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MERS-CoV,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Coronavirus)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중증 급성 호흡기 질환으로 낙타와의 접촉을 통해 감염될 가능성이 높고, 백신과 치료제는 개발되지 않은 1급 전염병입니다. (서울대 의학정보 참조)
2012년 중동에서 처음 발생한 후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에 발생했고 총 186명의 환자 중 38명이 사망하였습니다. 메르스는 감염되면 2~14일가량의 잠복기를 거친 뒤 섭씨 38도 이상의 고열, 기침, 호흡곤란 등 심한 호흡기 증상이 나타나고 설사, 변비, 폐렴, 급성신부전증 등의 합병증을 동반합니다. 메르스는 사스보다 치사율이 6배가량(치사율 약 40%) 높은 치명적인 감염병이기도 합니다. 현재도 중동에서 발병하고 있다고 합니다. (시사상식사전 참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Corona virus disease 19)은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생한 새로운 유형의 코로나바이러스로 감염되면 약 2~14일의 잠복기를 거친 뒤 섭씨 37.5도 이상의 발열, 기침, 호흡곤란, 폐렴이 주증상으로 나타나지만 무증상 감염도 높게 나타나지요. (시사상식사전 참조)
메르스는 병명에 지역을 딱 못박았는데 코로나는 중국발이지만 워낙 전세계적인 팬데믹을 발생시켜서인지, 아니면 중국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 것인지는 몰라도 지역명이 빠져 있네요. 대학시절 전공과목 가운데 면역학을 수강한 적이 있는데 바이러스를 배울때 재밌는 점이 있었습니다. 메르스와 코로나 19 중 과연 어느 바이러스가 더 영리한 놈일까요? 메르스처럼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는 숙주를 빨리 죽여서 인지 아니면 자체적인 메커니즘 때문인지는 몰라도(아마 바이러스들 마다 다르겠지요) 전파력이 약하고, 치사율이 높지 않은 코로나 19는 전파력이 매우 높습니다.
바이러스들도 생각이란 걸 합니다. 처음에 힘이 센 놈들이 우세를 차지해서 숙주 내에서 폭발적인 번식력과 독성을 보이게 되면 아이러니하게도 숙주가 빨리 죽어버려 자신들의 생존도 같이 막을 내리게 된다는 걸 오랜 경험으로 깨닫습니다. 그래서 숙주를 빨리 죽이면 안된다는 걸 알게 됩니다. 독성을 포기하는 대신 전파력을 얻도록 변종을 만드는 진화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치사율이 높은 감염병들은 지엽적으로 발생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나 신종플루는 대 유행을 타게 됩니다. 오래전에 배운 내용이라 잘 맞는지 가물가물합니다만 바이러스 이야기를 하려던 건 아닌데 서론이 길었습니다.
2015년 우리나라에서 메르스가 발생했던 시기에 남편이 중동으로 출장을 가게 됩니다. 국가는 아마도 카타르로 기억납니다. 메르스로 난리인 그 때 왜 중동으로 굳이 출장을 가야 했는지 물으신다면 남편이 국가 공무원이라 국가가 그렇게 명하니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시기에 굳이 그 위험한 곳을 가라는 국가의 무심함에 잠시 이 나라를 떠날까 심각하게 고민했었습니다. 여하튼 남편에게 절대 낙타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고 남편은 8박 9일간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출장을 다녀온 후 메르스 잠복기간인 14일 마지막 날 큰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납니다. 갑작스럽게 무려 40도로 치솟아 부랴부랴 동네 소아과에 갔더니 폐렴이 발생했다면서 감염수치가 동네 소아과에서 컨트롤 할 수준이 아니니 대학병원으로 빨리 가라고 소견서를 써 주었습니다. 메르스의 주요증상이 폐렴이라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대전의 모 대학병원에 도착했고, 담당 의사에게 남편이 2주전 중동에 다녀왔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 이야기에 의사의 얼굴이 흙빛이 되더군요. 아이와 우리 부부는 병원 주차장에 위치한 컨테이너에서 대기를 해야 했습니다. 실제로 메르스면 초비상이니 당연히 격리를 해야겠지요.
