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 8시쯤 눈을 뜨면 제일 먼저 1층 거실로 내려가 창문의 블라인드를 걷습니다. 그리고 냉장고 문을 열어 계란과 베이컨, 소시지, 양상추와 이런저런 야채를 꺼냅니다. 마트에서 사 온 크로와상은 토스터에 살짝 굽고 계란은 작은 그릇에 한 개씩 깨서 넣어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려 수란을 만듭니다. 베이컨은 굽고 소시지는 끓는 물에 데친 후 야채는 먹기 좋게 썰어 샐러드를 만들지요. 접시를 꺼내 샐러드와 빵, 베이컨과 소시지를 보기 좋게 담고 커피 포트에 물을 가득 채운 후 전원을 켭니다.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거실에 놓인 텔레비전으로 유튜브를 열고 바흐의 <프랑스 조곡>을 검색합니다. 제일 먼저 보이는 안드라스 쉬프의 공연 영상을 선택합니다. 쉬프의 연주는 적당히 달달하고 적당히 담백합니다. 주말 아침에 듣기 딱인 연주이지요. 캐나다에 올 때 배로 실어 온 들롱기로 에스프레소를 추출한 후 뜨거운 물을 붓고 아메리카노를 만듭니다. 향기로운 커피 향이 가득한 머그잔을 손에 들고 소파에 앉은 후 <프랑스 조곡 5번>을 잠깐 듣습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나면 드디어 온몸과 영혼이 온전히 깨어납니다. 그럼 소리를 높여 외칩니다. "다들 아침 먹어요~"
주말 오전을 깨우는 저만의 모닝 루틴입니다. 저는 이 루틴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가족들을 위해 브런치를 만들고 나만을 위해서는 바흐와 커피를 선택하지요. <프랑스 조곡>이 잔잔히 울려 퍼지는 가운데 잠에서 덜 깬 가족들이 식탁에 옹기종기 모여 아침을 먹습니다. 가족들의 입속으로 음식이 들어가는 모습을 볼 때 그렇게 행복할 수 없습니다. 달그락달그락 그릇에 포크 부딪치는 소리마저 사랑스럽습니다. 거실 창으로 들어온 아침 햇살도 우리 가족 브런치에 참여합니다. 초대받지 않아도, 갑작스레 불쑥 쳐들어와도 언제나 환영받는 유일한 손님이랄까요.
바흐의 음악과 카페인은 제게 있어 레드 와인과 소고기 스테이크, 막걸리와 파전, 치킨과 맥주처럼 천생연분, 떼려야 뗄 수 없는 궁극의 마리아주입니다. 바흐와 카페인이 제게만 시너지를 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바흐도 커피를 무척 좋아했단 겁니다. 얼마나 좋아했는지 심지어 <커피 칸타타>라는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잘생긴 데다 멋있기까지 한 배우 공유가 모델로 광고하는 커피 음료인 <카페 칸타타>라는 용어는 바로 이 바흐의 음악 제목에서 가져온 것이지요.
성악가 엠마 커크비와 데이비드 토마스가 노래한 바흐 칸타타 음반의 표지
바흐가 살던 17세기 무렵, 유럽 전역에 커피 열풍이 불면서 가정은 물론 오늘날의 카페 원조격인 커피하우스가 우후죽순 생겨나게 됩니다. 커피 칸타타라고 불리는 바흐의 작품 <칸타타 BWV 211>은 그런 커피하우스에서 공연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커피 광고 음악이었다고 합니다. 주요 내용은 커피를 너무나 좋아하는 딸에게 커피 좀 그만 마시라는 아버지와 딸의 재미난 실랑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오늘은 <커피 칸타타>가 아닌 <프랑스 조곡>이 주인공이니 커피 칸타타 이야기는 이쯤에서 정리할게요.
프랑스 조곡(French suite, 프랑스 모음곡이라고도 불림)은 바흐가 두 번째 아내인 안나 막달레나와 결혼 한 이듬해인 1722년에 만들기 시작하여 1725년까지 완성한 6개의 건반용 연주 모음곡을 일컫습니다. 당시에는 피아노가 없었고 피아노의 조상 격인 하프시코드가 건반악기였지만 오늘날에는 피아노로 연주되고 있습니다. 프랑스 조곡이라는 이름은 바흐가 직접 붙인 것은 아닙니다. 바흐의 전기 작가인 요한 니콜라우스 포르켈이 그의 바흐 전기 책에서 '프랑스 식으로 쓰였기 때문에 프랑스 모음곡이라고 부른다'라고 쓴 데서 기인했다고 하지요.
