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기 때문에
아침을 남편과의 갈등으로 시작했다.
'늦었는데 왜 안깨웠어!'
본인의 출근시간이 늦었다고 나를 탓한다.
느긋하게 1시간 일찍 일어나 재즈를 들으며 요가하던
나의 명상의 시간에 금이 간다.
온전히 나의 시간을 쓰기 위해 졸린 눈 비비며 일어난 1시간이다.
투덜거림에 마지못해 부랴부랴 겉옷을 챙겨 남편을 배웅했다.
출근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신경을 곤두세우며 출근 준비를 한다.
하루가 이렇게 정신없이 시작되었다.
옆자리 팀원은 오늘도 커피를 3잔째 들이키며 엎치락 뒤치락 하는 주가를 보고있다.
빨갛고 파란 글씨가 정신없이 뒤엉켜 있어서인지 그걸 보는 사람도 예민하다.
함께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메일로 공유하고 확인을 요청했더니 가자미 눈이 되어 나를 쳐다본다.
'그걸 왜 꼭 지금 해야 하는거죠?'
일의 우선순위가 다르기 때문에 또 갈등한다.
점심시간 즈음 기지개로 웅크렸던 몸을 깨운다.
전화와 메일을 오가며 긴장했던 어깨와 뒷목이 뻣뻣하다.
식사 메뉴를 정하는 것도 긴장의 연속이다.
먹고싶은 메뉴가 상이한가 하면,
의견을 내지 않지만 남의 의견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있다.
팀원이 2인분용 메뉴를 시켰다.
점원이 달려와 1인분이 제공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팀원은 화가 났다. 주식 창에서 빨간 글씨를 많이 봤는데 그 탓일지도 모르겠다.
얼른 내가 메뉴를 바꿔 2인분을 맞췄다.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팀원의 불만이 입밖으로 새어 나왔다.
한 귀로 흘리며 의미없는 끄덕임과 리액션을 반복한다.
오늘같이 바쁜 날 혼자만 휴가를 낸 팀원이 괜시리 미워진다.
오후 일과는 오전보다 더 바쁘다.
루틴한 업무를 끝내기 직전 예기치 못한 문제들이 쏟아진다.
전화에서 불이 나는데 팀원들은 경쟁하듯 모른척 하고 있다.
누군가 받아야 한다면 그게 나라는 게 정답인 것 같다.
업무 협조를 요청하는 것은 까다롭다.
민감하게 대상자의 성격, 오늘의 기분, 평소의 말투와 행동을 따져봐야 한다.
조심스럽게 업무에 대한 서론을 꺼내본다.
'왜 이 일을 이제서야 얘기해줘요! 절대 못해요, 바빠요.'
거두절미하고 NO를 외치는 그녀 앞에서 괜스레 얼굴이 화끈거린다.
면박을 당하고 있는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꾸짖는다.
물론 이 업무는 오늘 갑작스럽게 팀장으로 부터 받은 바, 미리 요청할 새가 없었다.
그래도 팀원인 내가 어찌 할 바가 없어 오늘도 넉살좋은 척하며 한 번 더 아쉬운 소리를 한다.
갑과 을의 관계는 끊임없이 갈등한다.
갈등이 마치 문제해결의 과정인 것처럼 느껴진다.
바로 옆 팀원이 언성을 높이며 통화를 시작했다.
누군가의 문제가 팀원에게는 언쟁의 계기가 되었다.
팀원을 바라보며 '나라도 말투와 행동을 고쳐볼까?' 생각하다가
피식 웃으며 금자씨의 '너나 잘하세요'를 떠올린다.
내 밥그릇 하나 못챙기는 나도
'남'이기 때문에 상황판단에 냉철해지는 걸 보면
사람이기 때문에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맞는 사람이 없다는 푸념에
마음이 맞는 사람은 없다는 우문현답을 했던 친구가 있다.
사람이라 이기적이고 사람이라 다른데, 배려를 원하고 같기를 원하면 갈등이 생긴다.
갈등의 시작은 서로 다르다는 데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이좋은 커플을 보며 감상에 젖는다.
사랑하는 사이는 다름을 존중한다. 다름을 매력으로 느낀다. 다름을 이해하려고 한다.
남편과 싸울 게 아니고 당시 남편의 기분을 더 헤아려줄 걸 그랬다.
팀원의 잘잘못을 따질 게 아니고 팀원의 기분을 더 이해할 걸 그랬다.
무리한 업무요청을 하며 기분이 나빴을 그 팀원에게 조금 더 진심으로 부탁할 걸 그랬다.
오늘의 반성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