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훈련일지)

ITF 953일차 - 참을 인 3개면 살인도 면한다지만.

by Aner병문

퇴계 이황 선생의 고향,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를 자처하던 안동에서 일주일 내에 흉악한 칼부림이 두번이나 일어났다. 그 중 한 건은 나랏일 하는 공무원이 아무 죄없는 동료를 난자했기에 그 충격이 더욱 컸다. 미국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총기 사건이 일어나는데다 생각지도 못한 이웃 나라 일본에서까지, 전 총리가 사제 총기로 저격당해 사망하는 등, 갈수록 세상이 어찌 이리 흉악해지는지 모를 일이다. 오늘만해도 배달비가 비싸다며 택시 타고 식당으로 직접 찾아와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린 학생이 술에 취해 경찰차 위에서 방방 뜨며 스스로 촉법소년이라며, 누가 자신을 잡을 수 있겠냐며 난리를 피웠다 하니, 제아무리 어린 날의 치기라 한들 무엇을 어찌 받을 수 있나. 나 역시 서울의 변두리 동네에서 책만 읽던 배불뚝이 학생으로서, 기껏해봐야 체육복이나 줄넘기 심부름, 영어나 한자 숙제 해주기(그래도 어머니가 잘 안 사주시는 간식거리는 얻어먹었다 ㅋㅋ), 어쩌다 소풍 날엔 어머니가 챙겨주신 용돈 헌납(?!) 정도였는데, 그래도 그 당시엔 너 사는데가 어디냐고 해서 차비 정돈 남겨주던 좋은 풍습(?!!)도 있었다. 웃자고 하는 얘기지만, 또 어디까지나 내 스스로의 우스운 편견이지만, 내가 당하던 사람이긴 해도 그 당시엔 그래도 비교적 장난의 연장선상에서 어찌어찌 해석될 수 있었던 일이 아니었는가 한다. 내가 대학 생활을 시작할 무렵에 '빵셔틀' 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고급 패딩이며 휴대전화 빼앗는 일은 물론이고, 정기적으로 용돈을 상납받는 일까지 생기게 되어 참말 그 가학적인 조직력에 나조차도 모골이 송연하였다. 나야 어찌 운이 좋아 그 세대를 피해갔다지만, 갈수록 험난해지는 세상에서 살아가야할 우리 딸은, 또 우리가 준비할 둘째의 앞날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좌우지간 스무살때부터 꾸준히 각종 무공만 골라 배우기도 했고, 또 지금은 명색이 8년간 ITF태권도를 꾸준히 배우는 몸인지라, 또 그럴듯하게 몇 글자 올려놓은 이야기만 보시고 내가 굉장히 숙련된, 고명한 무예가인줄 잘못 아시는 분들이 있어 황감하다. 사실 나는 어디까지나 아마추어 취미의 아저씨일 뿐이며, 물론 아예 배우지 않은 분들보다 좀 더 체력이나 기술, 감각적인 면에서 낫기는 하겠으나, 한 무도의 본부 도장 (임시) 지도 부사범으로서 내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자면, 같은 실력을 지닌 사람이라면 어림도 없고, 끽해야 나보다 체격과 함이 좋은데 기술이 없는 사람을 상대로 적어도 시간을 끌 수 있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가 나보다 힘이나 기술이 월등하다면, 나는 제대로 그를 제압하기 어려울 터이다. 무공은 본디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상대하기 위해 만든 기술의 체계이기 때문에 당연히 기습적으로 급소를 타격하거나 꺾는 기술도 있으나, 그런기술을 함부로 쓰면, 내 사회적 생명은 끝장나겠지. 그래서 사범님도 그러셨거니와 나 역시 사형제 사자매들에게 항시 퇴로를 보면서 도망갈 준비를 먼저 하고, 상대의 공격이 속도를 타기 전에 먼저 막아낸 뒤에 도망치거나, 항시 어깨와 발을 모두 한 눈에 담아 전체적으로 보면서 움직임을 파악하라고 알려주었다. 정말 위급한 상황이 있다면 그때는 익혀둔 절초를 아낌없이 퍼부어야 하겠으나 도장에서 배운 움직임은 누군가를 먼저 타격하고 제압하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감히 말하건대, 사회가 갈수록 엄혹해지는 까닭은, 갈수록 우리의 육체가 가벼워지고 멀어지기 때문이다. 이제는 손가락 하나만 누르면 음식을 제 입 앞까지 배달해주고, 생필품도 문 앞에 쌓이는 시대가 되었다. 사회는 제 몸을 써서 스스로 땀을 흘리기보다, 다른 이를 로봇처럼 부려 편히 살라고 가르친다. 육체 노동뿐 아니라 스포츠나 격투기 등 역시 적어도 국내 상위권을 노리지 않으면 나머지 사람들은 호구도 하기 어려운 사회가 되어버렸다. 그러므로 제대로 몸을 쓰며 공방을 주고 받지 않고, 감정을 써보지 않은 소년소녀들은, 자신의 감정을 몸으로 올바로 표현하거나, 적정한 수준에서 치고 받는 법을 배우지 못하게 된다. 어렸을 때의 나 역시 늘 혼나기만 하고 맞고만 다녔기 때문에, 나는 사람을 친다는 감각이나 방법을 전혀 알지 못했고, 상대와 치고 받는 일 또한 건강한 관계를 만드는 방법 중 하나라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 도장에서 기술을 하나하나 쌓아나가면서, 나는 비로소 상대도 때리면 아프고, 몰리면 겁을 내는 나와 똑같이 평범하고 소심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늘 상대를 과대해석하고 두려워했기에, 나는 내 십대에 스스로를 온전히 내세우지 못했다.


말이 쓸데없이 길었는데, 그래서 오늘도 부지런히 훈련하고 왔다. 모처럼 사범님이 계셔서, 좀 더 시간을 내어 몸을 썼고, 늦게라도 온 밥 잘하는 유진이와 1보 맞서기를 맞추고, 십오분 간 맞서기 연습을 했다. 밥 잘하는 유진이의 타격은 늘 폭풍처럼 허리를 크게 틀어서 돌아오기 때문에 그 위력이 어마어마하다. 나는 밥 잘하는 유진이의 공격을 대각선 바깥으로 흘리면서 가볍게 가볍게 쳐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오랜 주방 일로 단련된 밥 잘하는 유진이의 손발은 방어를 한다 한들, 그 위로 꽂히듯 아팠다. 도장의 공방은 도장에서 끝내는게 제일 좋은 것이다. 도장에서 열심히 배우고, 경기에서 열심히 겪고 닦은 기술은 막상 거리에서 쓰려고 할 때의 위기감, 또한 쓰고 난 뒤의 불쾌감은 사람의 입맛을 늘 쓰게 한다. 철없던 이십대 시절에, 나는 나보다 뻔히 약한 이들과 기어이 증오를 불태워가며 미친 개처럼 싸우고 다녔었다. 가방에는 늘 술병과 동서양 고전과 도복과 갈아입을 속옷을 들고 다니면서, 늘 글러브와 도복에 긁혀 붉은 실금이 짝짝 간 얼굴로, 누구의 눈빛이든 하나도 무섭지 않다는 식으로 일부러 되받아주어가며 치고받곤 했었다. 세상에서 내 스스로 약하다고 광고하고 다니는 꼴이라는 사실을, 도장에서 오랫동안 도복을 입은 뒤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호랑이에게 싸움을 거는 이가 없듯이, 약한 이만이 스스로의 졸렬함을 자랑하며 강한 척 착각하고 산다. 호가호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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