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우중탐험 - 비오는 날, 토포키(Toppoki) 원정대

by Aner병문

아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몇 가지 있다. 과일 중에는 산딸기를 제일 좋아하고, 음식 중에서는 경상도 사투리로는 빡빡장이라고 부르는 강된장에 호박잎을 쪄서 싸먹거나, 오이소박이를 좋아한다. (어머니는 하필 손이 제일 많이 가는 음식이 며느리 입맛에 맞는다며 웃으셨었다.) 간식 중에서는 떡볶이를 제일 좋아한다. 어느 정도로 좋아하냐 하면 여자의 소울푸드란다. 하여 임신했을때부터 몇 번 안양 주변을 쏘다니며 아내가 좋아할만한 떡볶이집을 물색했지만, 웬걸, 내 어린 기억에 엄격한 어머니 몰래 잔돈푼 모아 흰색 점이 알알이 박힌 녹색 접시에 비닐 씌워 담아주던, 뭉근하게 졸여진 떡볶이는 간데 없고, 웬 치즈며 중국당면, 소시지에 달고 끈적한 소스를 잔뜩 발랐거나, 매운 가루만 잔뜩 뿌려 내놓고는 배달비 포함하여 이삼만원 훌쩍 넘는 음식을 떡볶이라고 파는 곳만 남았다. 나도 어데 가서 술안주 잘하는 집이나 알지, 나이 먹고는 떡볶이를 좋아한 적은 별로 없어 떡볶이 잘하는 집은 별로 모르고 살았다. 그래도 아가씨 마음 아가씨가 안다고, 시누이 노릇한답시고 여동생이 언니 먹으라며 안양대교 근처에서 유명한 떡볶이 집에서 떡볶이를 사다주었다. 아내가 먹어보더니 옛날 그 맛이라며 그릇 바닥까지 핥을 기세였다. 내가 한 입 먹어보니, 조금 과하게 달긴 했어도 내가 싫어하는 밀가루 향도 많이 나지 않고, 적당히 매콤한 양념에 떡이 부드러워지도록 졸여서 과연 옛 추억을 떠올릴만한 맛이었다. 생각해보니 나도 어렸을때는 어머니 몰래 떡볶이나 떡꼬치를 몰래 사먹곤 햇었는데, 언제 입맛이 변했는지 이제 떡볶이, 특히 기름에 튀겨 초장 발라 이쑤시개에 꽂아 내놓는 떡꼬치는 입에 가까이 하지 않은지 오래 되었었다. 아마 질이 좋지 않은 밀가루로 빚은데다 오래된 기름에 튀긴 떡꼬치 때문에 나도 모르게 제법 역하게 느껴진 모양이다.



화요일 목요일은 별일 없다면 도장에 가야 하므로, 오늘 아내에게 퇴근길에 떡볶이를 사다주기로 약속했었다. 아내가 좋아하는 떡볶이 집은 안양역 바로 아래에 있으므로, 집까지 한번에 가는 버스를 타지 않고, 2호선에서 1호선으로 지하철 노선을 갈아타서 쭉 내려가면 되겠구나 생각했었는데, 아뿔싸, 미처 몰랐었다. 그 동안 매번 일기예보를 비웃듯이 쩅쩅하던 햇살 때문에 방심한 탓일까, 회사에서 내내 일할 동안 이미 인천에서는 폭우에 나무가 넘어가고, 오후 4시부터 광명역은 빗물에 잠겨 운행을 중단했으며, 처자식이 있는 안양천에서는 물이 넘어와 노상 주차장을 쓰지 못하고 도로에 차를 다 대어두는 바람에 차라리 차도에서 사람이 걸어다니는 편이 낫겠더라며 아내는 웃고 말았다. 아내 역시도 집 곳곳 물이 새어 '어머이가 이래 집을 허술히 짓지 않으셨을 낀데..' 하며 창문 새를 살펴보니 모기 들어오지 말라고 튼튼히 덧대놓은 방충망 새로 물이 빠져나가질 못해 창가에 물이 잔뜩 고여 있어 결국 방충망을 다 빼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하여 그러한 사정을 모르던 나겠는가. 광명역 뿐 아니라 옛 가리봉- 가산디지털단지부터 금천구청역까지 선로 곳곳에 물이 들어와 안 그래도 출퇴근길 혼잡키로 악명높은 신도림-구로부터 안양까지 내려가는 길마다 사람들은 엉켜 미어터지고, 지금 선로로 들어와도 된다고 신호가 떨어져야 비로소 지하철은 출발할 수 있으니, 역마다 오래 정차하여 이미 모두들 땀범벅인 몸을 서로 비벼댈수밖에 없는데, 무색한 코로나 방지 방송이 울려펴지는 사이로 지하철 지붕 새로 빗물까지 뚝뚝 떨어지니, 오죽하면 누군가 혀를 차며 '진짜 가지가지 한다.' 혼잣말 할수밖에 없지 않앗겠는가. 게다가 중간에 응급환자까지 기어이 발생하여 잠시 정차했으니, 이미 그깟 구로디지털단지에서 안양까지 오는데 약간 과장하여 한시간 삼십분이 걸렸다. 나머지 삼십분은, 호떡집에 불난 것도 아닌데, 이 폭우를 뚫고 또 기어이 이 집 떡볶이를 먹어야겠다는, 사람들이 어찌 줄을 서 있는지, 그 이름도 다정한 '커플 한상' 차림에 왕새우튀김 2개 추가해서, 집에 겨우겨우 돌아오니 이미 퇴근한지 두 시간이 넘은 시각, 빗물과 땀에 젖은 몸을 씻은 뒤에야 나는 고량주 반 병에, 아내는 사이다를 곁들여 마시고 비로소 맥이 탁 풀렸다. 정말이지 이번의 떡볶이, 아니, 가끔 도장의 외국 사매들이 말하듯이 토포키 원정은, 학교 다닐 무렵 심한 폭설로 서울역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던 바로 그 떄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아내가 맛있게 먹고, 또 딸이 순대가 먹고 싶어서 순대를 자꾸 달라며 입술을 오리처럼 내밀고 뽀뽀를 해줄테니 빨리 순대를 잘라서 입에 넣어달라며 애교를 부리는데 그 행복을 어찌 이루 말할수 있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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