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날

by leaves

추운 날은 옷을 껴입고 나갈 수 있지만 더운 날은 나갈 때 용기가 필요하다. 올해 첫 삼계탕을 끓이려다 마늘이 없는 것을 알고 야채가게에 갈 용기를 냈다. 커다란 호박이 700원이길래 하나 샀는데 가게 아주머니가 두개 천원이라며 친절히 이야기해주시기에 두개를 골랐다. 마늘은 이미 품절이 된 상태였다. 포도를 사고 싶었지만 박스씩으로 팔아서 가지고 갈 자신이 없었다. 이제 샤인머스켓의 계절이 온 것인지 박스가 천장까지 솟아 있었다. 워낙 싸게 팔아서 그 비싼 샤인머스켓을 나도 작년에야 맛보았다. 청포도 사탕을 먹는 것처럼 상쾌한 단맛. 왜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뜻밖의 여행 서점은 11시가 지났는데 문을 열지 않아 무슨 일이 있나 궁금했다. 바로 옆 내가 노트북을 가지고 가 앉아 놀이터를 바라보곤 했던 카페가 한동안 문을 닫았다가 열었다. 그곳에 가서 글을 쓰면 집에서 쓰는 것과 다른 느낌으로 쓰게 되어서 자주 가곤 했었는데 지금은 하는 활동이 많아 한동안 드나들지 않았다. 그곳에서 파는 메이플 시럽이 발라진 크로플도 정말 맛있게 먹었는데 말이다. 이 동네는 마치 천국같다. 내가 필요하고 좋아하는 곳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우리가 사는 환경이 시뮬레이션이라는 학설이 있던데 이곳은 나에게 맞춤 시뮬레이션이다. 내가 좋아하는 김밥집에 싸고 맛난 피자집, 여름에는 식혜를 대놓고 먹는 떡집. 그리고 무엇보다 도서관이 바로 옆에 있어서 나는 마치 서재를 곁에 둔 것 같다. 그리고 서울에서 느꼈던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여기서는 크지 않은 것 같다. 상대의 감정을 고려해 가며 정이 많고 세심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10분만 걸어가면 안양천 산책길이 있고 다른 방향으로는 백화점과 아울렛 등 번화가가 있다. 가끔 외출하면 도넛을 사거나 반찬가게에 들러 반찬을 산다. 아이가 좋아하는 돈가스 가게가 있고 불맛이 나는 고기를 주는 냉면집이 있다. 중고서점 알라딘이 작년에 생겼고 교보문고도 근처에 있다. 교보문고 책을 살 수 있는 기프트 카드를 선물받아 아이 문제집을 사거나 내가 보고 싶은 책을 사곤한다. 집에 오는 길에 있는 놀이터는 봄이면 벚꽃천국이 되고 가을이면 색색깔의 단풍이 아름답다.

나는 이곳에서 수많은 테라피를 받고 독서모임을 하고 성경모임을 하고 에세이모임을 가진다. 아마도 내가 더이상의 것을 욕심낸다면 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하느님이 이렇게 완벽하게 셋팅해 놓으셨는데 불만을 가지면 안될 것 같다. 죽기 전에 이곳에서 나의 카르마를 씻어 내고 하늘나라로 오라는 뜻인 것 같다. 상처받은 나의 내면을 치유하고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곳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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