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자처럼 살던 내가 글때문에 바깥으로 끌어내지는 기분이 드는 요즘이다. 오늘도 수필수업을 하면서 만난 문우들과 밥도 먹고 커피도 마셨다. 내가 책을 3권이나 낸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총무로 있는 인고모님(인생의 고단함이란 모르는 여자)이 이곳 총무신데 사람들을 잘 챙기는 바람에 들었던 수업을 다시 듣고 또 총무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림책 테라피 수업으로 알게 되었고 얼마전 내가 등단할 때쯤 함께 등단했다는 인연으로 좀 더 친밀감이 있었다. 아마도 인고모님이 내 소문을 내고 다니나보다. ㅋ 사람들은 내가 쓰는 브런치를 알고 싶어 했고 출판한 책도 궁금해 했다. 사실 그 책들은 내가 브런치하면서 일기처럼 쓴 것들이라 사서 볼만한 것이 아닌데 책을 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등급이 올라가 있었다. 어디까지 내 이야기를 해야 하나. 아마도 거듭되는 만남의 수 만큼 나를 꺼내 보겠지만 사실 알고 보면 별볼일 없는 사람인데 말이다. 차를 마시며 서로 블로그에 쓴 글을 읽고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아준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되는지가 큰 주제였다. 생전 남의 것에 관심이 있어도 표시를 안내고 내가 올린 글에 누가 관심을 보여도 그 수가 많을 수록 불안감이 높아져서 다른 사람도 그런 거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지냈다. 그런데 좋아요와 댓글이 외로운 글쓰기라는 작업에 그렇게 힘이 된다는 게 대다수의 의견이었다. 묻고 물어 이 수업을 알아냈다는 70대 분은 등단하는데 아무 도움없이 혼자 했다는 것이 놀라운 것 같았다. 그럼 그걸 혼자 쓰지 누구랑 같이 쓰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분위기를 보니 이런 식으로 서로 관심을 갖고 응원하는 문우들 그리고 첨삭을 해주는 강사님의 도움없이 했다는 게 이쪽에서는 흔한일은 아닌가보다. 나는 왜 글을 쓸까. 나에게 좋아요와 댓글은 어느만큼 효력을 가질까. 이야기는 어느새 소설이나 동화에 관한 걸로 넘어갔다. 내게 소설을 써 본적은 없나고 묻길래 소설은 몇편 써봤지고 지금은 판타지 동화를 쓰고 있다고 했다. 나에게 일어난 신기한 경험들을 소재 삼아 쓰고 있고 장미의 이름을 쓸때 움베르토 에코가 실제 시학 웃음을 발견하고 그 힘을 받아 장미의 이름을 썼듯이 나도 그런 식으로 나의 경험이 도움이 될 것 같고 죽기 전에 한권 쓰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랬더니 인고모님이 이번 수업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 라고 한다. 이미 작가로 등단도 했고 포부도 범상치 않아보이는데 왜 이 수업을 듣느냐고 한다. ㅋ 내가 너무 오버했나. 그래서 그간 나 자신에게만 집중했던 시선을 여기 강의 계획표처럼 주변으로 시선을 확장하고 싶다고 했더니 어느 차원에서 놀다온 사람인가 하는 표정이다. 이곳 사람들은 한 사람 한 사람 관심을 깊게 가지고 그의 생각을 존중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야말로 앞으로 이 사람들과 어울리며 어떤 글을 쓰게 될까. 더 놀라운 일을 만들어 낼까 하는 생각에 즐거워 졌다. 그래서 문우들이 필요하고 좋아요와 댓글이 힘을 주나보다. 매주 글을 쓰고 첨삭을 해주신다는 강사님 또한 이력이 보통분은 아니다. 아마도 나는 이번 기회에 날개를 달 수도 있을 것 같다. 폭우가 내리는 날 나라는 사람에게 관심을 두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즐겁고 소중했다. 나는 아무래도 글을 써야겠다. 한줄이라도 남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글이 된다면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는게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