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처음 만난 것은 내가 20대 중반이던,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즈음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에서였다. 집에서 1시간 넘게 가야 하기에 아주 오랜만에 교보문고에 들렀던 나는 당시 세간의 화제였던 그의 책 <칼의 노래>와 카라얀이 지휘한 그리그의 <페르귄트 모음곡> 음반을 같이 샀다. 교보문고에 가면 핫트랙에 들러 음반을 사는 것이 내게는 하나의 루틴이었다(요샛말로 국룰). <칼의 노래>가 워낙에 베스트셀러였기에 소설을 잘 안 읽는 나로서는 굉장히 오랜만에 구입한 소설이었다. 박경리 작가의 <토지> 이후로 내 마음을 깊게 흔드는 그런 소설을 몇 년간 기다렸던 것 같기도 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CD플레이어에 음반 CD를 넣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페르귄트 모음곡 중 가장 좋아하는 '아침의 기분'이 흘러나오자 나는 새로 산 소설을 가방에서 꺼내 든다.
'김 훈'
이름에서 느껴지는 그에 대한 첫인상은 간결하고 남성적이었다. 그의 소설을 읽어 본 후에도 여전히
그의 이름은 그의 문체만큼 간결하고 그의 문장만큼 힘이 있다. 이름이 석자가 아닌 두 자라 더 멋있다.
그는 이순신 장군에 관한 소설의 제목을 <칼의 노래>라고 지었다. 이 얼마나 적절한 제목이던가. 칼과 대비되는 노래가 함께 있어 무신으로서의 기개와 더불어 그의 속울음이 제목에서부터강하게 들린다.장수의칼은 무언가를 베고 피를 묻히는 살인 도구이지 아름다운 소리나 화음을 만드는 음악 도구는 아니다. 그러나 그의 소설 속에서 칼은 정말로 노래한다. 충직하면서도 처절하게...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첫 장을 펴고 첫 문장을 읽자마자 나는 심장이 쿵 떨어졌다. 단 한 문장으로 나는 설득당했다. 첫 문장에는 소설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담담하면서도 단호한 문장으로 얼마나 슬픈 전쟁을 이야기할지 나는 첫 문장으로 알았다. 그리고 읽어 나가며 나는 세 가지의 전쟁을 목격하고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한지 비로소 깨닫는다. 임진왜란이라는물리적이고 실체적인 전쟁보다 인간의 탐욕, 권력욕, 질투와 어리석음이 만들어내는 정치적인 전쟁이 훨씬 잔인하다는 것을, 그를 모두 알지만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자신의 할 소임을 피눈물을 흘리며 임하는 마음속 자신과의 싸움이 얼마나 외롭고 처절한 전쟁인지를...
지하철 안에서, 또 집에서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눈물과 콧물을 쏟아야 했다. 김훈 작가가 그려낸 인간 이순신은내게 고통과 비극 그 자체였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와 노무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를 읽었을 때만큼이나 대성통곡을 하며 읽었다.
당시에 읽었던 칼의노래는 2010년 출간한 버전이다
그는 그즈음 일산에 살고 있(었)다. 아마도 정발산일 것이다. 지금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잘 모르지만 예전에 정발산에 살았다고 확신한다. 이렇게 확신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칼의 노래>를 읽고 그의 문장과 작가 정신에 푸욱 빠진 나는 그 후로 다른 소설과 산문집을 읽고 있는 중이었다. 그 무렵 일산의 정발산에 사는 오빠네 신혼집에 놀러 간 적이 있다. 하룻밤을 묵은 나는 오전 8시 30분경 버스를 타고 서울의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내가 버스를 탄 후 한 정거장 지난 다음 역에서 벙거지 모자를 푹 눌러쓴 한 아저씨가 버스를 탔다. 나는 한눈에 그가 작가 김훈이라는 걸 알아봤다. 흰색 옥스퍼드 셔츠에 회색 조끼를 입고, 연한 베이지색 면 카고 바지를 입은 그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 아.. 아닌가?다른 옷이었을 수도 있다. 그는 여튼 늘 비슷비슷하게 옷을 입는다.
그를 본 바로 그때, 그가 일산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작가는 일산 호수공원을 무척 좋아한다고 산문에 여러 번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다가가서 사인을 받을까 말까 짧은 순간이지만 500번 정도 고민했다. 아침 일찍 어딘가 산행을 나가는 걸 지도 몰랐다. 등산화를 신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연히 사인 따위로 귀찮게 하는 건 진정한 팬이 아닐 것이다. 버스 안이라 좀 부끄러운 일이기도 했고...
