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잡문집 07화

때를 밀다가

by 김정은

프랑스의 작가 프랑소와즈 사강이 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유명한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은 내용보다 제목이 더 유명한 데, 나는 이렇게 바꾸고 싶다. "때 밀기를 좋아하세요?"


욕조에 뜨거운 물을 가득 채우고 몸을 담그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물의 온도는 가정집에서 틀 수 있는 가장 뜨거운 온도로 맞춘다. 처음에 발을 담갔을 때 너무 뜨겁다 싶으면 찬물을 조금 더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별로 뜨겁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그저 '시원하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특히 요즘처럼 겨울이 되면 사소한 바람에도 손목과 발목, 손마디가 시큰시큰거려서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그고 풀어주어야 하루 이틀 정도는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전신욕보다 더 좋아하는 것은 바로 때를 미는 것이다. 캐나다로 들어올 때도 다른 건 몰라도 이태리 타월(?)은 필수로 몇 장 챙겨 왔다. 뜨거운 물에 때를 푹 불린 다음 이태리 타월로 살살 살살 밀면 국수가닥 같은 때가 잘도 밀린다. 어쩌다 컨디션이 별로여서 욕조에서 빨리 나오면 때가 나오다 말다 해서 씻고 나면 서운하기도 하고 개운한 맛이 평소보다 덜하다.

The photo from Pixabay


때를 잘 밀려면 나름대로 치밀한 전략과 실천이 필요하다.


첫째, 때를 너무 자주 밀지 않는다. 자주 밀면 피부가 상하기도 하지만 굵직굵직한 지우개 가루 같은 때가 잘 나오지 않아 때 미는 재미가 반감된다. 때는 한 달에 한번 정도 미는 것이 좋다. 샤워를 하기 때문에 자주 때 목욕을 하면 피부가 건조해질 수 있다. 무엇보다 죽은 세포가 차곡차곡 피부 바깥에 쌓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 이건 생활에서 발견한 꿀팁인데, 샤워하고 바디로션을 듬뿍 잘 발라주면 때가 좀 잘 생긴다. 로션의 수분은 피부 속으로 흡수되지만 흡수되지 않은 잔여물은 모두 때가 되기 때문이다. 피부 보습도 챙기면서 때도 만드는 일석이조의 효과!


둘째, 욕조에 최소 30분 이상 몸을 불린다. 너무 빨리 나오면 때를 미는데 상당한 힘이 들어간다. 때가 수분을 적당히 머금어 퉁퉁 불게 되면 굳이 세게 밀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밀린다. 때를 미는 것이 노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국수가닥처럼 주륵주륵 나오는 때를 미는 것은 마치 뻘밭에 들어가 갈쿠리로 수많은 조개를 마구 채취하는 듯한 수확의 기쁨을 준다. 때밀이는 반드시 오락이 되어야 한다(Tteamiri must do an entertainment!). 30분 견디기 힘들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영혼의 동반자 스마트폰이 있지 않은가. 아홉 살 우리 아들이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마음속에 오랫동안 품어 왔던 소원을 최근에 고백했다. 자신도 목욕탕에 몸을 담그고 스마트폰을 하고 싶다고... 수줍게 고백하는 모습이 애잔하여 최근에 한번 허락해 주었다. 특별히 향기가 좋은 입욕제도 넣어주고...


셋째, 때밀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도구이다. 아무리 때를 많이 저축하고 물에 잘 불린다 하더라도 맨 손으로는 도저히 시원하게 밀 수 없는 것이 바로 때이다. 몇십 년 전 옷감 천을 수입하는 업자가 이태리에서 수입해온 거친 천 때문에 고심하다가 탄생하게 되었다는 이태리 타월! 대한민국의 현대사 이래 이런 최고의 발견과 발명은 또 없을 것이다. 여하튼 이태리 타월은 초록색 혹은 분홍색으로 된 잔잔한 텍스처를 가진 것이 좋다. 가끔 동네 목욕탕에서 노란색과 파란색의 거친 무늬를 가진 타월을 팔던데 내가 써보니 아프기만 하고 때는 잘 안 나온다. 거칠다 보니 피부 표면에 닿는 면적이 줄어 마찰력을 받기 어렵다. 가뜩이나 물에 불어 흐물거리는 때를 밀어야는데 마찰력이 잘 받지 않으니 힘만 더 쓰게 되는 비효율이 발생한다. 잔잔하게 오돌토돌한 타월이 피부 표면에 많이 닿으면서 마찰력도 충분히 받기 때문에 많은 힘을 들이지 않으면서 때의 수확량도 훨씬 늘릴 수 있다.