이 조곡의 조성을 살펴보면 1번부터 3번까지는 단조로, 4번부터 6번까지는 장조로 작곡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사실 춤곡을 모아놓은 것입니다. 바로크 시대 작곡가들은 춤곡을 많이 만들었는데 이탈리아 스타일, 프랑스 스타일, 영국 스타일, 그리고 저 멀리 중남미 신대륙에서 건너온 스타일 등 다양한 종류의 춤곡들을 가져와 자신의 음악 스타일이나 귀족들의 취향에 따라 만들었습니다.
<프랑스 조곡> 1번 D단조 BWV 812는 알레망드, 쿠랑트, 사라방드, 미뉴에트, 지그 총 5개의 춤곡으로 구성되어 있고, 2번 C단조 BWV 813은 알라망드, 쿠랑트, 사라방드, 에어(혹은 에르), 미뉴에트, 지그까지 6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프랑스 조곡 1번 알레망드를 하프시코드 음색으로 연주하는 영상을 발견했는데요. 눈을 감고 듣고 있으면 실제로 17세기로 시간 여행하는 기분이 듭니다. 연주 속도도 보통의 피아니스트들 연주보다 약간 느려서 개인적으로 훨씬 바흐 특유의 우아함과 센티멘털이 잘 표현되는 것 같아요.
<프랑스 조곡> 3번 B단조 BWV 814는 알레망드, 쿠랑트, 사라방드, 앙글레즈, 미뉴에트, 지그로 되어 있는데 앙글레즈가 눈에 띄지요. 앙글레즈(anglaise)는 '영국 풍으로'라는 의미입니다. 프랑스 풍의 춤곡들을 모아두었는데 그 사이에 영국풍의 춤곡을 하나 끼워 넣은 것이지요. 바흐는 <프랑스 조곡>과 비슷하게 <영국 조곡>도 만들었습니다. 두 작품의 가장 큰 차이라면 <영국 조곡>에는 첫 악장을 프렐류드(전주곡)로 시작하지만 <프랑스 조곡>에서는 프렐류드 없이 알레망드로 바로 시작합니다. <영국 조곡>은 장중하고 <프랑스 조곡>은 우아함이 가득합니다.
가보트가 등장하는 4번은 앞선 3개의 모음곡과 달리 장조로 시작합니다. 아무래도 장조이다 보니 긍정적이면서도 더 화려합니다. 6개의 모음곡 중 가장 좋아하는 5번은 쾌활함과 사랑스러움이 가득하지요. 더욱이 5번의 가보트와 부레, 루르는 프랑스 춤곡이기 때문에 프랑스 조곡 가운데 가장 프랑스풍에 가깝습니다. 마지막 6번은 8개 악장으로 이루어져 가장 길고 규모가 큽니다.
바흐 악보, 프랑스 조곡 5번 가보트 Gavotte from first notebook for Anna Magdalena Bach (French suite No.5)
바흐의 <프랑스 조곡>은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연주를 했고, 안드라스 쉬프나 글렌 굴드, 리흐테르, 잉그리드 헤블러 등의 연주를 좋아하지만 가장 사랑하는 연주가는 러시아 피아니스트 타티아나 니콜라예바(1924-1993)입니다. 그녀가 연주한 프랑스 조곡 제1번의 첫 번째 곡 알레망드를 듣자마자 첫눈에 반해 밤을 새우며 그녀의 연주를 듣고 또 듣던 기억이 납니다.
타티아나의 프랑스 조곡 연주는 다른 연주가들에 비해 연주 속도가 약간 느린 편입니다. 통상의 빠르기로 프랑스 조곡을 많이 들어왔던 분들은 타티아나의 연주를 처음 접할 때 답답함을 호소하곤 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프랑스 조곡의 매력을 잘 몰랐다가 타티아나의 차분한 해석 덕분에 비로소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빠른 연주를 선호하지 않게 되었지요. 바흐처럼 바로크 작품들은 피아니스트들이 감정을 많이 자제하며 연주합니다. 바로크 음악은 낭만주의 시대의 작품에서 보듯 감정이 휘몰아치거나 격정적이지는 않기 때문에 더더욱 악보에 충실하지요.
