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어둡고 축축한 동굴을 한참 걷고 있다고 잠시 상상해 보자. 헤드 랜턴 하나에 의지한 채 공기도 희박한 그 동굴에서 갑자기 저 멀리 환한 빛이 새어 나온다. 그곳을 향해 곧장 달려간다. 그리고 그 빛이 나온 곳에 도착하자 상상조차 못 한 크고 영롱한 크리스털들이 온통 동굴 안에 가득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 자태를 본 순간 나는 숨이 막히고,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뱉고 만다. "너무 아름답다"라고...
지금 당장 채취하여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굉장한 맛을 느끼게 하는 것도 아닌 그저 투명한 광물에 불과할 뿐인데 사람들은 그런 크리스털을 발견하면 이유를 알 수 없는 기쁨과 경외심을 느끼게 된다. 자연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에 대해 본능적으로 감동을 받는 것이다. 그저 "아름다움" 그 하나만으로 감동하고 기뻐할 때만큼 인간은 참으로 순수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자신의 그런 순수성을 발견할 때 인간은 계산 없는 순수한 만족감으로 참행복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음악을 듣는 가장 큰 이유도, 음악을 들을 때 그저 막연하게 그 아름다움이 기쁘고 즐거운 이유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바로, 순수한 감동! 계산 없는 만족!
음악이 음악을 듣는 사람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거나 물질적 가치가 되는 것도 아닌데도 인류가 시작된 이래로 음악은 단 한 번도 도태되거나 사라진 적이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공기처럼 분명히 존재하는 음악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이 주는 감동 때문에 인간은 절대로 음악을 끊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18세의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18일, 미국에서 열린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대회에서 60년 콩쿠르 역사상 최연소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몇 년 전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자가 된 감동이 이제 조금 식혀졌나 싶은 시기에 조성진과는 결이 다른 또 한 명의 거장의 탄생을 지켜보며 실로 오랜만에 깊은 감동과 전율을 느꼈다. 결승전에서 피아니스트들의 무덤과도 같은 곡인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선택한 임윤찬의 연주는 그저 천재 소년의 연주가 아니었다. 그는 이미 완성된 거장이었다. 그의 연주는 기교적으로는 완벽했고 음악적으로는 순수했다.
이번 대회 수상자들, 가운데가 임윤찬. 출처 : 반 클라이번 재단
파이널 라흐마니노프 연주에서 그와 합을 맞춘 심사위원장이기도 한 지휘자 마린 알솝이 지휘 도중 입술 옆으로 흐르는 눈물을 두어 번 정도 손으로 닦으며 지휘를 했는데(연주가 끝난 직후에도 눈가를 훔친 후 임윤찬을 안아주었다) 나는 그녀의 심정이 너무나 이해 갔다. 나도 그 순간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임윤찬의 연주에서 동굴에서 만난 거대한 크리스털처럼 묵직하고도 흠결 없는 순수성, 음악에 대한 한 없는 애정과 찬사를 나 같은 아마추어 클래식 애호가도 느꼈는데 전문가인 그녀는 바로 옆에서 들었으니 지휘하면서도 눈물이 흐르는 것은 거의 불가항력이었을 것이다. 마린 알솝은 2019년 영화 <더 컨덕터>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여성 지휘자로 지휘계의 유리천장을 뚫고 볼티모어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은 영화 <샤인>으로도 유명한 곡이다. <샤인>의 주인공 피아니스트 데이빗 헬프갓 역시 실존 인물로서 피아니스트들의 신경을 손상시킬 정도로 극악한 테크닉을 요구하는 곡인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에 유독 집착하고 결국 연주가 끝난 직후 쓰러져 그대로 정신병원에서 오랜 기간 요양을 해야 했다. 그는 이후 그를 알아보는 훌륭한 여성을 만나 결혼하고 재기에도 성공하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그런데 그런 라흐마니노프보다 더 지독한 곡이 또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자의식 과잉의 대표주자인 리스트의 초절기교이다.