문득 내가 노래방에 가면 꼭 선곡하는 18번 자자의 '버스 안에서'를 떠올렸다. 노래의 남주는 '난 매일 아침 학교 가는 버스 안에서' 그녀를 만나지만 나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일지 몰랐다. 또 막상 김훈 작가님은 이렇게 생각하실지도 몰랐다.
'아니야, 난 괜찮아, 그런 부담 갖지 마~'
나는 용기를 짜내어 버스 의자에 앉은 작가님께 다가가 사인을 부탁드렸다. 사인보다는 내 존경심을 어떤 방식으로든 그에게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작가님은 무뚝뚝함으로 포장하며 다정하게 사인을 해주었다. 표정은 무뚝뚝하지만 눈빛이 따스하다는 걸 느꼈다. 나는 그 사인을 현재 잃어버렸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에 대한 나의 사랑을 의심하지는 말아달라...
선생은 늘 모자를 얹어서 쓰는데...머리가 꽤나 크신 모양이다.
작가로서의 김훈을 사랑한다. 그의 문장을 사랑한다. 사람과 사물에 대한 그의 시선을 사랑하고 그의 사유를 사랑한다. 그의 소설을 사랑하고 그의 산문집은 더 사랑한다. 연애소설을 잘 못써서 사랑한다. 작가가 쓴 유일한 연애소설 비슷한 작품이 <내 젊은 날의 숲>인데 로맨스가 하나도 로맨틱하지 않아서 소설을 읽으며 마구 웃었다. 선생은 스스로도 연애소설을 잘 못쓰겠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어쨌든 난 그 소설을 두 번 더 읽었다. 여주인공의시선을 따라 내면의 깊은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사유가 나는 무척 좋았다.선생의 글 속에는 사물에 대한 깊은 사색과 놀라운 통찰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사유와 통찰을 묵직한 언어로 전달해서 그의 말들이 두꺼운 놋쇠 그릇에 담긴 듯 안정감을, 신뢰를 준다. 그는 화려한 문체를 구사할 필요가 없다. 그의 철학과 사유가 이미 유려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제자가 아니지만 내 마음대로 그를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싶다.
김훈 선생의 <칼의 노래>를 읽은 후, 나는 문장의 힘에 눈을 떴던 것 같다. 화려하지 않지만 말의 뼈가 굳건하고 옹골찬 문장의 힘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문장의 힘은 단어의 조합만으로 이룰 수 없다는 것도 그의 글로 알았다. 자신이 쓰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온전한 이해 없이는 그런 문장이 나올 수 없다. 겉멋이 전혀 없는 담백한 문장으로 사람의 혼을 빼놓고 가슴을 울리는 힘! 글의 힘을 나는 김훈 작가로 인해 비로소 맛보고 경험하게 되었다.
나는 선생의 작품 중 <칼의 노래> 외에 <현의 노래>, <강산무진>, <내 젊은 날의 숲>, <자전거 여행 1,2>, <밥벌이의 지겨움>, <연필로 쓰기>를 읽었고, 아직 읽지 못한 몇 개의 작품들이 더 있다. 일부러 아껴두는 것이다. 넷플릭스 시리즈가 아무리 재밌어도 하루에 다 몰아보면 말할 수 없는 공허가 몰려드는 것을 알기에...
선생이 코로나 19가 막 극성을 부리던 시기에 기고한 글을 무척 사랑한다.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어떤 가장에 대해, 산업재해로 인한 무수한 죽음에 대해 쓴 글 또한 무척 사랑한다. 어떤 시절에든 소신을 당당히 밝히는 노 작가에게서 나는 푸르디푸른 청년의 영혼을 본다. 그가 오래오래 건강하길 소망해본다.
참고로, 선생은 기형도 시인이 살아생전에 좋은 선배였다고 기형도의 시집 <입속의 검은 잎> 해설에 언급된다. 선생 자신도 신문사 기자로 오래 몸 담아 왔기에 역시나 신문 기자였던 시인과 친분이 있었던 모양이다. 인간에 대한 두 사람의 따듯한 시선은 어쩐지 닮은 구석이 많은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