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기의 대미를 장식할 파이널 프로젝트를 기한 이틀 전에 깃허브에 올렸다. 깃허브(GitHub)는 개발자들이 코딩 소스를 올리는 최대 오픈 소스 사이트로 최근에 일론 머스크가 인공지능 관련 알고리즘과 코드 소스를 올려놓은 걸 구경한 적이 있다. 물론 이해는 1도 못했지만... 내가 다니고 있는 칼리지 교수들도 개발 관련 숙제를 낼 때 반드시 깃허브를 통해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고로 숙제를 내면 같은 반 친구들이 내 과제의 코드 소스를 모두 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 반에서 가장 모범생이자 우등생인 한국인 친구 J는 기한 일주일 전에 이미 파이널 프로젝트를 끝내고 깃허브에 올려놓은 상태였다. 여유 있게 올려놓은 게 화근이었을까. 평소 이 친구의 과제를 대놓고 모방하던 이라크 친구 M이 이 친구의 코드와 디자인을 그대로 가져가 내용과 사진만 바꾼 채 과제를 제출했다. J의 과제와 M의 과제를 비교해 보니 완전히 복붙(복사하기+붙여 넣기) 수준이었다. 개발자들의 코딩 언어에도 일반적인 작가들의 글처럼 고유한 문체가 있는데 이 문체까지 모두 가져다 썼다.
J는 이 사실을 교수에게 보고할까 고민하다가 같은 반 친구를 고자질하는 것도 그렇고 교수에게도 좋은 인상을 줄 것 같지 않아 결국 조용히 넘어가기로 했다. 사실, 교수가 자연스럽게 발견해서 조치해 주길 은근히 기대하기도 했다. J의 파이널 프로젝트 점수는 에이플러스였다. 진로 문제를 고민하던 J는 1학기를 마친 후 칼리지를 옮겼다. 학우와 학교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칼리지를 옮길 때 미련은 없었을 것이다. 다만.. 나는 미련이... 유일하게 마음 터 놓은 좋은 친구였는데...
캐나다 칼리지의 표절(Plagiarism) 정책은 꽤 엄격하다. 칼리지에 들어오자마자 제일 먼저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온라인 과정이 바로 학교의 표절 정책(Academy Integrity Policy)이다. 리포트(보고서, 논문 등)를 예로 들자면, 자신이 직접 만든 문장이 아닌 모든 참고 문장은 인용(Citation)과 참조(Reference)를 반드시 명시해야 한다. 이걸 지키지 않고 마치 자신이 쓴 문장인 양 제출하면 교수가 어떻게 알아차리겠는가 생각할 수 있는데 이는 큰 오산이다. 캐나다 대학은 표절을 걸러내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고 성능은 거의 챗GPT급이다.
모든 리포트는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제출하게 되어 있는데 표절을 모니터링하는 프로그램이 연동되어 자동으로 문서에 쓰인 문장이 어디에서 가져온 것인지 밝혀낸다. 리포트에 쓰인 이 문장은 온라인 블로그 어느 사이트에서 가져왔는지, 어느 전자책에서 가져왔는지, 어느 기사에서 가져왔는지 다 확인 가능하고 표절 비율까지 결과로 도출해 낸다. 표절한 비율이 대학에서 정한 일정 비율을 넘어서면 표절로 보는데 이때 삼진아웃제를 적용받게 된다. 삼진아웃제란, 첫 번째 표절의 경우 과제 점수가 영점 처리되고, 두 번째 표절의 경우 해당 과목 수강이 금지된다. 세 번째로표절에 걸리면 학교에서 영영 퇴학처리된다. 표절을 받은 사실은 전산상에 기록으로도 남아 평생 따라다니며 직장을 구할 때 문제가 된다고 한다.
그런데 코딩의 경우에는 표절을 가리기가 참 애매하다. 웬만한 코드 소스는 인터넷상에 다 오픈되어 있고 다른 개발자들의 소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네 코드가 내 코드이고 내 코드가 네 코드인 셈이다. 그리고 이런 개방된 마인드는 웹개발 세계를 집단 지성으로 이끌어 주는 좋은 계기가 된다. 실제로 유명 웹디자이너는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네 디자인이 누군가에게 도용당할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도용당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해라"
그러다 보니 M의 부적절한 치팅 행위는 결국 조용히 덮이게 되었다. 캐나다에서 권선징악을 바라는 건 무리인 건가?
2학기가 되고 과제가 어마어마하게 쏟아지던 3주 차의 어느 날, M이 갑자기 내게 친한 척을 하기 시작했다. 평소 이 녀석을 알고 있던 나에게 경고음이 울렸다. 그리고 며칠 후 M의 속셈이 드러났다. 웹 페이지 개발에 들어가기 전에 필수로 만들어야 하는 와이어프레임(웹 페이지의 밑그림? 청사진?)을 무려 12장이나 만들어야 하는 골치 아픈 숙제를 자신과 내가 나눠서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 것이다. 그러니까 서로 6장씩 만든 다음 마치 자신이 만든 것처럼 각자 열두 장을 제출하면 힘이 덜 든다는 것이다. 오호, 너의 실력과 사기력을 잘 아는 나에게 이런 제안을? 치팅(속임수, 사기)을 제안하는 이 친구에게 한국인 특유의 꼰대력을 한번 발휘해 볼까 순간 고민했다. 하지만 영어력이 딸린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에게 '네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서너 번 끈기 있게 나를 설득하던 그 녀석은 결국 포기하고 신경 쓰지 말란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그러고 나서 또 얼마 후 전공 수업이 아닌 교양 수업에서 이 친구는 결국 표절로 과제(리포트) 점수를 0점 처리받게 된다. 수업 도중 교수에게 뻔뻔하게도 자신은 표절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고 교수는 프로그램에서 다 밝혀 내는데 무슨 소리냐며 언쟁하는 일이 발생했다. 10여분 가량 수업을 지체하며 논쟁을 이어가다가 교수는 뻔뻔한 데다 표절 정책에 대해 지식도 없었던 M에게 나를 그만 괴롭히라며 소리 질렀다. 교수가 교실에서 그렇게 발끈하는 모습을 처음 봤다. 솔직히 속이 다 시원했다.
약 1년간 수업을 들으면서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백인 교수들은 겉보기와 달리 자존심이 무지 세서 그들의 권위에 한번 도전하면 그 학생은 바로 찍힌다. 그리고 그 찍힘은 점수로 바로 직결된다. 교수의 재량껏 점수를 잘 주지 않는다. (왜냐면 내가 겪었으니까. 이 이야기는 다음에 자세히 하도록 하겠다) 모르긴 몰라도 이후로 M의 과제 점수는 별로 좋지 않았을 것이다. 학교 기록에도 표절한 이력이 남아 있을 테고 말이다. M은 이 일로 과연 교훈을 잘 얻었는지 궁금하다. 3학기때 만나면 알 수 있겠지. 고얀 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