이 곡은 일종의 피아니스트들의 연습곡으로 마치 리스트가 마음먹고 "너네 이런 거 칠 수 있니?"라며 온갖 테크닉을 다 갈아 만든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실제로 '악마적 기교'를 요구한다고도 평가받으며, 이 곡에 대해 슈만은 '이 곡을 제대로 구현할 사람은 리스트 자신뿐이다'라고도 했다.(TMI지만, 라흐마니노프와 리스트는 둘 다 손가락이 엄청 길다.) 따라서, 보통 콩쿠르에서는 자칫 망하기 쉬운 이 곡을 콩쿠르 참가자들은 잘 선택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임윤찬은 준파이널에서 이 곡을 선택하여 한 시간 가량 완벽하게 연주하였고, 심사위원인 알레시오 막스는 '리스트의 초절기교를 그 나이에 그렇게 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의 연주를 직접 듣게 되어 영광이다'라고 전했다. 또한, 파이널에서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에서는 지휘자도 춤을 추게 만들었으며,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한 라흐마니노프로 청중뿐만 아니라 심사위원장마저도 눈물을 흘리게 만든 것이다.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는 임윤찬과 지휘자 마린 알솝(출처: 반 클라이드 재단)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들은 모두 휘몰아치는 감정의 토네이도 같은 곡으로, 극도의 고독과 우울감이 쌓이다 못해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듯한 강렬한 격정이 특징인데 이런 곡일수록 테크닉이 완벽하지 않으면,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미스터치가 들리면, 절정을 향해 마구 달려가던 격정과 감정이 순식간에 휘발될 수 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나 해석적으로나 몹시 어려운 곡임은 분명하다. 그 몹시도 어려운 곡을 임윤찬은 그야말로 완벽하게, 거대한 토네이도가 지나가는 것처럼 격렬하게 연주하였고, 연주가 끝난 후 느낀 카타르시스는 정말로 대단했다.
그러나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단순하게 이 곡을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연주하고, 원작자인 라흐마니노프의 의도대로 해석 또한 완벽했다고 하여 그에게 모두들 이토록 극찬하고 반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나는 그의 연주에서 순수성을 보았다. 예술의 아름다움, 손에 잡히지도,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크리스털처럼 영롱하게 반짝거리는 그 아름다움을 구현하고 싶은 순수한 열망, 이 연주로 내가 빛나 보이고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리라는 욕망이 제거된, 실로 순수한 예술을 추구하는 한 인간상을 만난 것이다. 그렇기에 나도, 마린 알솝도 눈물을 흘렸던 것은 아닐까.
예술의 완성, 모든 예술가들이 그토록 원하는 궁극의 경지를 향한 그의 구도자 적인 집념과 음악에의 겸손이 아니고서야 흉내 낼 수 없는 깊은 해석의 바다를 헤엄치면서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연주를 위해 이 18세 소년은 도대체 어떤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렸던 것일까. 무엇이 그를 이토록 완벽하고도 아름다운 연주를 하도록 만들었던 것일까. 무엇이 그를 하루 12시간 이상 피아노만 치도록 이끈 것일까.
콩쿠르 수상 직후 열린 인터뷰에서 임윤찬은 자신의 커리어에 대한 야망에 관하여 질문을 받았는데 그는 이렇게 답변했다. '나는 그저 산속에 들어가 피아노만 치고 싶다. 그런데 그러면 수입이 없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다. 콩쿠르가 끝난 이후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앞으로 많은 곡을 할 수 있어서 그게 기대가 된다 '. 그러자 또 다른 기자가 그럼 이 콩쿠르에 왜 참가했는지를 물었고, 그는 또 이렇게 대답하였다. '콩쿠르는 입상이 목적이 아니고, 내 연주의 성숙도를 확인하고 싶었다'라고 말이다.
나는 18세지만 180세 같은 이 거장에게서 예술을 진정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를 깊게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추구하는 (문학) 예술에 대해 나는 그저 아마추어와 프로의 관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가볍고 자아도취적인 그 무엇이 아니었나 반성중이다. 예술 그 자체의 순수성, 예술을 대하는 순수성과 예술을 통해 추구하고 싶은 목적의 순수성 앞에서 내가 흘린 눈물의 반은 감동, 반은 자책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기쁜 것은 이 거장이 앞으로 보여줄 레퍼토리들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앞으로 그가 연주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과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들이 너무나 기대된다. 그의 쇼스타코비치는 어떨지, 그의 슈만은 어떨지 마치 BTS의 새 앨범을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던 것만큼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그의 앨범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