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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민 Sep 17. 2024

100번의 이력서 60번의 면접 Part V

코닥에서의 인턴을 마치고, 

여전히 나는 이력서를 내면서 종종 면접을 진행하고 있었다.


나이키 operation 팀 계약직, 디아지오 총무팀, 닐슨컴퍼니 커뮤니케이션 계약직, 캐나다 상공회의소 인턴, 일본에 있는 한 회사의 마케팅 리서치, 외국계 의료기기 회사 등.


면접까지 가는 빈도는 조금 늘었지만,

여전히 면접에서는 전부 탈락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 투자진흥청에서의 인턴 면접 기회가 생겼고,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면접을 잘 봤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탈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얼마 뒤,

다시 한번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 투자진흥청에서 먼저 연락이 왔고,

다시 한번 면접을 보았고,

이번엔 합격했다.


나중에 안 사실은, 처음 면접 봤을 때, 나 말고도 나와 동갑인 한 친구가 최종 합격했고,

그 친구는 인턴을 마치고 정규직으로 전환.

추가로 인턴을 한 명 더 뽑게 되면서 나를 뽑게 된 것이었다. 


어쨌거나,

인턴이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대사관 근무 (네덜란드 투자진흥청은 우리나라로 치면, KOTRA 정도의 역할을 하는 네덜란드 정부 기관으로, 후에 네덜란드 대사관으로 합쳐진다)를 하게 되었고, 많은 외교관들의 일과 삶을 볼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네덜란드 외교관들이,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한국인 직원들 - 모두 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 홍보/농업/공업/무역 등 - 이 함께 협업하며 많은 일들을 진행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던 건 그 자체만으로 큰 기회였다.


네덜란드 투자진흥청은,

이미 수년간 국내에서 성공적으로 많은 비즈니스를 연결시켜 온 조직으로,

네덜란드인 투자진흥청장 한 분과, 그분의 한국인 비서분.

한국인 시니어 매니저 두 분. 그리고 위에서 말했던 나보다 앞서서 합격했고 정규직으로 전환된 친구까지 총 5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이 안에서 내 업무는, 그동안 내가 해왔던 인턴 업무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네덜란드에 진출할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회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해당 회사의 해외영업 팀장쯤 되는 사람과 통화할 수 있는 기회를 잡고, 그 사람의 컨택 포인트를 알아낸 후,

그 컨택 포인트는 CRM 프로그램에 저장, 그리고 네덜란드 소개 카탈로그 자료를 우편으로 만들어 매일 우체국에서 발송하는 일이었다.


하. 지. 만.

난 여전히 내가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로 인해 정규직 전환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고, 

이게 다시 한번 종종 문제를 일으키게 되었다.


하루는,

투자진흥청장님의 컴퓨터가 부팅이 안 되는 문제가 발생했고,

외부에서 A/S 를 받기에는 너무 느렸고,

어느 정도 컴퓨터에 이해가 있던 (=그 당시 일반적인 대학생 4년 졸업한 남자 수준 이해) 나는 직접 컴퓨터를 이리저리 만지작 저리며 10분 정도 시간을 거쳐서 부팅을 성공시켰다.

여기까지는 해피엔딩이었을 텐데.


"상민 씨,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컴퓨터를 만지다가 중요한 자료가 없어지거나 지워지기라도 하면 그건 더 큰 문제가 돼요. 조금 더 조심히 접근했었어야 해요."


라는 청장님 비서분의 코멘트를 받게 되었다.


... 청장님 비서분과는 왜인지 모르지만, 서로 거의 접점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위의 누가 보더라도 나와 그분이 불편한 관계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걸 우리 둘 다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번 코멘트도 그러한 불편한 관계에서 왔던 약간은 질투심이 있는, 혹은 멋모르고 설치는 인턴에 대한 따끔한 충고였을까? 


그 당시에는 전자라고 생각했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하려고 했었고, 임팩트를 만들어 내려했었고, 그러한 과정에서 기존에 조금은 자극 없이 일하던 분들에게는 불편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금은 전자일 수도 있지만, 후자의 이유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조직의 한국 수장인 분의 데스크톱을, 전문지식도 없는 상태로 이리저리 만지작 거리며 여러 번 재부팅을 하는 것을 보고 있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그리고 반드시 해야만 했던 코멘트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내 모든 시도가 이렇게 배드엔딩으로 끝났을까?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네덜란드 투자진흥청의 네덜란드 본사에서 CRM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진행이 되었고,

해당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본사의 IT 매니저가 한국에 방문해서 우리가 하는 업무를 보고 의견을 취합하고,

개선점을 찾으려 하는 논의가 있었다.


그동안 인턴 업무를 하며 느꼈던 여러 가지 불편사항들 - 어떠한 상황에서 어떠한 불편이 발생하고, 이게 실제 업무 속도/효율성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 을 공유하며, 이러한 것을 저렇게 바꾸면 업무가 더 쉬워질 것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 제출이 인턴에게 요청된 업무는 아니었다. 단지 업무 하다가 불편했던 것을 보기 좋게 정리하고 개선점을 이메일로 제안했을 뿐)


그리고 이 제안은 꽤나 좋은 평가를 받으며,

수 일안에 실제 시스템에 반영되어, 전 세계 시스템에 동시에 적용되었다.


뿌듯했냐고? 

물론이다. 무척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이 상황까지 오기에 내가 했던 업무는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업무 중에 느끼는 불편함, 갑자기 생각난 '좋을 듯한' 아이디어 등을 난 내 매니저들에게 계속해서 메일을 보냈었고, 대부분의 메일의 답장은 오지 않았다.

심지어 한 매니저는 회식 자리에서 이런 말까지 했었다.


"상민. 네가 보내는 메일의 90%는 나에게 스팸이야. 대충 읽어보고 넘기는 스팸메일이다."


다행히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그걸 멈추지는 마. 계속 메일을 보내고, 계속 아이디어를 만들어봐. 뭔가 하나 걸릴 수도 있잖아?"


그래서. 

스팸 메일 취급을 받으면서도 계속 미친놈처럼 이런저런 제안을 했던 나와.

스팸 메일이라고 말하면서도 그걸 멈추지 말라고 했던 매니저의 이해심.

그리고 인턴의 제안을 오픈마인드로 리뷰하고 받아들였던 IT 매니저의 시너지로.

이런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고.


이렇게 내 3개월간의 인턴쉽이 지나가고 있었다. 


--- 네덜란드 투자진흥청에서의 인턴은, 실제 정규직으로 업무를 시작하기 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었기에 두 편으로 나누어 작성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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