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대사관 투자진흥청 인턴 3개월을 보내는 동안,
난 여전히 많은 회사들 면접을 보고 있었고, 아직까지 정규직 포지션에 합격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 사이 마땅히 갈 곳이 없다면 인턴 3개월을 연장하는 것이 어떻냐는 제안을 받았고,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나는 감사하게 그 제안을 수락했다.
이번 인턴에서는 명함에 '인턴'이라는 타이틀을 없애고 '마케팅 리서치'라는 타이틀로 변경되었고,
월급도 조금 올랐으며, 한 달에 한 번씩 휴가도 쓸 수 있었다.
이 시점에서는, 이력서를 제출하면 대부분의 경우 면접까지는 갈 수 있었고,
서류전형에 합격하는 회사들도 그전보다는 훨씬 이름 있는 곳들이 많았다.
물류 - 케세이퍼시픽, 루프트한자 카고, 유코카캐리어스, FedEx
정부/산업 기관 - 유럽상공회의소 산업협력부, 주한필리핀대사관, 주한영국대사관
제약/의료기기 회사들 - 노보노디스크, 스트라이커
수입차 회사 - 크라이슬러, BMW 코리아, 메르세데스 벤츠, 포르쉐 코리아
금융 회사 - AIA 생명, 차티스, 라이나 생명
그 외에도 카네기연구소, 스무디킹, 삼정 KPMG, 페르노리카, MTV 코리아, 니베아 서울, IBM
면접에 가게 된 포지션 또한, 영업, 마케팅, 컨설턴트, 오퍼레이션 등 다양했다.
다시 말해, 내가 지원한 모든 회사, 직무라면 그리고 그 회사가 외국계 혹은 외국계 스타일로 보이는 곳이라면 모두 지원하고 있었다.
이때 면접 때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이 많아서, 몇 가지 풀어보자면.
1. 어떤 수입차 회사
어떻게든 면접에 대한 힌트를 얻고 싶었던 나는, 네이버 카페에서 이 회사 직원들이 가입되어 있는 동호회 카페를 찾아냈고, 가입은 하지 않은 채, 확인 가능한 직원분들에게 네이버 메일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 전 이번에 xx 회사 yy 포지션에 지원하게 된 이상민이라고 합니다. (중략) 반드시 xx에서 근무하고 싶기에 이곳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의 카페를 찾아와 이렇게 메일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바쁘신 줄 알기에 너무나 죄송한 마음으로 메일을 보내고 있습니다만, 조금의 시간을 내어주셔서 저를 도와주신다면 진심으로 감사드리겠습니다. (중략) 이 포지션에서 제가 어필할 수 있는 능력 혹은 어필해야만 하는 능력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중략) 구체적인 업무가 어떤 것인지도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중략) 감사합니다.'
몇 개나 메일을 보냈는지 모르겠지만, 세 분으로부터 답변을 받을 수 있었고, JD 보다는 조금 더 자세한 직무 소개, 회사의 분위기, 그리고 수입자 회사가 화려한 겉보기와는 달리 매우 힘들고 어려운 산업임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면접에 참석한 날, 면접관님이 바로 내가 보낸 메일을 받았던 사람 중 한 명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보통 이쯤 되면 합격해야만 해피엔딩이다.
그렇지만. 역시 난 이번에도 탈락하고 말았고 아쉬운 마음에 다음 면접으로 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비슷한 방법으로 IBM 지원할 때도 똑같이 직원분들에게 메일을 보냈고, 정말 자세하고도 도움이 되는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다만, 내 dream 회사였던 IBM 은 면접을 가기 전, IBM 입사 테스트에서 탈락했기에, 면접에서 어필할 수 있는 기회는 아쉽게도 얻지 못했다.)
2. 포르쉐 코리아
포르쉐 코리아는 마케팅 포지션에 면접을 보게 되었다.
일단, 나는 차가 없었고. 차에 관심도 크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럭셔리,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럭셔리스러운 회사의, 너무나도 럭셔리에 대해 잘 알아야 하는 마케팅 포지션에 지원한 상태였다.
인터뷰 중 나온 질문.
"상민 씨가 좋아하는 차는 뭐예요?"
