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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넷맘 Feb 02. 2020

내가 호구로 보이나요?

외국에서 한국인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


정착 서비스라는 것이 있다. 유학원에서는 정착 서비스라는 명목으로 3000~4000불의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정착 서비스라는 거창한 명목에는 집 계약을 제외하고는 사실 별다른 게 없다. 집을 구매하는 것을 제외하면 차량 구매, 전기, 인터넷, 가스, 수도, 핸드폰 구매, 계좌 오픈 등 부딪혀보면 대게 별거 아닌 것들이다. 사실 외국에 가면 언어가 서툰 한국인은 어려움을 겪는다. 언어의 장벽은 그 별거 아님도 심각한 문제로 만들어 버리기에 이민자들은 거금을 주고 정착 서비스를 이용하고는 한다.      




내가 정착 서비스를 받기로 결정한 건 다름 아닌 아이들 때문이었다. 혼자 외국으로 훌쩍 떠났다면 에어비앤비 같은 곳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한 달가량 천천히 발품을 팔고 동향을 살피며 집 계약을 진행했겠지만, 아들 넷을 데리고 이 많은 짐을 이끌고 혼자 이사를 다니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큰마음먹고 정착 서비스를 신청했다. 3천 불이라는 큰 비용을 지불하기로 말이다.     




“어머님, 아이들이 많아서 차량 한 대로는 픽업이 안 됩니다. 회사 차량이 한 대 밖에 없는데 어머님께서 차량을 미리 구매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유학원에서 소개해준 현지 정착 서비스 회사 담당자는 출국도 하기 전 다짜고짜 차량을 먼저 구매하라는 이야기를 건넸다. 정착 서비스에는 공항 픽업이 포함되어 있기에 엄밀히 이야기하면 차량이 부족하여 임시 차량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고객인 내가 관여할 부분은 아니었다. 유학원 원장도 차량은 되도록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을 한 후 구매하라고 여러 번 이야기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차를 구매하라니. 황당했다.     




“저희 인맥을 총동원해 최저가 차량을 수배했습니다. 이만한 가격에 이 정도 서비스면 정말 좋은 수준이에요.”

회사에서 추천한 차량은 12,900불에 3년의 개런티(기계적 결함에 대한 보증과 로드 서비스)가 포함된 금액이었다. 3년 개런티는 천불의 옵션이었는데 내가 원하지 않으면 차량 가격은 11,900불이 되는 것이었다. 뉴질랜드의 중고차 시장은 생각보다 활발했고 가격도 저렴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개인 간 거래 시 중고차 매매는 보통 5,000~10,000불 이하의 가격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따라서 딜러가 보증하는 차량은 두 배 가까이의 가격차이가 발생했고, 물론 장/단점이 있겠지만 가격차이가 상당했기에 결정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코리아포스트(교민 사이트)에서 몇몇 차량의 소유주에게 컨택하여 차량을 구매하려고 시도했지만, 번번이 유학원에서는 정착 서비스 회사와 연계된 딜러샵에서 구매하기를 권유했다.

“제가 뉴질랜드에만 20년 살았어요. 검증되지도 않은 개인 차량을 구매해서 길에서 차가 퍼져 고생한 사람들을 수없이 보았어요. 아이들 데리고 어쩌시려고요.”

그들의 이야기도 일리 있었지만, 대부분은 낯선 곳의 상황을 잘 모르는 불안함을 이용하여 두려움을 증폭시키는 이야기들이었다. 출국 이틀 전까지 차량에 대한 결정을 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이틀 후면 출국인데 회사에서는 뾰족한 방법을 강구하지 못한 채 무조건 내게 딜러샵 차량을 계속 권유하는 상황이었다.




“오늘 계약을 하지 않으면 이 차량을 다른 분이 사갈 수도 있어요. 오늘도 몇 명이 차를 보고 갔답니다.”

