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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민 Sep 20. 2024

100번의 이력서 60번의 면접 Part VII

그래.

내가 취업이 안 되는 건 국문과 단일 전공으로 마땅한 스펙이 없어서일 거야.


네덜란드 투자진흥청에서 더 이상 인턴을 연장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또 한 번의 인턴 연장 제안을 받았지만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추천서를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국내 full-time MBA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국내의 유명한 대학교 MBA를 알아보고, 세종대-시라큐스 연계 MBA, 한양대 MBA, 서강대 MBA 등을 타깃으로 지원서를 작성해서 제출하면서도,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들어 계속해서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보던 중.


예전에 인턴으로 근무했던 Kodak에서 Operation Admin을 신규 채용한다는 공고를 볼 수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바로 당시 친했던 Kodak 인사팀 친구에게 메일을 보내어, 아직 오픈되어 있다면 지원해도 되겠냐고 묻고 바로 이력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그리고 면접 당일.

지난 인턴 때는 마케팅 팀으로 일했기에 Operation 팀과는 업무를 같이 할 일이 거의 없었기에,

팀장님 또한 직접 말씀을 나눌 일은 없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점수를 따야 하니.

자리에 앉아 인사를 드린 후.


"예전에 인턴 때 뵈었을 때보다 더 이뻐지신 거 같네요!"

"그래요? 고마워요.^^"


차근차근 면접 질문에 대답해 가면서, 좋은 분위기로 한 시간가량의 면접을 마치고 나왔다.


그런데. 뭔가 촉이 좋지 않았다.

왠지 이대로면 탈락할 것 같은, 그래서 또다시 기약을 알 수 없는 이력서 제출과 면접을 반복해야 할 것 같다는 불길한 느낌.


그래서 그날 저녁 바로 나를 소개하는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면접 때 의심쩍게 질문받았던 몇 가지 포인트에 대한 내 대답이 될 예정이었다.


"우리 팀은 전원 여성인데, 상민 씨 혼자 남자인데 잘 적응할 수 있겠어요"

: 여자가 대부분인 국문과를 졸업했고, 친한 친구들은 전부 여자이며, 여자 친구들을 위해 에블린 매장에서 섹시한 속옷을 골라줄 정도로 관계가 좋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아래 사진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습니다!


"꼼꼼한 스타일의 사람이 필요한데, 상민 씨는 어떤 사람이에요?"

: 아래 2개 사진을 보시면 알겠지만, 가계부를 작성해서 지출을 관리하고 있고, 인턴 중에 다른 분들로부터 받은 피드백을 모두 모아놓고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꼼꼼함과 더불어 발전의 의욕이 가득합니다!


"집이 잠실 근처인데 여긴 상암동이잖아요.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데 올 수 있겠어요?"

: 책을 워낙 좋아하고, 지금도 이동 중엔 항상 책을 읽습니다! 1시간 30분은 지루한 시간이 아니라 책을 읽는 즐거운 시간입니다!


그 외에도 모든 정성을 다해서 - 지금 보면 너무나도 촌스럽고 극악의 퀄리티지만 - 프레젠테이션을 만들어서 새벽에 급하게 제출하면서, 아래와 같이 코멘트를 남겼다.


'면접 때, 다 못다 한 이야기들을 담았습니다.'


다행히 프레젠테이션 파일 덕분이었는지, 인사팀 이사님과 최종 면접이 잡혔고, 나는 다시 한번 면접에 초대되었다. (나중에 알보고니, 팀장님이 인사팀 이사님에게 면접을 요청하면서 '이 친구 하는 말은 다 맘에 들고 맞는 말만 하는데,  뭔가 확신이 없다. 한 번 면접 봐보시라'는 코멘트를 남기셨다고 한다.)


이번에도 약 한 시간가량의 면접을 거치고, 마무리 단계에서 이사님이 물어보셨다.


"상민 씨가 지금 보여주는 자신감이, 면접을 위해 꾸며낸 자신감인지, 아니면 원래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인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잘 모르겠어요. 상민 씨는 어떤 사람입니까?"


잠시 대답을 망설이던 나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답변을 해야 했다.


"면접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고, 그리고 많은 면접 경험을 통해 자신감이 조금 더 생겼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본적으로 긍정의 힘을 믿고, 노력의 가치를 믿으며, 좋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희망을 믿는 사람입니다. 이사님께서 보시는 제 모습이 조금의 꾸밈이 더해진 모습일 수는 있지만, 제 본질 또한 긍정과 자신감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마지막 문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전화가 울렸다.


"네, 이상민입니다."

"상민 씨, 코닥이에요. 합격하셨다고 알려드리려고 전화했어요."

"진짜요???? 감사합니다!!!!"

"네, 곧 뵈어요. 즐거운 회사 생활 해봐요!"

"네! 감사해요!!"


전화를 끊고, 가장 먼저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힘든 취업준비생을 위해 술과 밥을 사준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렸고,

그동안 많은 조언을 주셨던 선배, 인턴쉽 당시 매니저분들께도 메일을 보냈다.


2008년 8월 졸업.

2010년 10월 첫 정규직 입사.


약 2년에 걸친 인턴쉽, 이력서 제출, 면접의 대장정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그토록 간절했던 단 한 번의 기회를 부여받으며.

이제야. 

남들보다 한참 늦은 내 커리어는 시작될 예정이었다. 

큰 희망, 그리고 기대와 함께.



취업 준비 중, 한 가지 에피소드.


마지막 인턴쉽을 마친 나는, 이력서 및 자기소개서 작성을 집에서 하고 있었다.

간혹 어머니 친구분들이 오실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나를 방에 두고 나오지 못하게 하셨다.

다 큰 아들이 취업도 못하고 집에 있는 게 부끄러우셨던 게지.

결국 어느 순간부터는 커피숍과 커피숍을 전전하며 취업 준비를 계속해가야 했다.


취업 준비 중, 또 하나의 에피소드.


당시 나는 마르티스를 10년 넘게 키워오고 있었고, 내가 힘들고 즐거웠던 모든 순간에는 그 녀석이 함께였다.

하루는 그 녀석이 몸을 못 가누며 아파하기 시작했고, 나는 급하게 동물 병원으로 데려가서 입원시킨 후, 집으로 돌아왔다. 수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서 궁금하던 나는 동물병원에 다시 찾아갔고, 나를 동물병원 원장님을 어쩔 줄을 몰라하셨다.


알고 보니... 내가 데려간 그다음 날 바로 그 녀석은 세상을 떠났고, 취업 준비에 힘들어하던 내가 더욱 감정적으로 힘들어할까보 걱정한 어머니는 이 소식을 내게 숨기시고, 동물병원에도 같은 부탁을 한 것이었다.


가족처럼 아끼던 녀석의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한 슬픔에 가득 찬 채 눈물범벅으로 집에 돌아온 내가, 어머니께 어떤 격한 반응을 보였을지는 너무나도 뻔했고. 그렇게 그 녀석을 보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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