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책 읽고 숨쉬기만 했던 연휴가 지나갔다. 추석 전에 어디라도 가야지 싶어 가까운 국립현대 미술관엘 들렀다. 나는 왜 미술관에 가는지 곰곰히 생각해 봤다. 그건 내게 성당에 가서 미사를 보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평화로움을 즐기기 위해서. 성당에 가서 신과 대화하듯이 그림을 마주하고 말없이 지켜보며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본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전시였는데 처음 기획전부터 무장해제되었다. 뉴미디어 전시였는데 바닷 속에 오각형의 파빌리온을 설치하고 그 사이를 지나다니는 물고기나 물개를 촬영한 것이었다. 이것도 미술이 될 수 있나 싶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그 고요한 바닷 속 생물들을 오래도록 지켜보자 그래! 난 바다에서 태어났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잠시 앉아서 보다가 끝이 났는데도 움직이기가 싫었다. 그곳이 너무 평화로웠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근원을 보고 난 기분이었다.
이번 연휴때는 하루에 한권씩 책을 읽었다. 이번에 고른 책들이 다들 마음에 들었다. 그런 일이 드문데 말이다. 첫번째는 마그리트 뒤라스의 <연인>. 이건 누군가 독서모임에서 다루자고 추천해서 보게 되었다. 선정적이었던 영화와 달리 주인공들의 감정이 많이 실려 있어 이 위태한 사랑을 이해하려 애써보았다. 사실 나는 육체적인 사랑에 대해 명확히 정의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욕망이거나 욕구라는 것은 알겠지만 사랑안에 몇퍼센트를 차지해서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을 읽었을때와 왠지 비슷한 감정을 갖게 된다. 위태한 사랑이라는 점과 육체적인 관계의 묘사가 두드러진다는 점. 내가 생각하는 달콤한 사랑, 낭만적인 사랑과는 거리가 있었다. 서로 이어질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시작된 우울한 관계. 그것은 결말을 정해놓고 있음에도 어쩔 수 없는 것인지. 내가 읽은 <연인>은 머리가 아플 정도로 사랑의 환희보다는 우울이 더 많이 느껴졌다.
그리고 다음 날, 나민애 교수님 추천으로 알게된 이병률 작가의 <혼자가 혼자에게>라는 에세이를 읽었다. 오며가며 읽다보니 어느새 하루만에 다 읽게 되었다. 요즘 에세이집을 읽는 이유는 내가 에세이집을 낸다면 어떤 스타일이 될까 하는 생각에서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의 에세이는 일단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읽게 되는 매력이 있다. 여행에세이라서 그런 점도 있겠고 정서적으로 안정감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여행지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데 그런 일상이 지루하지 않게 씌여 있다. 큰 깨달음이나 철학이 있는 것은 아닌데 뭔가 자신만의 삶의 원칙이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문장이 너무 무겁지 않고 담담해서 읽기가 편하다. 그래서 그의 다른 에세이도 주문을 해두었다. 일을 하면서도 중간중간 읽기 좋고 내가 쓸 에세이에 영향을 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오늘은 중고서점에 가서 눈에 띄는 책을 골라왔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이다. 어쩌다 보니 또 미술관에 대한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이 역시 하루만에 읽게 되었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소소한 일상에 대한 그의 태도가 당당하고 믿음직 스럽다고나 할까. 이 직업을 오래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말을 하고 있지만 그는 꽤 오랜시간 그 일을 해왔고 충분히 그 직업을 사랑하고 즐겼던 것 같다. 그런 여유가 이 책을 계속 읽게하는 힘이 되는 듯 하다. 결말에 그는 미술관에서처럼 한 장소에 머물러 있는 직업이 아닌 돌아다니는 직업을 선택한다. 그에게는 또 하나의 도약으로 보인다. 그가 죽을 때까지 미술관에 있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미술관에 가면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을 볼 때 다리가 아프지는 않을까 걱정하게 되기도 한다. 나 역시 오랫동안 한 자리에 서 있는 직업은 고역이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그런 취약점에 집중하지 않고 자신이 지키고 있는 미술품들에 대한 애정과 감상하는 관람객들엑 대한 관심으로 하루를 빛나게 보낸다. 세상에 이런 이들만 있다면 세상이 평화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 발짝만 잘못 내딛어도 위험한 인간세상. 어떻게 살아가는게 맞는 것인지 모를 세상에 그의 이야기는 세상이 전부 이상하지는 않는다는 안도를 갖게 한다. 그것이 아름다운 미술품과 하루종일 보낼 기회를 가졌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을 낳는다. 그런 면에서 예술 작품이든 사람이든 정말 아름다운 것이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하게 한다. 우리는 왜 무엇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낄까. 그것을 예술로 실현하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 궁금해지는 책이었다.
앞으로도 딱 이번 연휴만큼만 잘 지낸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 너무 바쁘지 않는 삶이기를 ... 생각할 여유가 있기를... 그 생각이 긍정적이고 아름답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