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공부를 미드로 하면 보이는 것

by 김정은

캐나다에 처음 들어왔을 때 이곳에 오래 정착한 분들의 공통된 이야기가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캐나다에 오래 살면 요리 못하던 사람도 장금이가 된다'이고, 두 번째는 '아이들 영어는 걱정 말아라, 어른들 영어나 걱정 해라' 였다.


캐나다에 살게 된 지 1년 7개월이 되었다. 6개월은 어학원에서 8개월은 칼리지에서 공부를 했지만 영어 실력이 생각만큼 늘지 않고 있다. 물론 영어 환경에 익숙해졌고 쓰기나 읽기는 많이 늘긴 했다. 또, 어딜 가든 영어로 소통은 된다(간단한 회화 수준으로). 하지만 캐나다 현지인들이 빨리 말하면 잘 못알아 듣겠다.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는 더 심각하다. 영어 자막이 없으면 내용 이해가 조금 어렵다.


4월 말경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가 개봉했길래 마블 팬인 우리 가족 모두 영화를 보러 갔다. 한국어 자막으로 이 영화 전편들을 볼 때는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영화가 상당히 수다스럽다는 것을 말이다. 굉장히 급박한 상황에서도 주인공들이 얼마나 말을 많이 하는지 또 얼마나 빨리 말하는 지 거의 못 알아 들었다. 게다가 코믹요소도 많아 영화관에서 관객들이 빵빵 웃음을 터뜨리는데 나는 웃지 못하는 상황이 자주 생겼다. 심지어 우리 아이들도 웃고 있는데 나는 그러질 못하고 있는 거다. 해외에 오래 살 수록 부모가 아이들보다 영어를 더 못하게 된다더니 내가 바로 그랬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나는 그날 이후로 넷플릭스와 아마존 프라임에서 영어공부를 위해 미드를 보기 시작했다. 학습을 위해 일단 상대적으로 쉬운 미드부터 택했다. <Young Sheldon>, <Mordern Family>, <Emily in Paris>, <The summer I turned pretty>, <Partner track> 등등 내용은 가볍고 대사도 일상회화가 많은 드라마들로 선택했다. 특히 <모던 패밀리>와 <에밀리 인 패리스>는 유튜브에 쉐도잉 영상이 많기 때문에 따라서 연습하기도 가능하다.


이런 드라마를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보다 보니 공통점이 보인다. 서양인들은 동양인보다 확실히 더 심플하고 덜 감정적( emotional) 이다. 사고방식이 심플하고 덜 감정적이다보니 남녀관계나 회사에서의 인간 관계에서 오는 갈등에 대처하는 방식이 우리와 사뭇 다르다. 예를 들어, <에밀리 인 파리>의 주인공 에밀리는 연애도 이별도 꽤 쿨하다. 애인과 헤어져도, 좋아하는 남자에게 애인이 있다는 것이 밝혀져도 이 때문에 밤새 펑펑 운다거나 하소연하며 감정을 소모하지 않는다. 상황을 재빨리 받아들이고 그 다음, 다른 애인 사귀기로 후딱 넘어간다.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파리에 온 에밀리가 까칠한 파리지앵들에게 은근한 따돌림을 당하지만 에밀리는 굴하지 않고 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Partner track>에서는 여주인공이 한국계 미국인인 시니어 변호사로 수많은 남자 변호사들 사이에서 가장 똑똑한 변호사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를 당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심지어 동료 변호사가 그녀의 아이디어를 가로채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처한 현실에 억울해하거나 힘들어하지 않는다. 뒤통수를 때린 동료 변호사에게 똑같이 뒤통수를 쳐서 갚아주고 일로써 승부한다.


충분히 스트레스를 받을 상황이지만 이 두 여주인공이 우울감이나 무력감에 빠져 있다든가 자신감을 잃어 방황한다든가 하는 내용은 펼쳐지지 않는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일을 반드시 해 내고 말겠다는 의지가 강하고 또 감정적으로 대응하지도 않는다. 사랑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고민하기 보다는 주어진 시간을 가볍게 즐긴다.


그리고 내가 본 미드의 또 다른 공통점은 바로 유머이다. <모던 패밀리>나 <영 셸든>의 유머가 특히 좋았다. 둘 다 가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로 어느 가족이나 안고 있는 문제들을 시종일관 유쾌하게 해결해 나간다. 그리고 누군가가 심각하게 고민할 때 오히려 유머로 승화시켜 무게를 줄여준다. 이들의 이런 유머 역시 상황을 감정적으로 대하기 보다는 상황을 그저 상황 자체로 인식하는 경향 때문 같다. 미드에 반해 우리나라 드라마는 사소한 것도 심각하게 확대해석하고 감정과 공감을 강요하는 장면이 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정서에 한이 많아 민족적인 기질도 한 몫 하는 것도 같다. 판소리 특유의 해학을 많이 잃어버린 요즘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도 결심한 것이 있다. 영어가 생각보다 늘지 않으면 어떠하랴. 지금 이순간은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한 시간이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다 뼈와 살이 될 것이 분명하다. 영어 향상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시간을 계속 할애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원어민처럼 이야기할 날이 올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 가족들이 지금 내 옆에 있으니 이 순간을 충만하게, 즐겁게 보내는 것. 물론 유학의 목표가 있으니 공부도 최선을 다해야 겠지만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으려고 하면 상황을 심플하고 경쾌하게 보고 유머 몇 스푼을 첨가해 보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인생을 무겁게가 아닌 조금 더 가볍게 달려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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