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넷맘 Jan 13. 2020

하마터면 허리디스크 터질 뻔 했다.

이... 허리로 출국할 수 있겠죠.....?


발단은 3호였다. 여느 때와 같이 아이의 똥을 씻기고 있는데 허리가 찌릿하게 뻐근해졌다. 이놈의 허리가 또 말썽인가. 통증을 참다못해 정형외과에 방문했다. 평소처럼 진통소염제를 먹고 물리치료 2~3회 정도만 받으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일부러 비싼 도수치료를 권유하지 않는 합리적인 병원을 찾았다. 그러다 집 근처에 새로운 병원이 눈에 들어왔다. 고객 평을 보니 과잉진료가 없단다.    


 

“엑스레이 상으로는 허리디스크가 심한 정도는 아닙니다. 물리치료와 견인치료를 병행해서 집중 치료를 받으면 호전될 겁니다.”



간호사를 따라 물리치료실로 쫄래쫄래 따라갔다. 그런데 생전 처음 보는 검은색 기계가 보였다. 견인치료기라고 했다. 설명에 따라 견인치료기에 눕자 물리치료사는 능숙하게 상체를 찍찍이로 단단하게 고정했다. 견인치료가 시작되자 시커먼 기계가 나의 하체를 강력하게 잡아끌었다. 일순 허리통증이 강렬하게 밀려왔다.     



“허리가 너무 아픈데, 이거 괜찮은가요?”

“경우에 따라 허리통증이 심해지는 분도 계세요. 강도를 조금만 줄여드릴게요. 괜찮으실 거 에요.”    


 

십여 분간의 견인치료를 끝내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순간 이상하게 허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대로 침대에 누워 간호사에게 통증을 호소했다.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직감이 가느다란 피부를 스치고 지나갔다.   






12월 초의 어느 주말, 그렇게 나는 이틀간 일어나지 못했다. 친정엄마를 급하게 불러야했고 집의 모든 일상은 마비가 되었다. 다음 달 출국을 할 수 있을지 두려움과 공포가 온몸에 엄습했다.     



“견인치료는 부작용이 없는 치료입니다. 오히려 허리디스크에 도움이 되는 치료입니다. 김아영 님의 허리가 일반 사람보다 약해져있기 때문에 무리가 간 것이지 과한 치료가 아닙니다.”     



의사는 자신의 치료과정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고 이번 통증의 원인은 모두 약해진 나의 허리 탓이라고만 이야기했다. 사실 엑스레이만으로 의사는 환자의 허리디스크 상태를 완벽하게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의사라면 엑스레이 상으로 가늠할 수 없는 디스크 상태를 환자의 통증 체감정도와 여러 가지 상황들을 토대로 종합적인 치료 결정을 내려야했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치료에 앞서 환자에게 새로운 치료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을 해주고 환자가 스스로 선택을 하게 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제야 자신의 치료과정에는 전혀 문제가 없고, 모든 원인은 내 허리에 있다는 의사의 구차한 변명이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그날부터 나는 허리를 고치기 위해 수많은 병원을 전전했다.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대형 한방병원, 여러 곳의 한의원... 물리치료, 도수치료, 자기장치료, 사혈, 전기침 등 받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조금만 굽혀도 허리 통증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고 나의 일상은 완전히 망가져버렸다. 무조건 침대에 누워 하루의 대부분을 안정을 취해야 했다. 앉으면 통증이 심해지기에 그렇게 쓰고 싶었던 글도 쓸 수 없었다. 엄마가 아프니 온 집안이 정지된 것처럼 얼어버렸다. 집안일은 산더미처럼 쌓여버렸고, 결국 허리에 커다란 복대를 차고 천천히 일어나 일상을 아주 조심스럽게 이어가야만 했다.      



“MRI 사진 보이시죠? 요추 5번과 6번 사이의 디스크가 사진에서 보이시는 것처럼 디스크 퇴행이 오랫동안 진행되었습니다. 하마터면 디스크가 터져 수액이 흘러나올 뻔 했습니다. 수술을 해야 할 단계는 아니지만 앞으로 정말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 재활의학과 병원, 촘촘히 이어진 하얗고 투명한 디스크들 가장 아래에 유난히도 시커멓게 변해버린 찌그러진 디스크가 눈에 들어왔다. 의사의 표현대로라면 디스크 퇴행이 심각하게 진행되어 색깔이 검게 변해버린 것이며, 한번 퇴행된 디스크는 이전처럼 싱싱하게 복구될 수 없다고 했다. 내 나이 겨우 서른일곱, 이런 허리를 가지고 어떻게 평생을 살아가야할지 막막함이 밀려왔다. 동시에 뉴질랜드에 가서도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차올랐다. 뉴질랜드에 가면 이제 정말 나는 가장이 된다. 남편에게도, 친정엄마에게도, 시어머니에게도, 그 누구에게 잠시도 손을 벌릴 수 없을 것이며 주어진 삶의 무게를 홀로 견뎌야 할 것이다.     



