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매뉴얼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생각이 많고 까다로워서 겪은 상황별로 완벽한 대응책을 생각해 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완벽하게 같은 상황은 그 순간, 한 번뿐이었습니다.
비슷한 상황은 있을지라도 어떤 상황도 여러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서 나타납니다.
하지만 그런 걸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 않았던 과거의 저는 하나의 경험 —대부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것— 을 하고 나면 그에 대한 대응책을 메모지에 써서 제 방 벽에 붙였습니다.
메모지는 끝없이 늘어났고, 제 방 벽은 '~하기', '~하지 말기' 따위의 글들로 바닥부터 천장까지 가득 채워졌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아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항상 더 나은 사람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 항상 두 배로 느끼고, 두 배로 생각하고, 두 배로 반성했습니다.
그건 분명 연민스러운 일도 헛된 일도 아니었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애써 세운 대응책은 어떤 그 유사한 사건이라도 저를 만족스러운 상황으로 이끌어주지 않았습니다.
앞서 말했듯 세상은 제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로 가득하니까요.
내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고, 그래서 최소한 내가 무너지지 않게 나를 잡아주는 어떤 단단한 생각이 형성되어 있지도 않아서, 소용이 있든 없든 간에 그 대응책들도 잘 지켜지지 않았기도 했습니다.
대응책의 대응책을 필요로 했고, 끝없는 모순에 '아, 불가능하구나. 대응책이랄 걸 세울 수가 없구나.' 했습니다.
필요한 것은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바르게 이해하고, 초연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
초연함이란 상황으로부터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줄 아는 것. 한 발짝 멀어질 줄 아는 것.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