바흐의 피아노 작품들을 잘 들여다보면 유기적이고 수학적으로 조성이 짜여 있습니다. 그래서 바흐의 곡을 악보에 지나치게 충실하게만 해석하면 인간미가 덜하고 또 낭만적으로 치우쳐 연주하면 바로크 특유의 분위기를 넘어서는 것 같아 조금 거북합니다. 끈적끈적한 바흐는 생각만 해도 몸서리 쳐진달까요. 바흐 음악이 가진 단단함, 바위처럼 단단하지만 결코 광물의 차가움은 아니고, 그렇다고 뜨거운 불은 더더욱 아닌 바흐의 작품은 장중함과 서정성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고 보는데 타티아나의 해석이 바로 그렇습니다. 그녀는 바흐의 곡을 화성학의 교과서처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산된 화음과 화음들이 그려낸 붓질은 결국 인간의 자화상임을, 고뇌하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괴로워하면서도 성스럽고도 고결한 내면을 가진 참된 인간상을 잘 보여줍니다.
1924년생인 타티아나는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어머니와 아마추어지만 바이올린과 첼로를 수준급으로 연주한 아버지 사이에서 음악적 유전자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4살 때 바흐의 전주곡을 연주하고 12살 때 작곡을 할 정도로 천재였던 그녀는 열여덟 살이 되던 1942년 모스크바 음악원에 들어갑니다. 그녀의 스승은 리흐테르의 위대한 스승 네이가우스, 이굼노프와 더불어 모스크바 유학원의 1세대 피아노 학파 중 한 사람인 골덴바이저였습니다. 골덴바이저를 사사한 그녀는 이미 러시아에서 유명한 피아니스트였지만 바흐 서거 200주년을 기념하는 라히프치히 국제 바흐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로 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바흐 스페셜리스트로서 수많은 바흐 연주 음악을 남겼던 타티아나는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후학들을 배출하는 훌륭한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제자들은 타티아나가 다정하고 웃음이 많은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타티아나에게 20년 이상 피아노를 배우고 역시 바흐 스페셜리스트인 미하일 페투호프는 그녀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20년 동안 저는 그녀(타티아나)가 다른 사람에게 욕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녀가 하는 최대의 욕은 '그는 매우 복잡한 사람이야'가 전부였지요. 일상에서는 누구보다 천진난만한 영혼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프레임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해석하기 마련입니다. 그 프레임이 좁으면 세상도 좁게 보일 테고, 프레임에 빨간 필터를 끼우면 세상은 온통 붉게 보이겠지요. 음악을 해석하는 것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연주가는 음악을 연주함에 있어 해석을 하기보다는 자신의 테크닉을 과시합니다. 또 지나치게 음악에 빠져 감정 과잉의 나르시시스트적인 연주를 보여주기도 하지요. 사람들이 오랫동안 찾아 듣는, 감동을 주고 눈물을 흘리게 하는 연주가들에게서 저는 주로 이 세 가지를 공통적으로 느낍니다.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 '작곡가에 대한 깊은 존경', 그리고 '인간에 대한 따듯한 심성' 말이지요. 이런 연주를 만나게 되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작곡가는 화성이라는 용광로에 자신의 영감을 집어넣어 음악이라는 원석을 만드는 연금술사입니다. 그리고 그 원석이 반짝반짝 빛이 나는 보석으로 만드는 이는 바로 연주가들이지요. 타티아나가 세공한 보석은 영롱하고 화려하지만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다이아몬드 류의 차가운 보석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덜 화려하고 덜 영롱할지라도 보는 이에게 과시하지 않고 은은하게 빛나는 고귀한 오펄이나 진주 같습니다. 타티아나의 연주를 듣노라면 비록 저 세상에 있을찌라도 바흐가 얼마나 행복해 할까 저절로 상상이 됩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혈기 왕성하던 20대 시절에는 바흐가 좀... 아니... 꽤 지루했습니다. 당시에는 프랑스 작곡가들을 거친 후 브람스, 슈만, 말러와 같은 감정이 풍부하고 비극적인 낭만주의 시대 작품들을 선호했지요. 나이 들 수록 고전시대로 거슬러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듣다가 바로크로 더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마치 고향으로 회귀하는 연어처럼 말이지요. 젊은 시절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바흐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 덕분에 나이 드는 것이 생각보다 퍽 멋지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고요.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바흐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흐 음악을 관통하는 긍정성에 있습니다. 바흐를 들으면 꼭 내 남자 같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면, 제 남편의 성정과 바흐 음악이 주는 이미지가 비슷하다고 종종 느끼거든요.
