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저물고 어둠이 찾아왔다. 유난히 조용한 저녁. 밤에 혼자 있다는 것은 외로움을 불러온다. 별이 반짝이기 전 그 시간은 나의 숨을 죄어 오기도 한다. 외로움은 하느님도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오늘 성경모임에 다녀왔지만 그 평화도 잠시 나는 또 이 밤에 무얼해야할지 뒤적이고 있다. 왠지 밤에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 손이 가는 책을 훑어 보거나 글을 쓰는 것이 알맞은 것 같다. 오늘 성경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떠난 후 남을 제자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며 '내가 세상을 이겼다'라고 말씀하신다. 이상하게 그 대목에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원했던 걸까. 맨날 지기만 했던 세상을 이겼다고 말씀해주시니 완전한 내편이 생긴 것 같다. 난 아직 세상이 두렵다. 그것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 사물은 나를 해치지 않는다. 식물도 동물도. 오직 사람만이 나를 해칠 수 있다. 의지했던 사람이 얼굴을 바꾸고 나타날때가 가장 두려운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결 같은 사람을 좋아한다. 이면이 없는 마주하는 얼굴 그대로의 사람. 언제나 웃어줄 줄 아는... 항상 곁에 있어 줄 것 같은... 김선우의 <사물들>에서 내가 자꾸 펼쳐보게 되는 것은 촛불이라는 사물이다. 날이 어두워지고 완전한 어둠을 그리워했다는 시인. 용감하다. 산사에서 머물던 때를 떠올리며 어둠에도 여러 빛깔이 있음을 깨닫는다. 나도 완전한 어둠 속에 있어 본 적이 몇번 있다. 청태산 휴양림 인터넷도 안되고 티브이도 없고 주위에 그 흔한 건물도 없이 나무로 만든 숙소만이 유일한 안식처이다. 산 속 숙소는 그야말로 칠흑같은 어둠 속이다. 아이는 익숙치 않은 어둠이 두려웠는지 울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제주도에서 한밤 중에 바다로 향했을 때 어둠은 침묵과 다른 이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소리를 내는 것이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시인은 촛불이 어둠을 밝히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빛 중에 어둠에 배타적이지 않고 어둠을 껴안으면서 스스로 영롱해 지는 유일한 것이라고 말한다.
가끔 향초를 켜는 것은 그 불꽃이 내 안에도 들어와 앉기를 바래서가 아닐까. 그리고 위안받고 싶을 때. 나는 인센스 스틱이나 초를 켜고 잠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 다시 세상으로 돌아올 힘을 얻는다. 정반대로 습기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는다. 서로를 향해있지 않지만 그 둘은 내게 위안의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랑이다. 나에게 곁을 내주며 힘을 준다는 면에서 그것들은 나를 사랑하고 나도 그것들을 사랑한다. 그런 것들이 늘어날 수록 나는 세상의 얼굴을 볼 용기를 더욱더 가지게 될 것이다. 그래, 그런 것들을 찾아봐야겠다. 나에게 사랑을 주는 것들. 이 세상에 존재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