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훈련일지)

ITF태권도 952일차 - 사실 실력이 쉽게 늘지 않는다.

by Aner병문

그래도 아내의 배려로, 일주일에 웬만하면 이틀 도장을 가는 것 이외에도, 바깥 날씨가 일기예보와 달리 흐릴지언정 비가 오지 않는 날이 많아 어찌어찌 옥상도장에서 모기 뜯겨가면서도 늦은 밤이나 신새벽에 땀 흘려가며 두어 시간 훈련에 매진할 수 있다. 사형제 사자매들과 글러브 끼고 맞부딪히는 호사까진 바랄 수 없어도, 두세평 널찍한 공간과 도복만 있으면 맨발이 시커멓도록 틀 연습과 보 맞서기 연습을 하고 근력 단련과 유연성 훈련까지 내 몸무게를 이용해 남부럽지 않게 할 수 있다. 술이야 때되면 마시니 훈련량으로 살이 더 찌지 아니하고 유지되며 체성분이 바뀌고 신체 능력이 다시 좋아지고 있는 점에 위안 삼아야 할터이다. 다만 그래도 실력이 좀처럼 쉽게 늘지는 않는다. 한때 꽤 고당 틀의 발 들어 반 바퀴 돌리는 동작이 그럭저럭 올라가는 듯하여 위안삼았는데 요즘 날이 궂어 관절이 쑤시는데다가(농담 아니고 진짜다.) 음주 후에도 훈련을 쉬지 않아 피로가 쌓였는지 발을 잘 들어올리질 못하겠다. 그래도 가슴 높이까지는 어찌어찌 예전과 다르게 비교적 빠르게 발을 차긴 하나, 벌써 부사범으로 승격한 콜라 사매, 햄버거 사매를 비롯하여 몇몇 중간 단계의 색깔 띠 사제들은 본디 WT태권도며 킥복싱, 무에타이 등도 어느 정도 하고 왔고 해서 이제 내 정도의 실력으로는 움직임을 잡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흔히 짬밥이 있다고들 하지만, 진짜 젊고 힘세고 빠른 사제들에게는 그 역시도 통하지 않고 무색하다. 원래 무공의 세계란, 혹세무민의 요설이 통하는 곳이 아니다. 오직 피땀 흘려 단련한 근골끼리 부딪혀 실존이 남는 세계다.



작가의 이전글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