우리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여느 아이들처럼(어쩌면 더?) 집을 무척이나 잘 어지릅니다. 엔트로피의 법칙이 육신을 입어 현현한 것인 양 최선을 다해 최고로 어지럽히기 때문에 집안 어지르기 대회에 나가면 분명 세계 챔피언 감이라고 자부할 정도지요. 정리정돈을 좋아하는 제 유전자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지 도통 알 수 없어서 좌절은 물론 끝없이 반복되는 청소와 정리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더랬습니다. 야근에 지쳐 간신히 몸을 끌고 퇴근하면 거실과 방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옷가지, 돌돌 말린 양말들, 장난감, 색종이, 색종이를 자른 흔적들, 굴러다니는 가위, 풀, 과자 봉지, 사탕 껍질, 바둑알들, 레고 조각들, 펜 뚜껑들, 지우개 가루들... 을 보면 한숨부터 나왔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퇴근하는 남편을 집 앞에서 만나 함께 집에 들어갔습니다. 역시나 집 안은 그야말로 난장 그 자체였지요. 혈압이 오르고 머리통이 무거워지려는 그때, 남편이 거실로 들어서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우리 아그들~ 오늘도 엄청 잘 놀았구나~!"
아이들이 만든 카오스를 보면 저는 한숨부터 나왔는데 남편은 그 난장 속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재밌게 지냈는지를 발견하고 정말 순수하게 기뻐하는 겁니다. 그때 받은 충격이란! 그날 이후로 저는 더 이상 아이들이 만드는 난장판을 보며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저분한 집안은 더 이상 지저분한 집안이 아니라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하는 소중한 장소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더 재밌는 사실은, 이렇게 어지럽혀 놓은 집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청소하고 나면 우리 집이 '리조트'가 되었다며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좋아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또 금세 지저분하게 만들지요. 그래서 지금은 청소할 때 스트레스보다는 기쁜 마음이 더 큽니다. '우리 아이들, 또 신나게 어지럽히겠구나' 라며 말이지요. 다행히(?) 아이들이 점점 커가면서 어지럽히기 재능도 서서히 모습을 감추어 가는 듯합디다만.... 흠.. 흠
남편을 보면 참... 바흐 음악을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낭만주의적인 감정의 과잉이나 기복 없이 그의 음악인 <평균율>처럼 물 흐르듯 세상을 흘러갈 줄 알고, 때로는 수학적으로 냉철하기도 하지만 그 냉철함으로 결코 타인을 찌르지 않으며, 프랑스 음악처럼 세련미와 낭만은 좀 부족하지만 충직한 독일인 같은 남편이 옆에 있기에 예민하고 생각 많은 저 같은 사람이 어지러운 세상에 그나마 좀 더 적응할 수 있는 듯합니다. 바흐 음악을 좋아하는 취향이 실은 내 남자에게도 그대로 적용했다는 사실에... 취향은 변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다시금 확인했지요. 아! 우리 아이들의 어지럽히기 유전자는 남편에게 온 것입니다. 세상에서 그렇게 잘 어지르는 남자를 연애하던 시절 처음 봤으니까요. ㅎㅎㅎ
부부의 사랑은 슬플 때나 기쁠 때나 괴로울 때나 즐거울 때나 함께 두 손을 맞잡고 <프랑스 조곡>에 맞춰 춤을 추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바흐가 안나 막달레나와의 신혼 시기에 이 곡을 만들었으니 제 추측이 어느 정도 맞을 겁니다. 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