저런 솔로 목욕하면 정말 안하느니만 못하다. 이태리 타올은 최고의 수출 효자 상품 가능성이 충분하다. the photo from Pixabay



몸도 이렇게 때를 밀고 나면 쾌감에 가까운 개운함과 상쾌함이 드는데, 마음의 때는 어떻게 밀어야 할까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마음이란 것이 결국은 내 머릿속을 차지하는 약 1.5킬로그램의 뇌 덩어리인데, 뇌의 주된 역할이 정보를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분류하고, 저장하고, 송출하고, 삭제하는 것에 있으니 이 삭제 버튼만 잘 누르면 마음의 때, 생각의 찌꺼기가 좀 떨어져 나가는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삭제 버튼은 어떻게 누르는 것일까.


가장 쉬운 방법이 무얼까 생각하니 번개처럼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술 마시기! 알코올이 체내에 지나치게 흡수되면 블랙아웃, 일명 필름 끊기기 현상이 나타난다. 심지어 오래 애용하면 알코올성 치매도 얻어걸릴 수 있다. 한데 블랙아웃은 그저 잠시 잠깐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이니 마음의 때를 지우는 것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듯하다. 알코올성 치매 역시, 내가 원하는 것들만 지워야 하는데 치매로 인해 사라지는 정보를 내가 선택할 수 없다. 술을 많이 마시면 간도 상하고 술값에 택시비에 숙취해소까지 건강을 해치는 것은 물론 경제적인 타격도 있으니 이 방법이야말로 삭제 버튼을 살포시 누르기로 한다.


두 번째로 드는 생각이 '숙면'

인간의 뇌는 절대로 쉬는 법이 없다. 쉬면 죽으니까. 쉬는 순간 뇌사 상태가 된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뇌는 낮동안에 모아놓은 정보를 편집하고 정리하느라 바쁘다. 마구잡이로 들어온 정보들을 나름대로의 카테고리 안으로 차곡차곡 정리하고, 불필요한 정보는 버리고 중요한 정보는 장기 저장고나 단기 저장고에 분류하기도 한다. 불필요한 정보를 버린다고 했는데 이 버리는 장소가 좀 문제다. 바로 무의식 속에 그냥 던져두기 때문이다. 그래도 숙면은 스트레스를 완화하는데 일등 공신이다. 수험생들이 잠도 못 자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충분히 자야 낮동안 공부했던 정보들이 오히려 더 정리가 잘 되는 것인데... 건강한 신체에 양질의 지식이 쌓이는 법.


세 번째로, 마음의 때를 벗겨내기 위해 사람들이 하는 모든 행위를 '힐링'이라고 한데 이름 붙일 수 있을 것 같다. 힐링을 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거나, 산책을 하기도 한다. 등산도 하고, 마라톤도 한다. 요가도 하고 명상도 한다. 자기 자신의 취향과 생활 패턴에 맞게 힐링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야 말로 '웰빙'이 아닌가 싶다. '멍 때리기'도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힐링 방법 중 하나이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가장 좋은 마음의 때밀이 방법은 바로 '글쓰기'이다. 글을 쓰면 생각이 정돈된다. 격했던 마음, 슬펐던 마음, 외롭고 쓸쓸했던 마음들 -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이 정신의 활동을 구체적인 단어로 형상화하면 그 마음이 손에 잡히는 기분이 든다. 내 마음에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주면 그 이름 가운데 버려야 할 것과 취해야 할 것이 명확해진다. 그리고 글로써 정제된 마음과 생각을 하얀 화면에 배설하고 나면, 어쩐지 후련한 기분마저 들게 된다. 최근에 나를 오랫동안 괴롭히던 직장상사에 대해 분노의 마음을 최대한 담담하게 글로 써서 발행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정말 놀랍게도 후련해졌다.


내 마음의 때를 벗기는 좋은 방법은 글쓰기 말고도 또 있다. 그건 바로, 좋아하는 사람과의 '담소'

요새는 코로나 때문에 담소 나누기가 쉽지 않으니 카톡이나 메일로 소통하는 것도 담소로 칠 수 있겠다. 나와 마음이 통하는 벗과 서로의 생각들을 나누고 나면 무겁게 짓누르던 고민이 어느새 가벼워진다. 나의 생각에 공감해주고 너의 생각에 맞장구를 치다 보면 왠지 너와 내게 눌어붙어 있던 생각의 찌꺼기들이 사라지고 한결 마음이 개운해질 때가 있다. 나는 당장 글쓰기와 담소 두 가지 외에는 마음의 때를 벗겨내는 좋은 방법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글벗들이 추천하는 '마음의 때밀기' 좋은 방법이 있으면 댓글로 공유해 주시기 바라며... 좀 더러운 이야기였지만 결론은 깨끗해지니까... 그걸로 퉁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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