"음... (머리를 엄청 구렸다. 차 이름이 생각나는 게 하나도 없어서) 소울이요! 기아 소울!"
당시에 출시된 지 얼마 안 되었던 기아 자동차의 소울이라는 차가 문득 머리에 떠올랐다.
"(ㅋㅋㅋㅋㅋㅋㅋ) 네 ㅎㅎㅎ. 그 차가 새로 나와서 마케팅을 한다고 했을 때, 어떤 방법으로 마케팅을 해보겠어요?"
당연하지만, 포르쉐의 마케팅 면접에서 기아 자동차의 소울을 외쳤던 나는 면접에 바로 탈락하고 말았다. (위에 있는 질문에 대한 내 답변도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굳이 여기에 쓸 필요가 없을 만큼.)
하지만, 여전히 나는 기회가 너무나도 간절했고.
내가 왜 떨어졌는지, 어떤 부분에서 방향성의 수정이 필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합격할 수 있는지 간절히도 알고 싶었다.
그래서. 면접 때 인사드렸던 HR 팀장님께 메일을 보냈다.
- 전반적으로 매우 적극적이며, 나름 일에 대한 욕심(나쁜 의미는 아님)이 많은 편임
- 인터뷰에 대한 준비를 매우 많이 함
- Ego가 강한 편이고 자기 자신을 인터뷰 중에 잘 보이려고 하다 보니 말이 너무 많고, 또 너무 빠르고, 잘 모르는 것도 아는 척하는 면이 있음.
- 자신의 경력에 대한 목표가 아직 구체적이지는 못함 (마케팅을 하고 싶어 하지만, 정확히 마케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느낌)
라는 key points와 함께, 아래와 같은 회신을 받을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보면 나쁘지는 않으나 선뜻 채용을 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있습니다. 그것은 너무 적극적이어서 오히려 전체적인 팀워크에 이슈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것은 좋으나 좀 더 자신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성숙한 면을 보여주는 것이 좋을 거 같습니다. 즉 너무 아는 체를 하지 않고 가정해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잘 모르는 것은 잘 모른다고 답하는 것이 더욱 솔직하게 보일 것입니다. 회사라는 곳은 톡톡 튀는 사람도 좋아할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무난하게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보다 선호됩니다.- 물론 회사마다 좀 다를 수 있겠지만…
아마 최종 면접에서 계속 안된다고 한다면, 앞으로는 좀 더 차분하게 천천히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회사에서는 신입사원이 해당 업무에 대하여 잘 이해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는 것은 별로 많지 않은데, 아는 체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별로 좋은 인상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즉, 너무 인터뷰를 잘 보려고 하는 욕심 때문에 그런 것이니 너무 집착하지 말고, 긴장을 풀고 인터뷰에 응하면 좋을 것입니다."
너무나도 감사하게도.
내가 지나친 부분, 부족한 부분, 그리고 어디를 개선하면 좋을지 등에 대해서 직설적이면서도 액션이 가능한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동시에 마케팅 포지션이 아닌 영업관리 포지션에 대해서 인터뷰 진행을 해볼 의사가 있는지 역제안을 받았고, 당연히 영업관리 포지션에도 지원을 했다.
다만, 이번에는 위에 지적받았던 부분들을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준비를 했고, 또다시 한 시간 정도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탈락했다.
이번에도 "적극적인 태도 및 열정에 대하여서는 매우 좋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오히려 그것이 과도한 느낌도 주기 때문에 오히려 왠지 신뢰감을 주지 못하는 느낌이었습니다."라는 피드백과 함께.
한 시간 면접동안, 지적받은 부분을 수정하려 많은 노력을 했지만, 결국 한 시간 내내 나를 다른 사람으로 포장할 순 없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나 자신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 있었고, 그 부분은 현재 지원한 회사와 포지션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 것이었다.
결국.
나는 다시 한번 탈락의 아픔을 느끼며,
네덜란드 투자진흥청의 인턴쉽 연장 3개월을 마무리하는 시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취업이 아니라,
보다 나은 스펙을 위해 MBA 혹은 석사를 갈 것인지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 선택지가 도피임을 인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