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잠

by leaves

국민학교 때부터 일기를 써왔고 직장생활할때도 일기를 썼었다. 지금은 그 무거운 이야기들을 듣고 싶지 않아 모두 어디로 치워버렸는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왜 그리 심각했을까.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하다보니 차분히 앉아서 글을 쓸 시간이 없었다. 이제 아이도 손이 덜가고 살림이라는 것에 익숙해 지다보니 책도 읽고 글도 쓰게 되었다. 책을 세권이나 냈고 수필가로 등단도 했지만 난 여전히 내가 작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간 일기처럼 쓰던 글쓰기였기에 사실 부끄러웠다. 그러던 중 어떤 수필가의 수필 한편을 보고 넘사벽을 느꼈다. 자연에 대해 쓴 그 글을 보고 나도 처렇게 쓸 수 있을까. 아니, 나도 자연이라면 한동안 빠져 있었고 경험한 것이 있는데 한번 써볼까? 하는 생각으로 쓴 글이 숲이야기를 공모하는 공모전에서 수상하게 되었을 때도 믿기지 않았다. 공모전과 등단작 모두 자연에 대해 쓴 글들이었다. 내노라 하는 사람들이 많았을텐데 내가? 나의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읽히게 했던 걸까. 마지막 공모전에서 수상후 나는 사실 혼란에 빠졌다. 그래서 한동안 글을 쓰지 않고 있다. 또 한가지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내가 쓴 글 두편을 통해 철학 학파 중 하나인 스토아 학파의 철학 대로 내가 썼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림책 테라피스트이기도 한데 협회에서 하는 수업 중 우연히 스토아 학파가 최근 대세라는 것을 듣게 되었다. 그래서 책을 사서 읽었고 다른 책에서도 종종 스토아 학파를 언급한 것을 유심히 보곤했다.

그런데 스토아학파의 대표주자인 세네카의 글이 눈에 띄였다.

바람에 휘둘린 나무여야 진정으로 굳건해진다. 나무의 뿌리는 시련을 견디면서 더 튼튼해지기 때문이다.

- 세네카

인생이란 폭풍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세네카

왜냐하면 내가 쓴 글 두편에 똑같은 이야기를 적어넣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스토아 학파였던 것이다. ㅋ 나이 오십이 되니 철학자가 된 걸까. 내가 읽고 쓴 글이 내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던 것 같다.

그 뒤 자연과 관련해 철학적 사유를 한 책들을 사서 보게 되었고 새로운 장르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나 자신을 평화롭게 만드는 것을 추구하다보니 어떤 지경에 이른게 아닐까. 인간세상은 나에게 눈물과 고통을 주었지만 자연은 절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인간보다 훨씬 철학적이며 현명하다. 그러니 내가 끌렸고 그에 빗대어 글을 쓰고 싶어졌던 게 당연한 게 아닐까. 내가 사는 집이 자연과 조금 더 가까웠다면 할 말이 더 많았을 텐데 아쉽다. 자주 산책하는 안양천이 그나마 나를 위로해 주고 있다. 요즘은 날씨로 매번 흐리고 비나 눈이 자주 온다. 기분이 가라앉으면 다이어리꾸미기 영상이나 메이크업을 가르쳐주는 영상을 본다. 둘 다 나의 심리를 반영하고 평화로워지는 법에 대해 가르쳐 준다는 생각이 든다. 나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고 내 내면을 표현하는 여러가지 방법을 찾고 있다. 글을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등단 후 글을 잘써야 한다는 새로워야 한다는 생각에 전보다 자유롭지가 못하다. 이런 기간이 빨리 지나가고 자신감 있게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겨울에 자연은 조용하다. 그들에게도 힐링할 시간이 필요한 걸까. 겨우내 죽은 듯 가지만 남은 나무와 풀들은 그 생명력을 어디에 숨기고 있는 걸까. 지금의 나 역시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의 씨앗들이 만개할 그날이 오길 바란다. 꼭 봄이어야 할지는 모르겠다. 긴 겨울 나는 생각에 잠긴다. 나와 그들은 얼마나 다르고 얼마나 같을까. 나의 스승이자 나의 친구 그들이 꽃피어 인사할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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