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영화감평)

다시 한번, 감독 벤 에플렉, 아르고.

by Aner병문

감독 벤 에플렉. 주연 벤 에플렉(다른 배우들도 연기를 잘하셨지만, 서사의 축은 거의 벤 에플렉이 가져가서 다른 주연을 꼽을만한 이가 없다.), 아르고, 미국, 2012.



충무로의 90년대를 휘어잡았던 젊은 배우 이정재와 정우성처럼, 미국의 할리우드 역시 풋풋한 두 젊은 청년 맷 데이먼과 벤 에플렉에 주목하던 시절이 있었다. 국내의 영화잡지 기사가 지금도 기억에 선연한데, 굿 윌 헌팅으로 상품성과 연기력을 모두 인정받은 맷 데이먼이 점점 작품성이 높은 예술영화에 몰두하는데 비해 벤 에플렉은 진주만이나 기타 블록버스터 영화로 눈을 돌려 선택이 다른 두 배우의 미래가 궁금해진다는 내용이었다. 과연 그런지는 지금도 알 수 없으나, DC 영웅물의 대표격이기도 한 배트맨 역을 훌륭히 젊은 로버트 패틴슨에게 넘겨주는 역할을 한 벤 에플렉은, 사실 감독으로도 상당한 연출력을 돋보였다. 미국 현대사 및 각종 환경, 인권 운동 등에도 관심이 많기로 유명한 조지 클루니가 제작한 아르고ARGO 역시 그가 연출한 감독 중 작품성을 널리 인정받았다.


영화의 서사는 모가디슈와, 그리고 그 연출 방식은 공작과 비슷하다고 해도 크게 무리는 없다고 본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호언했던 군함도에서 처참한 혹평과 흥행 실패를 맛본 류승완 감독은, 모가디슈 에서는 욕심을 줄이고 명배우들에게 장면과 서사를 고루 나눠주며 균형 있는 연출을 뽐내는데, 아르고는 모가디슈처럼 이국의 대사관에서 탈출해야 하는 이들의 실화를 다루었으나, 격렬한 탈출극이나 격투 장면을 넣는 대신에, 마치 윤종빈 감독의 공작, 혹은 토니 스콧 감독의 스파이게임(2001년작, 명작 중의 명작이다.) 처럼 진중한 대화와 엄혹한 배경을 교차하여 배치하면서도 결코 지루하지 않게 서사를 몰고 나간다. 사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재미는, 차라리 영화라고 해도 믿지 않을만한 CIA의 놀라운 작전 내용 자체에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 유명한 호메이니가 꾸데따로 집권한 1970년대의 이란에 억류된 6명의 미국 대사관 인질을 구출하기 위해, CIA의 탈출 전문가 토니 멘데스는 실로 황당무계한 작전을 펼친다. 몰래 자전거와 지도를 주어 유럽의 국경에서 접선하자는 작전도, 이미 입국한 영어 교사나 농경 전문가로 위장시켜 출국시키자는 그럴듯한 작전들도 모두 무시한다. 그도 그럴것이 '탈출 작전이란 아무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계획하고, 명령하면서, 정작 자신이 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만들수는 없고, 당사자들이 탈출을 잘 하도록 빌수밖에 없는 일' 이라고 잘라말하는 토니 멘데스는, 과연 CIA가 자랑하는 탈출 전문가답게 이미 이란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이란 내의 영어 학교는 폐쇄된지 오래고, 건조한 사막의 겨울에는 농경 전문가들이 살펴볼 농작물 자체가 없으므로 위장이 들킬게 뻔햇다. 겨우 캐나다 대사관의 배려로 그 관저에서 숨어 머물고 있는 책상물림 외교관들이 겨울길 산맥을 몇 시간이고 자전거를 타서 탈출하기란 애시당초 무리였다. 그럼 대체 자네는 무슨 대안을 갖고 있느냐며 반박하는 관료들을 향해 미국 굴지의 탈출 전문가가 내놓은 작전은, 다름아닌 영화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때는 혹성탈출, 스타워즈 등을 비롯한 각종 SF영화가 황금기를 이루던 시대. 그 잔혹한 호메이니조차도 늘상 포르노만 틀어주던 이전 정부의 영화 정책을 비판하며, 종교 위주의 영화 이외에도 다양한 문화로서의 영화 게시를 장려하던 바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영화를 찍자니? 토니 멘데스의 주장이란, 정말로 영화를 찍는 것처럼 광고도 만들고, 회사도 차리고, 대본 낭독회도 기가 막히게 가져서 전 세상을 속인 다음, 이란에 숨어 있는 6명의 인질들을, 마치 며칠 전에 입국했다가 함께 돌아가는 영화 제작진들처럼 위장하여 빠져나오자는 것이었다. 대담하다 못해 기상천외하고, 황당무계한 작전에 사람들은 모두 경악한다.