불현 듯 함부로 몸을 대했던 수많은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이를 낳고 산후 조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던 젊은 날의 기억, 겨우 백일 남짓 된 세쌍둥이를 혼자 돌보겠다며 호기롭게 시작했던 아들 넷 독박 육아, 허리가 아플 때마다 동네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 한두 번으로 대수롭지 않게 흘려보냈던 지난날들. 그러나 몸이 망가지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건강은 자신하는 게 아니었다. 나의 몸은 그동안 수십 번을 나에게 경고했지만, 강렬한 통증의 끝자락에서 나는 겨우 내 몸이 보낸 메시지를 뒤늦게 발견했다. 버스는 이미 지나간 후였다. 그것도 아주 멀리.     



“지금으로서의 최선은 디스크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나쁜 자세를 피하고 좋은 자세를 유지하면서 되도록 허리에 무리가 되지 않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허리는 좋아질 거예요.”      



의사는 나에게 책 한 권을 추천해주었다.

‘백년허리’     



이 책은 서울대학교 병원 재활의학과 정선근 교수가 출간한 책으로, 허리디스크에 대한 기존의 잘못된 상식과 좋은 허리를 유지하기 위해 행해야하는 노력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정선근 교수에 따르면 98%의 요통은 좋은 자세만 유지하면 수술 없이 완치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이상하게 혼란스러워졌다. 지난 시간동안 튼튼한 허리를 유지하기 위해 행했던 운동들이 이 책에서는 허리를 망치는 운동이라고 소개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유튜브를 보면서 허리 통증을 완화하는 요가나 스트레칭을 그동안 열심히 따라하고는 했다. 그 운동의 대부분은 누워서 다리를 들어 올리거나, 허리를 굽히는 동작들이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이런 동작들이 오히려 디스크를 악화시킨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백년허리’에 따르면 허리디스크에 대한 치료법이나 접근법, 운동법은 현재까지도 의사들 사이에서조차 이견이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디스크를 살리는 보존치료를 중심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추세지만,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인공디스크 수술이 거부감 없이 남용되기도 했다. 사실 돌이켜보니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대형 한방병원, 한의원을 전전하며 담당의사의 설명과 치료방법이 제각각 달랐던 것 같다. 어떤 병원에서는 수술을 권유하기도 했고, 어떤 병원에서는 집중치료를 해야 한다며 당장 오늘 입원을 하라고 했던 반면, 어떤 병원에서는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될 정도로 지켜보자는 말을 건네기도 했으니까.


    




지난 한 달 반 동안 나는 허리를 회복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허리에 좋은 운동을 틈틈이 했고 무엇보다도 살을 빼기 위해 노력했다. 사실 병원마다 진단과 처방은 제각각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있었다. 세쌍둥이 출산 후 급격하게 늘어진 뱃살이었다. 나는 허리에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해 간헐적 단식을 시작했다. 저녁을 먹고 다음날 열두시까지 16시간 공복을 유지했다. 야식과 간식, 맥주를 끊었다. 그렇게 한 달 반 동안 운동을 하지 않고도 6킬로그램을 감량했다.   


   

내 나이 겨우 서른일곱, 이제 체중감량은 다이어트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건강한 육아를 위한 생존이 되었다. 엄마가 무너지면 온 집안의 일상이 송두리째 망가지는 것을 경험했기에 나는 무엇보다도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건강해지기로 결심했다.  몸을 소중히 여기고,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에도 귀 기울이며, 무엇보다 적고 건강하게 먹기로 했다.



허리통증이 시작된지 벌써 한 달 반이 지났다.

하지만 이따금씩 허리가 뻐근해진다.

그럴 때면 걱정과 불안이 스친다.

이제 곧 출국.

아들 넷을 데리고 뉴질랜드로 잘 떠날 수 있을까.  










<허리가 아프신 분들께>

허리에 좋은 운동을 소개합니다.

허리가 아프시다면 아무 운동이나 막 하지 마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아들 넷을 데리고 뉴질랜드 기러기가 되기로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