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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민 Sep 14. 2024

100번의 이력서 60번의 면접 Part IV

Eastman Kodak의 한국 지사였던 Kodak Korea의 마케팅 인턴으로 출근을 시작한 나.

당연하지만, 인턴이 업무는 그리 어렵지 않다.


이런저런 자료들을 엑셀 파일에 정리하거나,

혹은 외부 행사가 있을 때 보조를 한다거나,

그게 아니면 그때그때 이 사람 저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하게 된다.


당시 내가 했던 업무는,

인쇄소, 출판소의 정보가 담겨 있는 이런저런 자료집들을 모두 보기 쉽게 엑셀 파일로 정리하는 것.

나중에 CRM으로 사용될 수 있을만한 엑셀 파일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만 하면 돋보이지 않을 거라고,

기회가 간절했던 나는 어떻게든 내가 할 일을 찾아내려고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루는 청소를 해주시는 이모님께서 아직 사무실에 출근하시지 않은 것을 눈치채고,

내가 직접 책상마다 돌아다니면서 쓰레기통을 비우고 있었는데,

마케팅팀 매니저분이 급하게 나를 회의실로 불렀다. (참고로,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인턴쉽을 제안해 주셨던 분은 인사팀 매니저였다.)


"상민 씨! 상민 씨가 그렇게 쓰레기통 비우고 다니면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겠어요??"

"... 네...?"

"팀에 필요한 일이 있어서 뽑았는데, 이렇게 쓰레기통 비우고 다니면 다른 사람들이 제가 상민 씨 꼭 필요한 이유도 없이 뽑았다고 생각할 거 아니에요!"


아하...

나는 분명히 어떤 방법으로든 회사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려고 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내 행동이, 팀 혹은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쓰레기통 비우는 것은 그만두고,

다시 열심히 엑셀 파일 정리하거나, 문서들을 복사해 오거나 하는 등의 일만 열심히 하게 되었다.


그러던 하루는, 코엑스에서 많은 기업들이 참석해서 본인들의 제품과 기술을 홍보하는 행사에,

Kodak Korea로 부스를 내고 참석하게 되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이런 행사는 인턴들이 가서 각종 힘쓰는 일과, 잠재 고객들에게 제품을 홍보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답답한 사무실에서 컴퓨터 안에 엑셀만 바라보고 있는 것보단,

이렇게 밖에 나와서, 왠지 진짜 직장인 같은 느낌으로, 수많은 멋진 기업들이 있는 곳에서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훨씬 더 큰 재미를 주었다.


총 이틀간 이어진 행사에서, 

난 계속 부스를 지키며 오는 방문객들에게 회사와 제품을 설명하고, 잠시 쉬는 시간이 있으면, 다른 회사들의 부스를 기웃거리며 '난 이러한 장소에 속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 노력했다.


별다른 일?

글쎄. 딱 하나 생각나는 게 있다.


한 나이 지긋한 외국인 방문객이 우리 부스에 와서 제품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며 이것저것 질문을 해왔다.

당연히 '친절하고 능력 있는 인턴'으로서 나는 최대한의 지식과 임기응변을 통해 그 방문객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기 위해 노력했고.


그 방문객이 자리를 비운 후, 나는 또다시 매니저에게 (바로 위 '쓰레기통 사건'에서 날 혼냈던 그분 맞다) 불려 갔다.


"상민 씨! 우리 경쟁사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나하나 다 알려주면 어떡해요!!!"

"...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 사람만 챙기는 동안, 다른 방문객들은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고 돌아가잖아요!"

"... 네, 잘못했습니다..."


하아...

나의 순진함과 어리석음을 탓하며 전시회를 마무리했다.


에피소드 또 하나.

위에서 언급했던 그 외국인 방문객은, 무슨 일인지 나를 다시 찾아와서 저녁에 시간이 되느냐고 물었고, 나는 흔쾌히 (왠지 모르지만 난 외국인들의 초대에 항상 열려있었다) 오케이를 외치고 그 사람을 따라나섰다.


... 그리고 이 사람은 나를 자신의 인터콘티넨탈 호텔 방으로 인도했고...

아.. 남자다... 여자가 아니었다... 참고로.


그 방 안에서 아무런 의미 없는, 게다가 재미도 없는 이런저런 이야기, 예를 들면 자신의 종교 ('지'로 시작하는 이름이었는데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하는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뭔가 재미도 없고 배움도 없다고 느낀 나는, 초대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며 호텔 방을 떠났다.


왜 초대했을까...?

시니어로서 주니어에게 자신의 경험과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열심히 일하고 있던 한 동양인 청년에게 흥미가 생겼던 외국인의 호기심이었을까?

그게 아니면... 이성이 아닌 동성인 나에게 관심이 있던 그런 분이었을까? (아.. 사실 호주 시드니 어학연수 시절, 간혹 백인 동성애자분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며 다가오던 경우가 있었다. 내가 살고 있던 곳이 동성애자분들이 많이 살던 동네이기도 했고.)


어쨌거나.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인턴쉽 기간이 끝나가고 있었고.

간혹 나를 혼내곤 했던 마케팅 매니저분은 나를 채용할 수 있는 TO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 보았지만,

결국 내가 바라던 그런 정규직 자리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다시 한번, 내 이력서에 두 번째 인턴쉽을 추가한 후,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그래도 인턴을 두 번이나 했으니.

이젠 조금 달라졌겠지라는 희망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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