍경인 씨가 열연했던, 그 유명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혹은 차인표 씨가 그야말로 '댄디한' 음악선생으로 나오고, 구리구리 양동근 씨가 거친 힙합 청소년으로 출연하는 '짱' 정도의 영화다. 이 때의 스승이란, 누구도 전문성을 의심할 수 없었고, 이미 '안정된 계급' 을 획득하고 있었기에, 십대의 치기어린 혼란과 학벌 경쟁에 힘들어하는 학생들과 어깨를 맞대고 공감해줄 수 있는 어른들이 '신세대가 요구하는 멘토' 상이 아니었는가 한다. (자의적인 해석을 곁들이느라 작은 따옴표를 너무 많이 써서 힘들다. '존 스미스' 마냥 서양식 이름조차 따옴표를 붙이는 옛날식 책 같아 ㅋㅋㅋ). 그러나 21세기 초는 수많은 멘토들이 수없이 출연하고, 또 의심받아 스러지고, 그 중 몇 명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전문가로 군림하기도 한다. TV에 많이 나오는 이들로 치자면, 요식업의 백종원 씨, 반려견 양육의 강형욱 씨, 유아교육을 넘어 가정생활에까지 영역을 뻗치는 오은영 씨(개인적으로 신뢰하지는 않는다. 어떤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방법이 반드시 옳고 그르다고 누가 정해줄 수 있단 말인가? 입맛조차도 서로 다른 세상에서.), 그리고 지금은 자취를 감추었으나 역사의 설민석 선생도 있었다. 거론한 바와 같이 이들은 자신의 영역에서 절대적인 전문성을 가진 이들이며, 사람들은 이러한 이들이 기꺼이 시간을 내어 누군가를 돌봐주고 알려주고 하는데에 깊이 열광하다 못해, 그의 위업을 등에 업고, 누군가 그들의 말을 듣지 않거나 예상 밖의 행동을 하면, 멘토의 위업을 대신 찬양하며 그 말을 듣지 않는 이들을 비난하기까지 한다. 그러므로 지금 시대는 너무나 많은 정보가 넘쳐나, 누가 진짜 전문가고 아닌지 알 수가 없으므로, 일단 절대적인 전문성을 지녀야만 비로소 멘토가 될 수 있다.



천재수학자 이학성은, 고등수학에 큰 업적을 세운 이이지만, 안타깝게도 대입과 취업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어울릴만한 수학에 익숙해지진 못했다. 그래서 그는 마치 파인딩 포레스터 나 굿 윌 헌팅처럼 비슷한 영화에서, 재능을 가졌지만 세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주인공들처럼 세상의 한 켠에 비껴나 있다. 일찍이 전국사공자 중 한 사람이었던 평원군은 천하의 평화를 지킬 스무 명의 수행원을 뽑았고, 이 중 모수가 스스로를 천거하던 모수자천의 고사에서 그 유명한 낭중지추라는 성어가 나왔다. 영화는, 이처럼 끝내 송곳처럼 날을 드러내는 천재에게 장면을 준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든 엄혹한 잣대로 검증된 전문성을 가진 이가 아니면 스승이 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과장되었을지 모르나, 시대의 변화를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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