액자식 구성처럼, 영화 속에서 영화를 만드는데, 그 영화가 사실 진짜로 만드는 영화도 아닌, 그 기묘한 상황을 관객들을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아야 한다. 즉 영화 속 현실에서 우리는, 영화 바깥의 영화가 어떻게 기능하는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저 악랄한 히틀러나 무솔리니 또한 영화의 정책적 기능을 잘 알고 있어 누구보다 활용하던 이들이었고, 발터 베냐민은 이미 오래전에 영화로 대표되는 대중문화의 강력한 상징성- 메타포에 주목했었다. 좌우간 포스터도 나오고, 신문 광고도 나오고, 정말 기자 회견을 열어 왕년의 배우들과 함께 대본 낭독회까지 갖는 현장에서 그 누구라고 이 영화가 나오지 않는다 의심할 수 있겠는가. 다만 오랫동안 신산한 고생을 하며, 이 작전은 실패할거라고 두려움에 질린 6명의 인질들과 또한 누가 이런 말도 안되는 작전을 기획하고 승인하냐며 화를 내는 관료들 사이에 몇몇 동료들을 이끌고 인질들을 돕기 위해 분투하는 토니 멘데스의 움직임이 가엾고 조마조마할 뿐이다. 그러므로 벤 에플렉은 스스로 감독하며 주연을 맡아 서사의 많은 부분을, 그의 일거수 일투적을 보이는데 아낌없이 소비한다. 또한 마치 비딸리 만스키 감독의 '태양 아래' 처럼, 엄혹한 독재 체제 아래서 걷잡을 수 없는 폭력과 증오로 빠져들어가는 이란의 모습과, 꿈과 희망을 가지고 마치 제작되는 양 보이는 영화의 모습을 대비시키면서, 사람들은 영화와 현실을 어찌 구분해야 하는지 묘한 혼란에 빠진다.



분류 혹은 구별은, 힘을 가진 자만이 실행할 수 있는 대표적 정치적 행위라고 배워 왔다. 그 것은 단순히 태권도나 혹은 근골로 뿜어내는 물리적 폭력 등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당시의 이란에서는, 미국인과 미국인이 아닌 사람, 이슬람과 이슬람이 아닌 사람, 죽어도 될 사람과 그 것을 판단하는 사람 등으로 나뉘어 온갖 분류와 구별이 횡행하였을 터이다. 관객들은 구별을 목도한다. 영화는 관객과 영상을 구분짓게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우리는 과연 영화를 보고 나서도 이 현실이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르고는 다행히도 폭력의 세상에서 빠져나온 6명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나, 극장 바깥 세상은 더욱 큰 폭력으로 치달아가고 있는 듯하다. 공무원이 제 동료를 칼로 베고, 옆 나라의 전직 총리는 빨간 대낮에 총을 맞아 운명을 달리했다. 나는 도장의 사형제 사자매들에게 늘 퇴로를 확보하고, 상대의 손발을 눈으로 보며 물러나라고 알려주고 있다. 이 세상에서는 그러나 도망갈 곳이 없다. 가끔은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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