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개인교수

by 김정은

<로스트>라는 수년 전에 엄청 유명했던 미국 드라마가 있다. 비행기가 미지의 섬에 불시착한 후 살아남은 승객들이 미스터리한 섬에서 생존해 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내 칼리지 첫 주가 딱 그런 느낌이었다. 26명의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학생들 사이에서 나 홀로 조난당한 사람 같았다. 클래스 메이트들과 눈을 마주치더라도 흔하디 흔한 'Hi' 나 'Hello'라는 인사가 입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꿀 먹은 벙어리인 나와 달리 교수들과 자유롭게 영어로 소통하는 반 친구들을 보니 더욱 주눅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수업 2주 차에 접어 드니 서먹서먹하던 반 친구들과 한 명 두 명씩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게다가 같은 반에 한국인 학생이 나 말고 한 명 더 있어 천만다행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20년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의지가지 하는 사이가 되었다.


학우들과 인사는 텄지만 수업은 여전히 따라가기 벅찼다. 웹 디자인과 개발이라는 전공 특성상 교재는 따로 없었고 교수들이 수업 때마다 강의 주제에 맞춰 수업 자료를 만들어 왔다. 하지만 대부분 파워포인트로 만든 슬라이드라 주요 요점만 적혀 있었고 상세한 내용은 오로지 교수들의 구두로만 진행됐다. 여섯 명의 교수 중 마르코 교수 외에는 모두 속사포 랩이어서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강의 내용을 녹음해 봤는데 세 시간짜리 강의를 집에 와서 다시 듣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솔직히 곤욕이었다 ㅠ.ㅠ).


5개의 전공 수업 중 2개는 디자인 이론 수업이었고 나머지 수업은 디자인 실기와 코딩 수업이었다. 이론 수업은 슬라이드 위주로 공부하고 잘 모르는 내용은 구글링 했다. 디자인 실기는 어도비사에 나온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XD 등의 프로그램을 배우고, 코딩은 HTML과 CSS를 배웠다.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 같은 편집 툴을 생전 처음 써보는 나로서는 기능 하나하나가 너무 어려웠다. 수업 시간에는 분명 잘 따라갔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와서 숙제를 하려면 머리가 먹통이 되어 버렸다. 뇌과학에서 기억력은 3일까지 간다고 하던데 나는 하루만 지나면 99프로가 증발되어 버렸다. 아... 이래서 옛 말에 공부도 때가 있다(조금이라도 어릴 때)고 했나 보다.


시험보다 실기 위주의 숙제가 많고 학점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매주 과제가 주어졌다. 그리고 숙제를 하기 위해서는 수업 시간에 배운 기능에 대해 복습이 반드시 필요했다. 학우들 사이에서 '에인절(Angel)'로 불리는 마르코 교수가 전공과 관련한 링크드인의 무료 강의 소스를 많이 알려주었다. 처음에는 영어 향상을 위해 링크드인의 영어 강의를 찾아들었지만 5분도 채 안되어 졸기 일쑤였다. 마치 강의의 연장선 같아서 조금만 온라인 강의를 들어도 피로도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하는 수 없이 유튜브에서 한국어로 된 강의를 검색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유튜브에 퀄리티 높은 강의들이 엄청 많았다. 세상에나... 이런 훌륭한 강의를 무료로 오픈해 주다니... 유튜브 만세! 유튜버 만세!!


이때부터 본격적인 주경야독, 아니 아니 주독야독이 시작되었다. 낮에는 칼리지에서 강의를 듣고, 밤에는 유튜브로 강의를 다시 찾아들었다. 거의 매일 새벽 한 시 혹은 두 시까지 유튜브로 복습을 해야 했다. 주말에는 과제를 하느라 푹 쉬기 어려웠다. 처음에는 이런 과정이 퍽 즐겁기도 했다. 미술을 공부한 적도 없고 디자인 관련 분야에서도 일해 본 경험이 전무한 나로서는 웹디자인과 웹개발 분야가 생소하고 어렵긴 했지만 한편으로 새로운 분야를 배우니 신기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1학기 커리큘럼이나 과제 난이도가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는 게 함정.


이쪽 분야의 유투버들 가운데 대단한 실력을 가진 분들이 많아 혀를 내둘렀다. 솔직히, 정말 솔직히 말하면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이 칼리지 교수들보다 훨씬 감각 있어 보인다. 캐나다에 와서 여러모로 느낀 점이 많지만 디자인만 두고 봤을 때 우리나라 디자인이 훨씬 세련되고 멋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특히 캐나다 텔레비전 광고를 보면 그 소박함과 투박함에 보는 내내 두 눈을 의심하게 된다. 이게 진짜 TV 광고라고? 정녕 이게 최선을 다한 건가? 이렇게 만든 광고 제작비는 과연 얼마일까... 등등 여러 생각이 든다.



유튜브 말고 또 한 명의 내 개인 교수는 바로 챗GPT이다. 내가 쓴 리포트를 GPT에게 보여주며 잘 쓴 건지 물어보면 기똥차게 피드백을 해 준다. 리포트 쓸 시간이 부족할 때는 목차를 잡아 달라고도 한다. 리포트 쓸 때 한국말로 먼저 쓴 후 영어로 번역을 하게 되는데 이 번역체가 네이티브 교수들 입장에서 어색할 때가 많다. 그래서 챗GPT에게 어색한 문장은 없는지 물어보면 꽤 도움이 된다. 물론 챗GPT에게 리포트 전체를 써 달라고 하면 절대 안 된다. 양심적으로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그대로 써서 학교에 제출하면 표절 시스템에 걸려 표절 학생이 된다. 캐나다에서는 표절을 3번 하면 대학교에서 퇴학당하고 기록에도 남아 취업할 때 불이익을 받는다.


코딩은 또 어떤가. 자바스크립트를 배우는데 도무지 언어체계가 이해가 가질 않아 챗GPT에게 코드를 설명해 달라고 하면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심지어는 어떤 기능을 코드로 짜야하는 숙제가 있는데 도저히 코딩이 어려울 때 챗GPT에게 물어본다. 물론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챗GPT가 공부한 자료들은 2021년 이전 자료들이라 알려 주는 코드들이 좀 올드하다는 느낌은 받았다. 그래도 이만큼 훌륭한 과외 선생님이 따로 없다.


이 두 명의 개인 교수가 없었더라면 나는 매일 밤마다 울면서 공부를 했을 것이다. 과외비도 들지 않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는 언제나 공부를 가르쳐주는 훌륭한 개인 교수님들을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전 세계 개발자님들께 심심한 감사를 보낸다. 노벨평화상, 제발 이 개발자들에게 주도록 건의하는 바이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커다란 평화를 가져다주었으니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수많은 학생과 직장인들이 나와 똑같은 심정이지 않을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가끔 스위티도 되고 허니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