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지에서 만난 은근한 인종차별

by 김정은

40대 중반에 대학을 다시 다니게 되면 학점에서 자유로울 줄 알았다. 유학의 목적이 일단은 영어를 잘 하게 되는 것이었고 선택한 전공에서 F나 나오지 않게 하자는 것이었는데 학교 생활에 적응이 되고 나니 슬그머니 욕심이 생겨났다.


젊은 시절 대학에 다닐 때에는 내가 받은 학점에 대해 단 한번도 교수에게 이의 제기를 한 적이 없다. 오히려 학점을 구걸한 적은 있다. 한번 F를 맞고 재수강한 미적분학 강의 기말고사를 치루고 시험지 뒷면에 교수님에게 거의 러브레터 수준의 간절한 편지를 썼다. 중간고사는 어찌어찌 점수가 나왔는데 기말로 나온 수학 문제를 잘 풀었는지 영 감이 없었다. 또 F를 맞으면 제 때 졸업을 못하기 때문에 아마 이렇게 편지를 시작했던 것 같다.


"저의 졸업은 오로지 교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다행히 C 마이너스가 나와 무사히 졸업을 했다. 교수님이 나의 간절한 편지에 마음이 약해져 점수를 조금 올려 주신것인지 진짜 내 점수였는지의 진실은 영원히 묻히고 말았지만 중요한 것은 졸업을 했다는 사실!


그 외에 모든 강의에서 받은 내 점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딱 내 실력만큼 점수를 받았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당시의 정서로 교수님에게 감히 이의를 제기할 분위기도 아니었다. 어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못하던 때가 아니던가.


그런데 캐나다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에는 과거와 달리 내 점수가 이상하면 교수에게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요청하고 있다. 첫째는 내가 교수의 숙제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 때문에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서이고 둘째는 인종차별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어서이다. 피드백을 요구하게 된 건 어학원의 마녀 메리 교수가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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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지 본과 입학전 공부한 어학원에서 마녀 메리 교수에게 에세이 숙제를 냈는데 점수도 생각보다 짜고 교수의 피드백이 아무리 봐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메리 교수가 학생들에게 개인별로 피드백을 요청하면 상담을 해 주겠다고 했기에 수업이 끝난 후 교수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당시 코로나19 때문에 상담은 줌을 통해 이루어졌다.


역시나, 메리는 내가 쓴 에세이(영미권 대학에서 말하는 에세이는 통상적인 수필이 아니라 논설문의 일종임)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한 참고자료를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내 주장이 그저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라며 점수를 팍 깎았다는 게 드러났다. 평소 편집광에 가까운 꼼꼼한 교수였기 때문에 참고자료를 읽지 않았다는 걸 나는 믿지 않았다. 수업시간에 메리 교수가 가정법을 가르칠 때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 있어 두어번 날카롭게 질문한 적이 있었다. 그 시점 이후로 내 점수가 급격하게 하락했다. 내가 피드백 시간에 꼼꼼하게 의견을 전달하자 메리 교수는 결국 내 에세이 점수를 올려주긴 했지만 메리에 대한 존경심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어학원에서 만난 또 다른 교수 수잔나는 나이가 엄청 많은 백인 할머니로 말하기와 듣기를 담당했는데 한번은 20여분짜리 듣기자료를 듣다가 도무지 이해가 안가 수업 시간에 이 표현을 얼핏 들었는데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내가 질문한 적이 있다. 수잔나는 자기도 못 들었다고 얼버무려 좀 황당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내 과제 점수가 급격하게 하락했다. 수잔나는 딱 봐도 말이 안통해 보여 점수가 낮아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어학원이야 일정 점수만 통과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메리와 수잔나는 공통적으로 인종차별주의자다. 메리는 아랍인을 무척 싫어해서 수업시간에 그들에 대한 경멸을 숨긴 적이 없다. 수잔나는 백인을 제외한 다른 인종을 다 싫어했다. 다만, 두 사람 모두 얌전하고 조용한 동양인들에게는 관대했다. 수업시간에 질문도 안하고 영어를 못해 수더분해 보이는 학생들에게는 넓은 아량을 보이고 점수도 후했다. 이는 인종차별을 하는 백인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이다.


