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40분에 기상하여 아이들 도시락과 아침을 만들었다. 앞으로 한 학기 동안 매주 수요일마다 남편의 칼리지 수업이 아침 8시, 내 수업이 아침 9시에 있다. 내가 사는 동네는 버스 정류장이 1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고 버스도 잘 안 오기 때문에 차로 남편을 학교까지 바래다주어야 했다. 도시락 싸고 후닥닥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화장을 할까 말 까 망설이다가 첫날이니만큼 비비 크림과 립스틱을 바른다. 머리 감을 시간은 없으니 내 최애 흰색 야구모자를 쓴다. 음. 좋았어. 5살은 어려 보이는군. 남편을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오니 8시 10분. 우리 집에서 메인 캠퍼스가 가까워 그나마 다행이다. 서둘러 아이들을 깨운다.
아이들도 새 학년의 새 학기 첫날(캐나다는 9월이 새로운 학년의 시작)이라 함께 등교하여 학교 운동장에서 반과 담임 선생님을 찾아주어야 한다. 여름방학 동안 전학이 많아 반이 늘었다더니 정말로 넓은 운동장이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7학년인 큰 아이는 알아서 교실과 선생님을 찾아갔지만 이제 3학년에 영어도 잘 못하는 둘째는 선생님을 찾아 주어야 한다. 한참을 헤매다 간신히 담심 선생님을 발견했다. 30대 중후반의 백인 여성인 선생님의 인상이 스위트하여 안심이다. 이런! 9시 10분... 지각이다. 내가 공부할 다운타운 캠퍼스로 부랴부랴 향한다.
9시 40분, 캠퍼스 바로 앞에 있는 코벤트가든마켓 지하주차장에 주차하고 부랴부랴 달려갔으나 엉뚱한 건물(다운타운에는 캠퍼스 빌딩이 2개)에서 헤매다가 강의실에 10시에 도착했다. 9시 수업인데 첫날부터 1시간이나 지각하는 클라쓰~~~ㅜㅜ... 그런데 이럴 수가!
코벤트가든마켓 정경
수업이 이미 끝나 있었다. 칠판에는 1층 세미나룸에서 열리는 취업설명회를 오리엔테이션으로 대체한다고 적혀 있다. 첫날은 수업을 안 하는 가 보다.
허탈한 마음으로 주차장으로 가서 주차장 요금을 정산하려는데 설명을 읽어봐도 도무지 정산 방법을 모르겠다. 지나가던 캐네디언 아저씨에게 물어 물어 간신히 정산을 한다. 오 마이갓, 1시간 남짓 주차했는데 13불? 주차비가 생각보다 비싸다. 다운타운 캠퍼스는 메인캠퍼스와 달리 주차장이 따로 없어서 나처럼 차를 가지고 오면 사설 주차장에 주차를 해야 하는데 주차 요금이 비싸 큰일이다. 집에 돌아온 후 버스노선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니 약 15분에서 20분 걸어서 정류장으로 간 후 버스를 타고 중간에 환승하는 등 총 1시간 10분이 걸리는 것으로 확인된다. 수요일 아침은 너무 바빠 버스 등교는 어려울 듯하다... 9시 수업이 있는 날은 차를 가지고 다니는 것으로 하고 저렴한 주차장을 찾아야겠다.
하루종일 정신이 없었는데 결과적으로 수업은 없었다. 허탈하지만 공사 때문에 캠퍼스 근처 시내가 복잡했는데 무사히 운전해서 다행이다. 코벤트가든 마켓에 주차하면 안 되겠다는 경제적인 교훈도 덤으로 얻었다.
강의실에서
2022. 9.8. 목요일 칼리지 수업 둘째 날
목요일은 오전 9시부터 수업이 총 2개가 있다. 남편의 수업 시간이 나보다 늦기 때문에 이 날은 남편이 나를 학교로 데려다주었다. 다운타운 캠퍼스 건물은 입구는 물론 강의실에 들어갈 때도 학생증을 찍어야 문이 열린다. 아마도 다운타운에 노숙자가 많기 때문 인 듯하다. 이 건물에서 컴퓨터 관련 전공 강의가 열리기 때문에 강의실마다 애플 컴퓨터나 일러스트레이션 태블릿 등 값비싼 장비가 많다. 그나저나 애플 데스크톱 디자인이 너무 예쁘다.
수업 시작 전 일찍 도착해 만학도답게 맨 앞자리에 앉았다. 슬슬 우리 반 학생들이 하나 두울 들어온다. 캐네디언으로 보이는 백인, 인도인, 필리핀인, 아랍인, 중남미인, 중국인 등 구성도 다양하다. 다만, 학생들 중 나처럼 40대 이상인 학생은 한 명도 없는 것 같다. 심지어 30대도 잘 보이지 않는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이들 사이에 앉아 수업을 들으려니 어쩐지 쑥스럽고, 민망하다. 심지어 교수님마저 나보다 젊은 분이다. 오 마이갓...
