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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넷맘 Dec 10. 2019

아들 넷을 데리고 뉴질랜드 기러기가 되기로 했다.

다음 달에 뉴질랜드로 떠납니다.


“제정신 아니지? 아들 넷을 데리고 그 먼 곳으로 가겠다니.”

아이들을 데리고 뉴질랜드로 떠나겠다고 이야기한 날, 엄마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옆에 있던 아빠의 표정도 심각해보였다. 아빠는 내게 한국에 남아 기러기가 될 남편이 언젠가 바람을 피울 거라는 독설을 날리기도 했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뱉고 있는 것인가. 가슴이 방망이질 하듯 전신이 부르릉 떨렸다. 그러나 이 떨림은 두려움과 설렘이 복합된 이상한 감정이었다. 내 인생에 익숙하게 찾아왔던 그런 감정이기도 했다. 만난 지 고작 두 달된 남자와의 첫날밤에 아기를 덜컥 임신하고 엄마, 아빠 앞에 섰던 그날에도, 갑작스럽게 세쌍둥이를 임신하고 끝까지 품어보겠다고 가족들에게 공언한 그날에도, 나는 이 감정을 느꼈다.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하는 이상한 감정 말이다.       




“아이들이 커서 이제 좀 살만해졌는데 왜 사서 고생이니?”

엄마의 말은 구구절절 옳았다. 세 돌을 넘기고 네 돌을 향해 커가는 세쌍둥이는 이제 제법 손이 덜 간다. 한국에서 아이들을 키운다면 안정된 환경에서 조금 더 편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제처럼, 오늘이 이어질 것이고, 오늘처럼 내일이 파고들 것이다. 나의 삶은 견고한 나무처럼 토양아래 탄탄한 뿌리를 내릴 것이다.

내가 더 이상 20대의 혈혈단신 청춘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나에게는 오히려 줄줄이 사탕 같은 아이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아무리 아이들이 조금 컸다하지만, 집 앞 놀이터에만 가더라도 순식간에 아이들이 어딘가로 뛰어가지는 않을지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여전히 무력한 아들 넷 엄마이기도 하다.

과연 할 수 있을까. 두렵다. 엄마의 말처럼 타지에서의 삶은 쉽지 않을 것이다.




사실 외국 이야기를 꺼낸 건 다름 아닌 남편이었다. 그가 남들보다는 외국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직업이다 보니, 아이들이 어렸을 때 좀 더 좋은 환경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주고 싶다는 말을 하고는 했다. 나 역시도 어학연수 시절 캐나다에서의 시간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기에, 언젠가는 다시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상상뿐이었다. 아들 넷을 데리고 기러기부부가 된다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알기에, 나의 상상은 언제나 네모난 상자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곳을 맴돌다 사그라지고는 했다.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보내곤 했던 그의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어느 순간부터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그는 비행을 다녀올 때마다 직장 동료의 기러기 사례를 이야기했다. 아이들에게 보다 좋은 환경을 선물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각박한 경쟁체제에서 벗어나 아이들이 자연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건강하게 자라길 바랐다. 적어도 유년기는 그렇게 키워야한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었다. 주말이면 인터넷 검색창을 열어 습관적으로 미세먼지부터 체크해야하는 일상, 아랫집 주인이 올라올까 두려워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뛰면 도끼눈을 치켜세워야 하는 일상,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대치동 학원가를 전전하는 벌써부터 무거워진 큰애의 어깨. 내 아이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은 부모라면 누구나 똑같을 것이다.     




남편의 성화에 지난 가을부터 조금씩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말레이시아 등 여러 나라에 대한 정보를 비교했고 시간이 날 때마다 유학원을 드나들며 발품을 팔았다. 아이들이 많기에 역시 비자문제가 걸렸다. 큰애의 학생비자로 나와 세쌍둥이 모두 동반비자로 진행해야했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부모에 대한 가디언 비자라는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고, 캐나다는 동반비자를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호주는 유치원 비용이 너무나도 비쌌다. 뉴질랜드로 선택한 건 비자문제와 유치원 때문이었다. 만3~5세에 해당하는 유아에 대한 유치원 비용의 일부를 정부에서 지원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점이 상당히 끌렸다. 아이들이 많기에 비용적인 부분이 가장 중요하기도 했고 뉴질랜드의 깨끗한 자연 안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기를 바랐다.     




