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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Apr 25. 2023

사랑이 무어냐 물으신다면

죽은 자들을 측은히 여기지 마라, 사랑 없이 사는 자들을 측은히 여겨




죽어가는 자신을 보고 슬퍼하는 해리 포터에게 덤블도어 교수가 남긴 유언이다. 이 대사를 듣자마자(정확히는 한국어 자막을 보자마자)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큰 충격을 받았다. 죽음에 이르는 사람보다 더 불쌍한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랑 없이 사는 사람들이라는 말, 사랑 없이 사는 삶은 죽음보다 못하다는 노 마법사의 유언이 그 어떤 비수보다 내 심장을 찔렀다. 나는 과연 사랑 있시(?) 살고 있는 존재이련가...


'사랑해'라는 말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말은 그저 발성기관을 통해 만들어진, 사람의 귀로 들을 수 있는 주파수의 하나일 뿐이다. 소리는 있지만 질량도 형체도 없으니 실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실체가 없는 것의 진실함을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 '사랑해'라는 발화된 언어는 진실로 그러함을 증명하지 않으면 소리의 종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무것도 아니다.


물리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말속의 진실을 믿을 수 있게 하는 건 오로지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낸 사람이 행동으로 입증해 보일 때뿐이다. 사랑의 마음은 가득하지만 말로 표현하기 낯간지러워 그저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만 하는 나 같은 사람은 더더욱 말로 때우는 사랑을, 그런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고로, 누군가 나에게 사랑이 무어냐 물으신다면 사랑은 치킨을 튀기는 일이라고 하겠다.


닭날개 스무 조각을 소금과 설탕을 녹인 물에 반나절 가량 염지하고,


밀가루, 전분가루 그리고 튀김가루를 물에 섞어 익었을 때 ASMR로 당장 사용해도 될 만치의  바삭바삭, 아삭아삭한 튀김옷을 만들고,

(밀가루만으로만 튀김옷을 만들면 눅눅하고 딱딱해진다는 건 몇 번 튀겨보면 알 일)


기름을 아끼지 않고(한번 튀기고 버릴 때 아까워서 눈물이 찔끔 날 지언정) 냄비에 넣어 30분가량 진득하게 불 앞에 서서 닭이 타지 않도록 튀겨낸 후,

(원하는 바삭함을 얻으려면 한번 튀겨서는 어림도 없다)


다시 약 10분간 두 번째로 닭을 튀겨내는 동안

가족들의 입 안에서 나는 아삭아삭한 소리가 환청으로 들리고 

이 번거로운 노동의 결과가 가족들을 얼마나 행복하게 할까 상상하게 되고,

그 상상으로 내 두뇌 속에는 도파민과 세로토닌이 활성화되어  번잡한 행위를 두 번 다시 하지 않으리라는 초심을 잃게 만들게 하고,


드디어 방금 튀겨낸 닭의 아름다운 자태에 온 식구가 탄성을 지르고, 입 안에 넣고 맛보는 순간 '대박'이라고 외치는 가족들의 기쁨이, 사랑의 연료요, 삶의 환희다.


나는 튀기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귀찮다. 어쩌다 큰 마음을 먹고 치킨이나 새우, 탕수육이나 돈가스를 위해 돼지고기를 튀길 때 내가 가족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물론, 치세권(치킨이 배달 10여분 거리에 있는 권역)이나 세권(중국집이 배달 10여분 거리에 있는 권역)이 보장되는 곳에 살고 있더라면... 굳이 사랑을 증명하려 애쓰진 않았을지도...


가족에게 참 사랑을 증명하고 싶다면... 치킨이든 탕수육이든 직접 튀기게 만드는 캐나다로 오세요.... 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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