딜러샵 직원이 하는 말인지, 정착 서비스 담당자는 제법 딜러샵 직원이 건넬만한 이야기들을 나에게 늘어놓았다. 나는 계속해서 연락이 닿은 개인차량을 구매하려고 애썼지만 회사에서는 이것도 할 수 없다, 이것도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개인차량 구매에는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식이었다. 그렇게 하루가 흘렀다. 출국이 내일로 코앞에 다가왔다.     




“어제 말씀하셨던 차량 오늘도 가능한지 알아봐 주시겠어요?”

날이 밝자마자 나는 마지막 선택을 하기 위해 정착 서비스 담당자에게 연락해 물었다. 그리고는 연락을 계속해왔던 개인차량 소유주와 마지막으로 조율이 가능한지 동시에 연락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뜸 정착 서비스 담당자가 연락이 오더니 계약금 3천 불을 이미 걸었고 아이들 카시트도 그 차에 이미 옮겨놨다는 이야기를 했다. 차량이 가능한지 확인해달라는 내 전화에 십 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 짧은 시간에 계약금을 걸다니.

그것도 나의 동의도 없이...!      




결국 나는 정착 서비스 회사 원장이라는 사람에게 전화해서 따졌다. 왜 이렇게 일처리를 하냐고 화를 내었다. 그는 내게 오해라면서 모든 것이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나를 위한 배려였다고 둘러댔다. 출국은 당장 내일. 어찌 되었든 이 사람들은 당분간은 내 일에 대해 손과 발이 되어줄 사람들이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한숨을 쉬며 개인 거래를 포기하고 이들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이들에게서 11,900불에 차량을 구매했다. 1년의 차량 개런티와 로드 서비스가 포함된 금액이라고 했다. 확인한 바로는 뉴질랜드 딜러샵을 통해 구입하는 금액으로도 나쁘지 않은 비용이기는 했다. 그러나 이곳에 도착하고 차량 증서를 보니 순수 차량가액은 10,400불. 이들은 그제야 또다시 말을 바꾸었다. 결국 제대로 된 영수증을 받는 데 일주일이 필요했다.    



  

사실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들과 연계된 가구점에서 구매한 매트리스는 너무 딱딱해 누울 수 없었고 소파는 하루 만에 덜컹덜컹 부러져버렸다. 집을 구한 것도 나였다. 처음 이들은 부동산 사이트에도 없는 현지 고급 인프라를 통해 Furnished house(가전 가구가 있는 집)를 구해줄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결국 이 집은 뉴질랜드 부동산 사이트 (트레이드 미)에서 내가 구한 집이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외국에 나갔을 때 누군가에게 너무 의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어 때문에 정착 서비스를 이용하고 모든 것을 위임하는 형식으로 진행한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이 안에는 회사 간의 유착, 리베이트로 가득하다. 초행길에 불안한 누군가의 마음을 이용하여 장사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정직한 업체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그러나, 들여다보지 않으면 모른다. 내가 발품을 팔고 정보를 알아보지 않는다면 나의 눈과 귀는 까막눈과 까막귀가 되어버린다. 눈 뜨고 코 베이는 삶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이곳에 도착한 후 며칠간을 내가 겪은 부당함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다. 가구를 구입한 가구점에 가서 내가 겪은 불편함에 대해 항의했고 결국 매트리스와 소파를 바꿨다. 그리고 대부분을 이들과 연계된 업체를 통해서가 아닌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처음에는 주저하기도 했다. 몇 년 동안 쓰지 않았던 영어를 쓰려니 울렁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조금만 노력하면, 아주 조금만 눈과 귀를 열면 보인다. 비록 두려울지라도 아주 조금이면 된다. 열다 보면 조금씩 자신감마저 차오르기도 한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선택이었다.

한비야의 말처럼, 단지 1그램의 용기를 낼지,

아니면 자신의 눈과 귀를 완전히 닫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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