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잡문집 03화

I felt perfect!

완전한 기쁨을 준 존재들에 대한 찬가

by 김정은

대학 신입생이던 시절, 친한 선배를 따라 학교 근방에 있던 음반가게에 들렀던 적이 있다. 선배는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 나왔던 노래 'When I fall in love'를, 영화 주제곡을 부른 셀린 디온 스타일이 아닌 좀 더 고전적인 느낌의 연주로 찾고 있었다. 까다로운 선배의 주문에도 불구하고 음반 가게 사장님은 별 고민 없이 나탈리 콜이라는 미국 흑인 여가수의 음반인 'Unforgettable' 추천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CD 플레이어에 음반을 넣고 음악을 듣던 선배는 자신이 찾고 있던 가수가 아니라면서 그 음반을 내게 선물로 주었다. 집으로 돌아와 그 음반을 CD플레이어에 넣고 재생한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음반을 앞으로 평생 듣게 되리라는 것을...



살다 보면, 비록 44년 밖에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세상에는 나에게 놀라우리만치 '완전한 만족감'을 주는 것이 존재함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런 경험은 마치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선사한다. 게다가 사람과는 달리 그것들은 변하지도 않는다. 그 사랑의 지속은 오로지 내게 달렸다.


내게 온전한 만족감을 선사하는 것들이 실은 내게만 특별한 것이고 다른 이들에게는 별다를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지극히 내 개인적인 취향을 충족한 것일 뿐이고, 그런 기쁨을 맛볼 수 있도록 내 취향의 기준이나 만족의 역치가 그다지 높지 않은 덕분이기도 하다. 어쩌면 기쁨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이 남들보다 잘 생성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10대 때에는 대학 입시를 위해 공부하느라 무언가를 향유하거나 즐길 겨를이 없었다. 그러니 그 시절에는 단 한 번의 만남으로 내 영혼에 충만한 기쁨을 주는 것들이 세상에 있을 거라는 걸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당시에는 내가 만나는 세계가 워낙에 좁았던 데다(집-학교-독서실), 그 세계가 전부 인 줄로만 착각하던 때라 수험생활은 늘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터널이자 통과해야만 하는 숙제 같았다. 밤 11시 학교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지하로 끌려가는 페르세포네의 마음으로 독서실로 다시 향하곤 했었기에 10대에는 산다는 것이 조금... 아니.. 꽤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 대학에 오고 나니 세상에 재미있는 것이 이렇게도 많다니!

나탈리 콜은 유명한 흑인 재주 피아니스트이자 가수인 냇 킹 콜의 딸이기도 하다. 이 앨범은 아버지를 추모하며 아버지가 자주 부르던 노래들을 엄선하여 딸이 다시 부른 앨범이다.


'Unforgettale'이라는 앨범에 담긴 곡 하나하나, 나탈리라는 가수의 음색 모두 너무나도 완벽했기에 그 음반에 난 스크래치로 더 이상 음악을 들을 수 없을 때까지 거의 20년간 나는 이 음반을 들었다. 음반에 수록된 'The very thought of you' 라던가 'Mona Lisa', 'Smile' , ' L-O-V-E', 'Too young' , 'Unforgettable' 같은 수록곡들은 아무리 날고 긴다는 다른 가수들의 버전을 들어봐도 나탈리 콜과 그녀의 재즈 밴드가 만드는 그 완벽함을 내게 주지 못했다. 나탈리 콜의 다른 음반들도 사서 들었지만 'Unforgettable' 만큼 내게 임팩트를 주는 음악은 없었다. 그녀의 다른 음반들에는 조금 실망하긴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생전 처음으로 경험한 '완전한 충만감'은 그 음반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스무 살이 된 대학교 2학년 시절,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 숲)'를 처음 읽었다. 고등학생 때 몇 번 시도를 해보았다가 첫 한 두 페이지의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덮어버렸던 그 소설이 스무 살이 되니 문득 읽힐 기분이 들었고 실제로 책을 잡은 후 끝까지 단숨에 읽어버렸다. 읽고 난 후 한동안 멍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나는 아주 오랫동안 다른 소설을 읽지 못했다. 그리고 소설을 쓰겠다는 치기 어린 마음도 그때 날개가 팍 꺾여버렸다.


내가 만일 소설을 쓴다면 이렇게 쓰고 싶다고 그저 모호하게만 꿈꾸던 이야기를 일본의 한 작가가 완벽하게 구현해 버린 것이었다. 내가 그려내고 싶었던 그림을 다른 사람이 이미 오래전에 완성해 두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충만감과 자괴감이라니....'상실의 시대' 이후로 아주 오랫동안 어떤 소설을 읽어도 재미가 없고 시큰둥했다. 완전한 충만감에 이런 부작용이 있을 줄은 몰랐지... 40대가 되어 5번째로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남자 주인공 와타나베가 영 쓰레기 같다는 생각이 들고 난 후 나는 '상실의 시대'의 짙은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아주 오랫동안 소설을 쓸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 후에 또다시 만난 '완전한 세계'는 2003년에 발매된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앨범 'Gun Woo Baik plays Gabriel Faure'였다. 클래식 마니아인 나는 피아노 연주곡들을 특히 좋아하는데 당대의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모차르트나 베토벤, 쇼팽, 리스트에서부터 현대의 피아니스트들(루빈스타인)까지 피아니스트 계보를 정리한 백과사전 같은 책을 읽어가며 명연주가들의 명반들을 찾아 듣곤 했다. 피아니스트들은 특히 작곡가 별로 스페셜리스트들이 있기 마련인데 예를 들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는 박하우스, 쇼팽은 폴리니와 짐머만, 리스트는 미켈란젤로와 아르헤리치, 바흐는 글렌 굴드, 모차르트는 클라라 하스킬, 에릭 사티는 파스칼 로제 등 작곡가별로 대표하는 유명 피아니스트들이 있다. 그리고 모든 연주를 다 잘하는 피아니스트 중에서도 최고의 마에스트로로 '호로비츠'와 '리흐테르'를 꼽는다.