두 번의 경험으로 나이 많은 백인 교수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만한 질문은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는 나름의 교훈을 얻고 칼리지 본과 공부가 시작되었다. 칼리지 교수들은 어학원보다 오히려 젊은 백인들이 많았고 수업 시간에 상당히 쿨해 보였다. 순전히 학문적 궁금증으로 질문하면 굉장히 환영받는 느낌도 받았다. 학점도 높아 Dean's Honor Roll이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그렇게 1학기를 무사히 마친 후 2학기가 되었다.


1학기에도 내 강의를 담당하는 교수들은 모두 백인이었다. 2학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수업에서 취업과 관련된 글쓰기를 배우게 되었다. 레쥬메 쓰기라던가, 업무 메일 쓰는 법, 거절 메일 쓰는 법 등 실무적인 내용을 배웠다. 직장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재미도 있고 쉬운 수업이라 점수도 높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첫 과제부터 낮은 점수가 나왔다. 그냥 지나칠 것인가 말것인가 고심했다. 공연히 자존심 센 백인 교수를 자극했다가 2학기 내내 과제 점수가 낮을까 봐 염려가 되었다.


하지만 교수의 피드백이 애매모호했다. '네가 쓴 문장이 어색해' 이 한 줄 뿐이었다. 결국 교수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니기 때문에 어색한 문장을 쓸 수 있다. 그런데 정확히 어떤 문장이 어색한지 알려주면 다시 고쳐보도록 하겠다.' 그러자 한 시간 후 과제 점수가 70점에서 90점으로 껑충 뛰었다. 피드백은 이러했다. '다시 읽어보니 네 문장은 전체적으로 훌륭했어. 내가 대충 읽었던 모양이야'


그 후로 이 과목의 내 과제 점수는 언제나 만점 가까이 받게 되었다. 하지만 점수를 잘 받아도 기분은 찜찜했다. 이 교수는 대놓고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영어를 잘 못하는 학생들이라 점수를 대충 줘도 항의할 것 같지 않아 불성실하게 대처했던 것 같다. 나처럼 점수가 안 좋은 학생들이 몇 있었는데 교수에게 정확한 피드백을 요구한 학생들은 점수가 조금 올랐고 그러지 않은 학생들은 계속 점수가 낮았다.


평소 천사처럼 학생들에게 수업도 잘 가르치고 늘 웃는 얼굴의 전공 교수가 한명 있다. 1학기에는 그 교수의 과목을 거의 만점 가까이 받았다. 하지만 2학기 수업 시간에 과제를 내는 방식에 대해 이의를 한번 제기한 적이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학생들에게 일을 두번 시키는 격으로 과제를 내게 해서 왜 이렇게 내야 하느냐고 질문을 했더니 천사 교수의 얼굴이 처음으로 붉게 상기된 것을 보고 아차 싶었다. 그리고 내 예상처럼 그 후로 점수가 곤두박질 쳤다.

백인 교수들의 센 자존심이 같은 백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들이 유일하게 휘두를 수 있는 점수를 무기삼은 갑질을 여러번 당하고 나니 이 또한 은근한 인종차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점수를 잘 받기 위해 그네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말아야겠다고 실용적으로 생각하다가도 굳이 그래야 하나 싶다. 나는 고분고분하고 수더분하고 겸손한 이미지의 동양인이고 싶지 않다. 그들이 아무리 교수라고 한 들 실수하는 인간이고, 나는 그들보다 내 분야에서만큼은 더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다.


다만, 영어가 부족해 발생하는 오해 만큼은 겪고 싶지 않다. 인종차별인지 아니면 내 영어 실력의 부족에서 비롯된 오해인지 모호할 때가 있다. 억울함도 정확하게 호소하려면 영어를 잘 해야 가능하다. 그래서 동양인이라고 무시하는 그들에게 나 또한 보여주고 싶다.


"어이, 동양인도 자존심 겁나 세거든? 함부로 건들면 콱 물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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