오늘 수업도 첫날이지만 어제처럼 오리엔테이션으로 대강 때우지는 않았다. 수업에 대한 전반적인 introduction 강의이긴 했지만 젊은 백인 남자 교수의 속사포 랩을 두 시간 내내 듣고 있으려니 정신이 점차 혼미해져 간다. 교수가 설명하는 내용의 20퍼센트도 채 못 알아들은 것 같다. 아... 좌절감이 뼛속을 때린다. 과연 이번학기 수업을 잘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이다. 첫날인데 벌써 숙제를 내줬다. 11시 10분. 드디어 첫 수업이 끝났다. 다음 수업 시작이 12시니 대강 점심을 때워야겠다. 나는 한 끼만 못 먹어도 뱃속에서 천둥 번개가 치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창피하지 않으려면 뭐라도 뱃속에 집어넣어야 한다.
강의 건물 바로 앞에는 코벤트 가든마켓이라는 아기자기한(주차요금은 후들후들한) 시장이 있다. 시장은 1층과 2층으로 되어 있는데 1층 대부분의 점포는 음식점이다. 1층에는 간간이 꽃집이나 수제 비누집, 옷가게도 보이지만 인도식, 멕시코식, 일식 등 다양한 음식점이 아기자기하게 자리 잡고 있다. 2층은 아직 둘러볼 여유가 없다. 1층을 주욱 둘러보는데 한식이 있다! 아직은 다른 나라 음식에 도전해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제일 만만한 비빔밥을 골랐다. 헉 14불... 게다가 세금까지 더하니 16불이 훌쩍 넘는다. 맛도 약간 오묘하다... 다음부터는 도시락을 싸 오도록 하자.
두 번째 강의 교수님은 키가 약간 작고 안경을 낀 백인 남성인데 이태리인 느낌이 난다. 첫 수업의 제러드 교수님은 미드에 나오는 할리우드 배우처럼 말을 엄청 빨리 하던데 마르코 교수님은 학생들을 위해 말도 천천히 하고 학생들의 반응을 보며 속도를 조절하는 게 눈에 보인다. 스위트하기도 하시지... 강의용 슬라이드 자료도 꼼꼼하게 적혀 있어 비록 듣기는 안되지만 수업 내용이 무엇인지 대강 파악이 되니 오전에 낀 먹구름이 조금 걷히는 기분이다. 홈페이지를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수업인데 생전 처음 도전하는 분야이다 보니 사뭇 긴장된다. 수업 커리큘럼을 보니 모든 수업들이 매주마다 과제가 있던데 과연 잘 해낼지 모르겠다. 이 교수님도 강의 소개만 두 시간 넘게 하셨다. 4시간 넘게 영어로 강의를 들었더니 머리가 얼얼하다. 빨리 한글로 힐링해야 한다. 이번 주말엔 무조건 넷플릭스로 한국 드라마를 보겠다!
수업이 끝나고 버스 정류장을 찾기 위해 구글맵을 열었다. 왼쪽으로 가야 하는데 방향치인 나는 지도를 보면서도 오른쪽으로 한참 걷다가 정류장과 점점 멀어지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아... 나는 왜 이리 맹추인 걸까. 걸어온 길을 다시 되짚어 캠퍼스 건물에서 약 10여분 거리에 위치한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학생들이 꽤 많이 있었다. 8개월간 런던에 살면서도 버스 타기는 처음이다.
남편 수업이 6시에 끝나고, 집 근처에 버스 정류장 자체가 없어서 남편과 함께 집에 같이 가야 했다. 남편이 있는 메인 캠퍼스행 버스를 탔다. 이런 젠장! 메인캠퍼스행 버스가 여러 개라 그중 하나를 골라 탔는데 정류장이 학교 앞이 아니었다. 정류장에서 약 1.3킬로를 걸어야 하는데 또, 또, 길을 잘못 들어 총 2킬로를 걸었다. 오후 4시 30분, 동네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집은 많은데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왠지 무섭다...
개고생 끝에 캠퍼스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우리 차를 발견했다. 반갑다 혼다 파일럿 ㅠ.ㅠ 차 안에서 남편을 기다렸다가 함께 귀가했다. 도착하자마자 저녁을 만들었다. 밥을 다 먹고 나니 완전 곤죽이 되었다. 4시간 동안 영어 수업을 듣고 한 시간 넘게 낯선 동네를 헤맸더니 멘털도 체력도 탈탈 털렸다. 오늘 수업 복습은 커녕 영어 단 한 글자도 볼 수가 없다.
자다가 그만 게 거품을 물었다. 엄청 피곤할 때 아주 가끔 게 거품을 무는데 직장에서 한 달 초과근무 100시간 찍던 시절에는 종종 물었다. 그리고 몇 년 만에 다시 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