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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넷맘 Oct 01. 2019

한 장의 추억

그래서 소중하다. 그 기억도. 기억이 되어버릴 오늘도.


아무것도 아닌 일에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올 때, 나는 당혹감을 느낀다. 한 장의 사진에 감정이 와르르 무너져버린 여리고 여린 나 자신을, 냉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또 하나의 이성적인 내가 안쓰럽게 바라볼 때, 그 사이의 작은 여울에는 불안이 흘러내린다.      




며칠 전에도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당황한 적이 있었다. 발단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2017년도 어느 날의 집안 풍경.


사진 속 펜스 너머에는 내가 분주하게 세 쌍둥이를 먹일 분유를 타고 있고, 아기들은 펜스 안쪽에서 배가 고픈지 펜스를 부여잡고 나를 간절하게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3호는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혼자 돌아서서 카메라를 향해 해맑게 웃고 있는, 특이할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평범한 사진이었다. 그런데 사진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가슴속이 견딜 수 없이 뜨거워졌다.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흐느꼈다. 이런 내가 당황스러울 만큼.




사진은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있던 당시의 감정들을 불러일으켰다. 

이 감정은 ‘그리움’이라는 한 단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런 복잡한 감정이었다.


지나버린 시간에 대한 그리움, 

훌쩍 커버린 아이들에 대한 아쉬움,

아이들을 한 번 더 안아주고 따뜻하게 바라봐주지 못했던 미안함과 후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던 독박 육아...

각박한 하루를 가까스로 버티고 있었던 안쓰러운 내가,

그때의 그 절실했던 마음이 한 장의 사진 속에 빽빽이 담겨있었다.      




사진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나는 그때 그 순간 속으로 들어가 있다. 억척스럽게 수십 개의 젖병을 닦고, 분유를 채워 넣고, 아이들에게 분유를 먹이고, 보행기에 태워 한 명씩 이유식을 먹이고, 하루 종일 끊이지 않는 아이들의 울음소리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낡은 라디오를 켜고 무릎을 안은 채 귀를 기울이고 있는 내가 보인다.


무릎에 고개를 숙이고 숨죽인 채 조용히 한숨을 뱉고 있던 나,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아 우는 아이들을 따라 한참을 울었던 나,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았던, 하루를 꾸역꾸역 삼키고 버텼던 안쓰러운 내가 선명히 떠오를 때면 어김없이 나는 눈물을 흘리고 만다.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시간,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눈물 나도록 그리운 시간, 그러나 이제 그 시간들은 제법 차가워진 가을바람이 되어 손가락 사이를 잠시 머물다 빠져나가고야 만다.     






여기 눈물바람이 난 사람이 하나 더 있다. 평생 눈물이라는 단어와는 담을 쌓고 살 것 같았던 호랑이처럼 무서웠던 아빠가 요즘은 울보가 되었다. 내 결혼식 날, 아빠의 눈물을 처음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아빠의 얼굴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요즘에는 정말 당혹스러울 정도로 평범한 타이밍에 눈물을 흘리고는 하신다.      




그날도 그러했다. 연휴를 맞이해 서울로 올라온 막내 내외와 다 함께 점심을 먹었는데 아빠가 갑작스럽게 눈물을 보여 가족 모두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별거 아닌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아빠는 며칠 전 친척들과 노래방에 갔던 이야기를 한참 하고 계셨다. 노래를 부르려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다는 이야기였다.  




“그때 눈물이 나올 것 같으셨다고요? 아니, 노래를 부르다가, 왜요?”

막내는 무심하게 아빠의 말을 받아쳤다. 다른 가족들도 아빠의 이야기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고 다들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었다.




“왜 그렇겠냐. 왜......”

갑자기 아빠가 고개를 푹 숙인 채 흐느꼈다. 아빠가 그렇게 우는 것을 본 적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 것과 소리를 내어 흐느끼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느낌이었다. 더욱이 아빠의 흐느낌은.

그런 아빠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목구멍에 뜨거운 것이 왈칵 쏟아져버리는 것 같은 그런 슬픔이 차올랐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요즘 아빠는 종종 눈물을 훔치신다고 했다. 집에 있을 때면 사진을 들여다보는게 아빠의 새로운 습관이 되었는데, 엄마와 아빠가 함께 찍은 젊은 시절의 사진, 어린 세 딸의 귀여운 사진, 우리 가족의 단란했던 사진 등을 우두커니 앉아 몇 번이고 바라보곤 한다고 했다. 

세 딸이 출가한 텅 빈 집을 가득 채우는 그 가녀린 흐느낌은 얼마나 안쓰러운 것일까.

엄마의 이야기를 듣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날 이후로 이따금씩 아빠의 눈물을 떠올렸다. 그리고 불현듯 며칠 전 내가 흘린 눈물과 아빠의 눈물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했다.

아빠의 눈물에 어떤 것이 담겨있는지.


아빠의 눈물에도 그리움이라는 단어만으로는 형용될 수 없는 수많은 감정들이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

지나간 무정한 시간에 대한 그리움, 딸들에게 한 발 더 다가가지 못했던 후회, 별 보고 집을 나서 달을 보고 집에 들었던 팍팍했던 하루, 이어진 인생의 내리막길, 안쓰럽게 버티고 버텼던 그의 빛났던 청춘담겨 있 것이다.      






아빠의 애창곡은 ‘바위섬’이었다. 우리 가족은 늘 둘러앉아 다 함께 이 노래를 부르고는 했다. 막내는 피아노를 치고 그 옆에 언니와 내가 나란히 서서 노래를 부르며 화음을 넣었다. 아빠와 엄마는 우리 옆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열창을 했다. 내게도 그 기억은 무척이나 따뜻하고 사랑스러웠던 추억었다. 어쩌면 아빠의 인생에서 그 기억은 내가 간직하고 있는 감동 훨씬 그 이상으로 따뜻하고 행복했던 기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빠가 유독 이 노래를 좋아하신  이유가 사랑하는 딸들과 함께 할 수 있었소중한 추억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십여 년이 흐른 어느 날, 갑자기 그 선율에 목이 멜 정도로  시간이 그리워지고, 그리움을 기어코 눈물로 토해낸 것이 아니었을까.



   

시간은 흐른다. 어린 시절의 조막만한 여자애는 서른여섯의 아들 넷 엄마가 되었고 젊고 패기 넘쳤던 아빠는 환갑을 훌쩍 넘은 할아버지가 되었다. 

머지않아 나 역시도 지금 아빠가 서있는 그 자리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빠가 흘리는 눈물처럼 나도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야 말 것이다.




한 장의 사진에는 뜨거움이 있다.

추억이 있다. 지나간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래서 소중하다. 그 기억도. 기억이 되어버릴 오늘도.








삼십 여년 전, 청춘이었던 아빠와 엄마


삼십 년이 흐른 어느 날, 할아버지가 된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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