이들의 연주를 대부분 찾아들었고, 위에 언급한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굉장히 좋아하지만 무인도에 가져가야 할 단 한 장의 클래식 음반을 골라야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백건우의 포레 연주를 선택할 것이다. 포레의 피아노 곡들이 담긴 이 음반을 처음 듣고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던 기억이 난다. 백건우가 연주하는 포레의 음악을 듣는 순간 약 150여 년 전에 살았던 가브리엘 포레라는 사람의 영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포레가 느끼고 표현했던 심상이, 그의 영혼의 풍경이 묘하게도 내가 보는 나와 닮았다는 것을 느꼈다.


양귀비가 핀 6월의 초록 들판을 칼라가 아닌 흑백 티브이로 볼 때의 황망함, 온통 억새로 뒤덮인 어느 초원의 황량함, 폭풍을 닮고 싶은 휑한 들판의 평범한 가을바람, 베토벤이나 브람스처럼 묵직하고 깊고 싶지만 그렇기엔 자유롭고, 청교도적인 엄격함에 발이 묶인 채 방랑을 꿈꾸는, 이율배반적인 인간의 부조리한 생을 음악으로, 연주로 온전하게 담아 놓았다고나 할까. 백건우의 포레를 들은 후로 다른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포레는 찾아 들을 필요가 없었다. 백건우가 너무나 완벽하게 포레를 해석해 놓았기 때문에, 완벽을 맛본 나로서는 다른 피아니스트들의 연주에서 이런 음반을 찾고 싶다는 궁금증이 전혀 들지 않았다.



백건우 포레와 거의 비슷하게 만족감을 주는 음반이 하나 더 있긴 하다.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그것이다. 글렌 굴드의 바흐 연주가 아무리 좋아도 다른 피아니스트는 어떻게 해석할지 궁금증이 일지만 백건우의 포레 연주는 그러질 않는다. 그것은 마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난 포만감에 다른 음식이 전혀 당기지 않는 것과 흡사하다. 백건우의 다른 연주들이 다 동일한 감동을 주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포레 음반만이 내게 완전함을 느끼게 한다.




영화 중에도 내게 '완전한 충만감'을 맛보게 한 작품이 있다. 바로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2000, in the mood for love)'이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배우들의 연기와, 주인공들의 이야기, 영상미와 음악, 분위기 모든 것이 완벽하게 아름답고 우아해서 이토록 심미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충만감을 느끼게 해 준 영화는 전에도 후에도 없었다.


특히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을 한 장만옥은 내가 본 그 어떤 미인들도 따라갈 수 없는 미모를 보여준다. 장만옥의 다른 영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 스크린을 꽉 채운다. 이루지 못한 사랑의 서글픔과 애잔함에 가슴이 콱 메어 오지만 이상하게 눈물은 나지 않는다.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충분히 아름다웠기 때문에...


화양연화는 OST로도 유명한데 특히 엔딩 크레딧 때 흘러 나오는 Quizas Quizas Quizas(키싸스 키싸스 키싸스)는 위에 언급한 나탈리 콜의 아버지 냇 킹 콜이 불렀다. 취향이란 잘 변하지 않는 가 보다.

내게는 언제나 최고의 영화인 화양연화



완벽한 기쁨을 주는 존재를 만나는 것과 내 스스로가 완벽한 기쁨이 되는 것은 조금 다른 일 같다.


영화 <블랙 스완>에서 주인공 니나는 발레 '백조의 호수' 프리 마돈나가 된다. 백조는 완벽하게 표현하지만 흑조를 연기할 때 한계를 느끼는 그녀는 완벽한 흑조가 되기 위해, 완벽한 예술가가 되기 위해 그만 흑조의 영혼에 스스로를 잠식시켜버린다. 행복한 보통사람이기보다 완벽한 예술가가 되길 원했던 니나의 편집증은 광기가 되고, 그녀는 결국 완벽하게 흑조가 된다. 공연이 끝나고 죽어가던 니나는 이런 말을 남긴다. I felt it, I felt perfect, I was perfect...


"I felt it. I felt perfect. I was perfect."


나 자신이 완벽했음을 느끼는 기분이 무엇일지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니나처럼 스스로를 제물 삼을 만큼의 커다란, 아니 완전한 기쁨을 느낄 것 같긴 하다. 온전하게 만족을 주는 것과의 만남으로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충족감에 행복해져 오는데 그런 존재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라니! 피아니스트들이 피아노 앞에 앉아 몇 시간씩 연습하고, 글쟁이들이 글을 끊지 못하는 것처럼 예술가들이 예술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도 바로 이런 갈망에 있지 않을까. 단 한 번이라도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읊조리고 싶어서 말이다. I felt it. I felt perfect!




냇 킹 콜 & 나탈리 콜, Unforgettable ://youtu.be/KII5be5qExs


백건우, Fauré: Trois Romances sans paroles, Op. 17 - 3. Andante moderato https://www.youtube.com/watch?v=45CdhbiM1j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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