원초 계획은 내년 하반기를 목표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층간소음으로 갈등을 겪고 있는 아랫집에서 내용증명 비슷한 서류를 올려 보냈다. 자신들이 원하는 조건을 충족하지 않으면 소송을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주말이면 층간소음문제로 아이들을 데리고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외출을 하거나, 친정에서 하룻밤 자고 오고는 했다. 온 집안에 매트를 깔았고 깔지 않은 방문을 항상 잠갔다.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시끄러우면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뛰지 말라고 소리치는 나도, 한창 뛸 나이에 뛰지 못하는 아이들도, 실로 힘들고 우울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계속된 갈등은 쉬이 잠잠해지지 않았다. 아랫집은 조금이라도 시끄러우면 보복스피커를 켜거나 고무망치로 천장을 때렸다. 남편이 없는 밤, 아이들이 모두 잠든 사이 갑자기 들려오는 고무망치 소리는 내게 너무나도 큰 공포였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들려오는 이 소리에는 증오가 가득했다. 깊어진 층간소음 갈등은 내게 앞으로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나는 수많은 밤을 지나오며 적어도 어린 나이에는 마음껏 에너지를 발산하며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부모의 몫이 아닐까라는 대답을 찾았다.      





기러기부부가 된다는 것.        

기약 없는 장거리 연애가 지치는 것이듯, 기약 없는 기러기부부의 삶 또한 외로운 것이다. 우리의 사랑은 지금보다 식을 수도 있고, 서로에 대한 애정은 조금씩 희미해져 대기 중에 뿔뿔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 너와 내가 함께 만들었던 하나의 보금자리, 우리가 함께 쌓아올렸던 하나의 삶은 철저히 쪼개져 두 개의 독립된 삶이 될 것이다.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의 개수는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고 그 안에는 서로를 향한 짙은 향수만이 남게 될 것이다. 한 달에 3~4일 만나는 아빠의 존재, 아이들에게 아빠라는 존재는 어떻게 기억될까. 홀연히 떠나고 다시 찾아오는 철새처럼 아빠의 자리는 점차 작아질 것이고 서로에 대한 믿음도 어쩌면 그러해질 것이다.  



    

기약 없는 이별은 나에게도 남편에게도 쉽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없기도 했고, 기간을 정해두면 목표가 생기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것도 같았다. 그래서 기간을 정하기로 했다. 큰애가 4학년부터 6학년까지, 3년이라는 기간 동안을 목표로 정했다. 내년이면 고학년이 될 큰애가 한국에 다시 돌아왔을 때 한국 교육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기 위함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가능성은 열어두기로 했다. 적응이 힘들다면 그전에 돌아올 수도 있고, 아이들이 적응을 잘해서 더 있기를 원한다면 더 머무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껏 내 삶이 흘러온 것처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흘러가 보기로 했다.     






  


내년 2월 신학기를 앞두고 나와 아이들은 다음 달 뉴질랜드로 떠난다. 벌써 비자를 받았고 서류업무를 마쳤다.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을 때면 가끔 두려움이 일렁인다. 잘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 느낌을 안다. 수없이 느꼈던 이 느낌,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하는 감정. 그러나 두려움마저도 나를 설레게 만든다. 어쩌면 다시 무언가 두려울 수 있다는 것이 삶에 남아있다는 자체가 설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때 내 인생이 왜 이렇게 평범하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내 인생을 순탄치 않게 만든 건 바로 나였다. 모두 나의 결정이었고 내 선택이었다. 스물일곱 엄마가 되겠다는 결정도, 서른셋 세쌍둥이 엄마가 되겠다는 결심도, 가시밭길이라는 걸 알면서도 걷고 싶었던 건 나였다. 모든 걸 내던지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용기, 포기하지 않고 부딪혀버리는 무모함, 그리고 성취. 어쩌면 나라는 사람은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무언가 도전하고 저질러버리고 싶은 강렬한 욕구, 그 욕구는 순식간에 타올랐던 게 아니라 어쩌면 그것이 본연의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힘들겠지만 한 번 부딪혀보고 싶다. 만들어보고 싶다. 내 삶을 이렇게나 재미있게, 그리고 엉뚱하게.     




남편의 한 마디는 고요히 잠자고 있던 내 마음의 강물에 강렬한 파문을 일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 파동을 따라 흘러가려고 한다.

두렵다. 설렌다.

또 어떤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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