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루틴, 영어

"이렇게 하면 영어 안 까먹어요."

by 이상민

지금보다는 조금 어렸을 때, 대학교 취업준비생 그룹 멘토링, 직무 멘토링 등에서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는 영어에 대한 것이었다.


"국문과 나오셨는데 어떻게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하세요?"

"영어 공부 어떻게 하셨어요?"

"영어를 어느 정도 해야 되는 거예요?"


한동안 잊고 있던 익숙한 질문,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이 최근에 다시 떠오르게 된 계기는 바로 커피챗이었다.


지금 회사를 다니면서, 나보다 똑똑하고 능력 있는 분들을 회사로 모셔오기 위해 다양한 채널로 커피챗이 가능하다고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고, 이에 따라 일주일에 1~2명 정도는 계속해서 다양한 포지션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내가 다니는 회사, 내가 근무하는 팀, 혹은 본인이 관심이 있고 지원하고자 하는 다른 팀과 포지션에 대한 내용으로 한 시간을 보내지만, 그중 아주 가끔,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자그마한 관심을 보이시는 분들이 있다. 우연히 내가 쓴 브런치북을 읽으셨거나, 혹은 링크드인 공유 내용을 보셨거나, 혹은 지인의 친구나 선/후배 등의 상황에서 간접적으로 나를 알게 되는 분들인 경우.


대부분 내가 했던 이직에 대한 경험, 이직의 이유, 목표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지만, 아주 가끔 영어가 어젠다가 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이때 이어지는 질문.


"지금 회사는 한국기업이니까 영어 안 쓰시죠? 지금까지 영어를 쓰는 환경에서 주로 일하셨는데, 영어 안 쓰게 되면 아무래도 점점 까먹지 않을까요?"


이런 질문을 받게 되면, 항상 대답을 고민하게 된다.

있는 그대로 말을 해주어야 할지, 아니면 허허 그러게요라고 웃으며 흘려보내야 할지.

하지만 고민을 하더라도 대부분의 대답은 사실 그대로 하게 된다. 이 사람이 '정말' 궁금해한다고 느낀다는 전제하에, 내가 어떤 루틴을 가지고 있는지.


- 출근을 위해 집에서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길에 팟캐스트 듣는다. 주제는 테크/비즈니스/리더십이고 모두 영어다.

-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삼성역으로 이동하며 Kindle로 책을 읽는다. 주제는 테크/비즈니스/리더십이고 모두 영어다. 가끔 LinkedIn Learning으로 변형을 주기도 한다. 주제는 테크/프로젝트이고 당연히 영어다.

- 도착역에서 내려서 사무실로 걸어가는 길에 다시 아까 듣고 있던 팟캐스트 이어서 듣는다.

- 퇴근을 위해 사무실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Kindle로 오전에 읽었던 책을 읽거나 혹은 LinkedIn Learning 이어서 듣는다.


물론, 로봇도 아니고, 피곤한 날도 있고, 책이 때때로 재미없을 수도 있으니, 그럴 땐 넷플릭스를 본다거나 게임을 한다거나 하는 경우도 물론 있다. 하지만 기본 세팅 자체가 위와 같이 되어 있다 보니, 일하는 환경이 바뀌었다고 해서 갑자기 영어가 내 일상에서 사라져 버리진 않는다. 이 세팅이 기록으로 남은 걸 찾아보기 위해, 브런치를 하기 전에 운영하던 네이버 블로그에서 Harvard Business Review를 구독하며 리뷰를 남겨놓은 걸 오랜만에 열어보게 되었다.


화면 캡처 2025-09-20 003440.png 내 블로그에는 책의 주제에 따라 여러 섹션이 있고, 그중 하나가 HBR이었다. 2012년에 시작했다.
화면 캡처 2025-09-20 003555.png 2012년부터 2016년까지는 매거진 구독으로 매거진마다 리뷰를 올렸고, 이후엔 매거진 구독을 멈추고 HBR 책으로 바꿨다.


보다시피 어찌어찌하다 보니 10여 년 동안 HBR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영어 원서를 읽는 습관은, 2025년인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아마도.

책을 좋아하고 책에 빠져있던 어린 시절.

단 하나의 장점도 없었기에 영어라도 잘해보려고 취업을 위해 발버둥 치던 대학생 시절.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 이직을 하면서, 항상 배워야 하는 상황에 있던 지금의 나.

이러한 부분들이 천천히 합쳐져서 작은 루틴을 만들고, 그 루틴이 점점 단단해진 게 아닐까 싶다.


다시 돌아와서.

커피챗에서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은 보통 영어를 나처럼 공부해서 익힌 분들이다.

해외대학 출신도 아니고, 어렸을 때 외국에서 살다오지도 않은.

한국에서 공부했고, 해외는 대학교 때 어학연수를 통해 몇 달 나갔다 온 게 전부.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 영어를 쓰지 않으면, 어렵게 공부한 영어를 조금씩 까먹지 않을까 걱정 혹은 고민하는 분들이다.


이 분들께 위와 같은 내용과 함께, '이렇게 하면 안 까먹어요'라고 웃으며 말씀을 드리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분들은 이 정도의 노력을 들일 필요가 없다고 느끼실 테고, 그게 100% 맞다.

이미 바쁜 일상에 굳이 또 하나의 스트레스를 지금 상황에서 더할 필요는 전혀 없다.


나에게 있어 영어는 '일'이 아니라 '즐거움'에서 시작된 루틴이었다. 내가 하는 일의 정답률을 높이고, 새로운 지식을 얻는 즐거움을 위해 꾸준히 반복했을 뿐이기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를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