겨울이라 밖이 몹시 추웠고 철로 된 컨테이너 안에는 선풍기 모양의 난로만 있고 누워 있을 공간도 없었습니다. 열이 펄펄 끓는 아이에게 해열제나 수액이라도 맞춰주면 좋겠는데 진료를 하지 않아 처방도 만무했지요. 우리 가족 모두 잠재적인 메르스 감염자라 약이나 음식을 사러 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아이는 아빠 품과 제 품에 번갈아 안겨 컨테이너에서 장장 9시간을 대기하였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메르스인지 아닌지 진단하기 위한 검사 조차도 하지 않고 무작정 대기만 하라고 하니 답답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병원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는데 그때 대전의 서구 보건소에서 연락이 와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아이를 빨리 치료받게 해달라 호소했습니다. 병원에도 여러번 문의를 했지만 그저 대기하라는 답변만 주더니 9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우리 병원에서는 메르스 환자일지도 모르는 아이를 받아 줄 수 없고 다른 대학병원에서 받아 줄 수 있는지를 조율중이라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대전을 비롯한 충남과 충북 지역의 국립 대학 병원에서 우리 아이를 모두 받아주지 않으려고 서로 핑퐁을 치고 있었던 겁니다. 그때 얼마나 이 나라에 실망했는지, 갑작스럽게 발생한 감염병을 대학병원 조차 벌벌 떨며 받아주지 않는 점도, 국가에서 감염질병에 대한 제대로 된 관리와 대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저는 그날 생생하게 겪었습니다.
그 와중에 우리 가족을 구해 준 곳은 대전 서구 보건소였습니다. 아이가 이렇게 상태가 안좋은데 컨테이너에 오래 방치한 것을 알고 담당자도 분개하더군요. 담당자는 보건소에서 검체를 채취하고 메르스 검사를 의뢰할 테니 일단 집에 가 있으라고, 김밥을 챙겨주면서 우리를 집으로 보내주었습니다. 그렇게 한밤중이 되어서야 우리 가족은 집에 돌아왔고 검사 결과가 나오는 다음날 아침까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아이에게는 집에 있는 해열제를 먹이고 계속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 열을 내리려 애를 썼지요.
다음날 다행히 검사 결과 우리 가족 모두 음성으로 나와 대전의 다른 사립 대학 병원에 가서 입원 수속을 하였습니다. 의사 선생님 말로는 원래 오른쪽 폐만 폐렴이 왔는데 조치가 빨리 이루어지지 않아 왼쪽으로 번졌고, 폐렴도 심한 편이라고 이야기 하셨지요. 다행히 7일간 입원 끝에 아이는 완쾌가 되었습니다. 큰 아이 생일이 11월 30일인데 생일잔치도 병원에서 치뤘습니다. 아픈 아이치고는 명랑하고 씩씩해서 간호사 선생님들께 귀여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2020년 4월,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지고 사회적 분위기가 싱숭생숭하던 때에 퇴근하고 집에 왔더니 큰 아이가 배가 아프다며 누워 있더라구요. 평소 변비통이 심해 배가 자주 아프긴 했지만 얼굴색을 보니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동네 내과로 향했습니다. 좀 무뚝뚝한 분이라고 생각하던 의사 선생님이 마침 진료 중이셨는데 배를 여러번 누르고 청진하더니 급성충수염이 의심된다고 큰 병원에 가보라는 겁니다. 남편은 맹장염은 아닐꺼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저는 병원으로 가는 내내 또 심장이 쿵쿵 대고 정신이 아찔 하더군요.
그렇게 한 밤중에 응급실로 향했고, 병원에서는 열이 38도 이상이라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먼저 수행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문득 5년전 메르스 악몽이 떠올랐습니다. 만일 코로나에 걸린 것이라면 우리 아이는 과연 수술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걸까, 혹시 또 병원에서 쫒겨 나는 것을 아닐까 겁부터 났습니다. 코로나 검사를 위해 검체를 채취하고 초음파 검사를 하니 충수염이 맞다는 소견이 나왔습니다. 나이가 지긋하신 소아과 담당과장님이 충수염 초초초기인데 이걸 어떻게 알고 병원에 왔느냐고 놀라셨지요.
