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마존 프라임에서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인 지미 양의 스탠드 업을 시청한 적이 있다. 중국인인 지미 양은 동양인과 서양인의 문화적 차이를 코미디 단골 소재로 가져와 유쾌하게 풀어낸다. 그중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백인 여자친구가 지미에게 가족 간에 사용하는 애정을 드러내는 단어가 뭐냐고 묻자 자신은 아시아인 부모님 아래서 자랐는데 그런 말이 있겠느냐고 해서 한참 웃었다.
동양인은 서양인에 비해 무뚝뚝하다 보니 말로 사랑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미가 덧 붙이길 동양인에게 있어서 "food is love"이다. 사랑을 요리로 표현하는 동양인 특유의 정서에 백 프로, 아니 천 프로 공감이 갔다. 이 스탠드업을 보기 불과 몇 주전 브런치에 비슷한 요지의 글을 발행한 적도 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서양인들은 말을 할 때 확실히 스위트한 면이 있다. 한 번은 강의 쉬는 시간에 교수님에게 가서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 중 이해가 잘 가지 않아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교수님께 "Sir, I have a question, Can I ask you something?"이라고 하자 교수님 첫마디가 이랬다. "Sure, sweety"
또 한 번은 캐나다의 국민 카페인 팀 홀튼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목이 말라 카운터 직원에게 얼음물을 요청했다. 다른 직원에 비해 나이가 지긋한 백인 여성 직원에게 "Can I get a cup of ice water?"라고 하자 이 직원이 또 이렇게 대답하는 거다. "Sure, honey"
또, 이런 적도 있다. 학교 가는 버스를 탔는데 학생증이 없는 거다. 하는 수 없이 지갑을 찾는데 지갑도 없다. 글쎄 학생증과 지갑 몽땅 집에 두고 온 것이다(캐나다 런던에서는 팬쇼 칼리지 학생의 경우 버스요금이 무료). 50대로 보이는 백인 여성 기사에게 낭패한 얼굴로 팬쇼 칼리지 학생인데 학생증을 그만 집에 두고 왔다고 말하자 웃으며 내게 이렇게 답했다. "It's Okay, honey". 그러면서 버스를 타라고 손짓을 한다. 그녀의 친절 덕분에 나는 다행히 공짜로 버스를 타고 무사히 등교했다.
우리 아이들도 학교에서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스위티나 허니, 스위트허트 등의 호칭을 자주 듣는단다. 미드를 보면 부모들이 아이들과 대화할 때 습관처럼 'I love you, honey'라고 끝맺는다. 그래서 그걸 보고 나도 배워야겠다 싶어서 아침에 학교를 가는 아이에게 '학교 잘 다녀와, I love you, my girl'이라고 했더니 큰 아이가 이러더라. '이왕이면 sweetheart라고 불러주세요~'
'sweety'나 'honey', 'sweetheart'는 보통 부모가 아이들을 부를 때 자주 사용하는 영어 호칭이다. 물론 친구들 사이에서도 자주 쓴다. 남편이 아니어도 친하게 지내는 한국인 친구에게 나는 종종 '자기'라고 부르는데 이거랑 비슷한 느낌이려나? 하지만 서양인이어도 젊은이들은 애인 사이 외에는 이런 호칭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칼리지에서 서로를 이렇게 호칭하는 백인 친구들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40대 중반의 다 큰 어른인 내가 역시나 비슷하거나 좀 더 나이 많은 사람에게 '스위티' 혹은 '허니'라고 불리면 쑥스럽기도 하지만 솔직히 기분이 꽤 좋다. 그리고 상대방이 나를 이렇게 호칭하는 순간 나 역시 상대에게 조금 더 부드럽게, 좀 더 다정하게 대하게 된다. 말로만 하는 표현은 별로 힘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러지도 않은가 보다. 순식간에, 찰나의 순간에, 그저 그 단어만으로 내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지니 말이다. 그래서 요즘은 나도 이런 표현에 조금 더 익숙해지고 사용하려고 노력 중이다. 아직은 아이들에게만 사용 중이지만 사용 범위를 점차 확대해 보고 싶다. 레스토랑에서 나를 서빙하는 젊은 직원에게 한 번쯤은 'Sure, heney'라고 말해 보고 싶다. 아, 물론 남편에게도 ㅎㅎㅎ
나는 음식에 진심이다. 한국인이 그러하듯 먹는 것에도, 만드는 것에도 진심인 사람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음식으로 애정표현을 하는 경향이 있다. 친정엄마도, 시엄마도 가족들에게 자신의 애정을 음식으로 표현하신다. 그래서 친정에 가거나 시댁에 다녀오면 1킬로그램 이상 꼭 살이 찌게 된다. 한국 사람들은 왜 인사도 이러지 않나? "밥 먹었어?" "우리 꼭 밥 한번 먹자". 그래서 한국인은 대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점심시간을 칼 같이 지키고 최선을 다해 밥을 먹는다. 대학의 강의 시간표도 점심시간을 고려해 만든다. 그런데 캐나다 칼리지에 왔더니 여기는 점심시간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다. 점심 식사를 고려한 시간표 자체가 없다. 그래서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수업이 연달아 있는 날에는 점심도 없이 쫄쫄 굻으며 수업을 듣는다.
큰 아이의 말을 들어보니 초등학교에서도 사정은 비슷한 모양이다. 자기네 반에서 점심 도시락을 진정성 있게 싸 오는 사람은 자기뿐이란다. 실제로 반 친구가 우리 아이에게 네 도시락은 언제나 perfect라고 했다고 내게 전해 준 적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반 아이들 대부분 젤리, 과자, 감자튀김 등을 점심으로 싸 온다는 것이다. 피자를 싸 오면 그나마 양반이란다. 내 아이가 먹을 점심을... 이렇게 성의 없이 싸서 보낸다고???
이곳 사람들의 달달한 호칭 사용은 분명 배울 점이지만, 음식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법을 동양인에게 배울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러고 보니 'sweety'는 사탕과자이고, 'honey'는 꿀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