아이고 그 무뚝뚝한 의사선생님이 명의인줄은 그날 알게 되었습니다. 과장님 이야기로는 지금 당장은 괜찮지만 어린 아이라 48시간 이내에 충수가 부풀어 터질 가능성이 높아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복강경 수술(배꼽을 통한 수술)이라 수술 시간도 40분 내외라면서 엄마인 저를 안심 시켜주시더군요. 자신의 손녀딸이 똑같은 상황이라면 본인은 당장 수술을 할 거라고 덧붙이셨습니다.
코로나 검사 결과와 상관없이 수술은 그날 밤 8시 30분에 바로 잡혀 진행되었습니다. 아무리 간단한 수술이라도 수술장 밖에서 기다리는 엄마 마음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날 정도로 간절했습니다. 제발 아무일도 없기를, 제발 코로나가 아니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를 하였지요. 약 50여분 후 과장님이 나오셔서는 울고 있는 저를 다독이고 안아주셨습니다. 수술 잘 됐으니 걱정말라면서 말이죠. 메르스 때 갖게 된 대형병원에 대한 트라우마는 그날 그렇게 치유가 되었습니다.
당시에 정부에서 코로나 의심 환자일 경우 검사 결과가 나올 때 까지 1인 병실 사용료를 지원해주는 덕분에 우리 아이는 수술 후 1인실에서 쾌적하게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지원은 하루뿐이었지만 예전에 쫒겨난 것에 비하면야 그것만으로도 감사했습니다. 다행히도 코로나 결과도 음성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 큰아이는 메르스 검사와 코로나 검사를 다 해본 흔치 않은 경험자가 되었지요.
생각해보니, 메르스 때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현 코로나 상황에 대한 정부의 대책이 지금처럼 원활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메르스로 감염병이 얼마나 큰 사회적 재난이 될 수 있는지 학습이 되었고 팬데믹 사태를 대비한 컨트롤 타워가 부재하다는 것도 당시에 발견되었지요. 코로나가 터지자 국가 공무원들의 외국 출장이 모두 금지되었습니다. 코로나 대책을 처음 만들때 안정적인 마스크 수급을 가장 시급하게 다루니 당시에는 마스크 정부라고 언론과 사람들이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마스크가 얼마나 중요한 감염 장벽이 되고 있는지는 두말하면 잔소리지요.
2018년 메르스가 또 발생했지만 대응을 잘했던지 기억조차 나질 않네요
메르스 때에는 국가와 병원에 절망과 분노를 느꼈지만 지금은 신뢰가 갑니다. 그 때의 절망은 사라지고 우리나라가 많이 발전되었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캐나다 입국 때문에 온 가족이 코로나 검사를 두 번 하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캐나다보다 검사 결과도 금방 나오더군요. 캐나다는 주말에 코로나 검사를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주말에도 현장에서 고생하는 우리나라의 의료 등 관계자분들께 저절로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고등학생 시절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호모 사피엔스야 말로 지구의 관점에서 바이러스와 같은 존재라고, 지구라는 숙주에 기생하면서 지구를 병들게 하는 원인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지금도 그 내용이 잊혀지지 않아요. 코로나19도 메르스도 사실 인간과 같은 생명체이지요. 살아남겠다고 끊임없이 변종을 만드는 코로나19를 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스스로도 위태롭다는 생각이 드는가 봅니다.
바이러스는 처음에 강한 독성으로 무장하지만 결국은 숙주와 공생하는 길을 택한다고 합니다. 계속 변종되는 코로나는 독성은 점차 약해지고 지금보다 더 완벽한 백신과 치료제가 만들어지면 독감 같은 존재가 될 것입니다. 코로나든 독감이든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기에, 팬데믹은 인간의 수명과 인구 수가 늘어갈 수록 지속될 것이기에, 팬데믹의 세상에서 나와 우리 가족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잠시 고민해 봅니다. 적어도 지구를 병들게 하는 편에 서지 않도록 환경을 지키기 위한 작은 것부터 실천하고 또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겠다고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