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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넷맘 Jun 30. 2020

팔리지 않는 글에 대하여.

그럼에도 내가 글을 쓰는 이유


한동안 글을 쓸 수 없었다. 아니, 조금 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글을 쓰기 싫었다. 허탈함이라고 해야 할까. 두 번째 책을 출간한 이후로 내게 이런 종류의 감정이 밀려들었다. 지난 4년 동안 습관처럼 책상에 앉았다. 글쓰기는 내게 삶의 일부였고 단 하루도 글을 쓰지 않은 적이 없다. 매일같이 가슴속에 쌓인 감정의 덩어리들을 글을 쓰며 토해냈다.  아들 넷이라는 지난한 독박 육아의 여정을 글을 쓰며 견뎠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 썼다. 살기 위해서였다. 무언가를 쏟아내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마음이었다. 당장 내게 주어진 오늘 하루를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었다. 가시같이 찔러대는 아기들의 울음. 세 쌍둥이를 출산하고 포기해야 했던 커리어. 저 바닥까지 추락해있던 자존감을 가까스로 일으키게 해 주었던 건 내게 글쓰기였다.     




운이 좋게 글쓰기 일 년 만에 첫 책을 출간했다. 그리고 연이어 두 번째 책을 계약했다. 머릿속은 온통 글쓰기에 대한 생각밖에 없었고 메모는 습관이 되었다. 새로운 아이디어,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핸드폰에 기록했다. 아기들의 기저귀를 갈고는 한 문장, 젖병을 물리고는 한 문장, 심지어는 아기들을 재우면서도 기록을 멈추지 않았다. 아이들이 잠든 밤, 이슥한 밤의 끝자락이 올 때까지 글쓰기를 이어갔다. 중요한 시험을 앞둔 수험생처럼 그렇게 나는 습관처럼 책상에 앉았다. 왜 이렇게 글쓰기에 집착했던 걸까. 무엇이 나를 그토록 달리게 만들었을까. 한 걸음 떨어져 불안하고 위태로웠던 그때의 안쓰러운 나를 바라보면 그때의 내가, 당시의 나의 감정이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글쓰기에 대한 애정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저 무언가를 향해 다시 나 자신을 내달릴 수 있게 만든 삶의 목표가 생겼던 것이었다. 글쓰기는 공허한 마음을 채워주었고 나 자신이 작고 미약하지만 여전히 무언가를 만들어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글을 쓰며 글쓰기에 대한 목적이 조금씩 확장되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단순히 쓰러져가는 나 자신을 일으키기 위해서였지만, 글을 쓰며 한 편의 글이 지니고 있는 무게와 영향력을 깨달았다. 나의 미약한 글이 어느 누군가의 삶에 스며들어 작은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것. 누군가의 오늘을 되새기게 하고 내일을 움직이게 만들 수 있다는 것. 글이라는 것의 선한 영향력을 가슴 깊이 깨달았다. 내가 책을 쓰기로 결심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고되고 지친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네주고 싶었다. 한때의 나처럼 상실감과 공허함의 굴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힘겹게 하루를 견디고 있을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 이 세상에 나 같은 사람도 있으니, 여전히 삶의 굴레에서 힘겹게 사투하고 있지만 나름의 삶의 재미와 의미를 찾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포기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자신을 잃어버리지 말라고 말이다.     




책을 쓰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그 안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건져 올리지 않으면 버티기 쉽지 않은 직업이었다. 베스트셀러 작가는 극소수의 이야기였고 대부분의 작가는 증쇄를 찍기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한 권의 책이 세상을 빛을 보기 위해 작가와 출판사는 수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지만 결과는 참혹함에 가까웠다. 작가라는 직업은 열정 페이라는 단어에 가장 걸맞은 직업이었다. 지난 4년간 책상에 앉아 내가 벌어들인 소득은 최저시급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었다.       




애초부터 글쓰기가 내게 금전적인 이유는 아니었지만, 작가라면 누구나 자신의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소망할 것이다. 두 번째 책을 출간한 이후 사실 허탈함이 밀려들었다. 뉴질랜드행을 병행하며 마지막까지 퇴고를 열심히 준비했고, 심지어는 이곳에 와 변변치 않은 가구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썰렁한 집에서 힘겹게 퇴고를 마쳤기 때문이었다. 집을 계약하고, 살림살이를 조금씩 들여놓고, 차를 구매하고, 전기, 가스, 인터넷 등을 설치하고, 큰애 초등학교 오리엔테이션에 세 쌍둥이 유치원 등록까지. 한꺼번에 너무나도 많은 일이 몰려들었지만, 마지막 퇴고를 마치기 위해 늦은 밤까지 원고를 보았다. 그러나 책은 기대만큼 팔리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코로나 영향도 있었고 책의 이야기가 대중적인 소재가 아닌 이유도 있을 것이다.  



    

허탈함이 밀려들었다. 글쓰기라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느낀 회의감이었다. 잔뜩 힘을 주었는데 잡히는 것은 없는 실체감이었다. 지난 4년이 스쳐 지나갔다. 나의 글은 지금 어느 지점에 서있을까.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줄 수도 없는 글이라면 그것은 그저 다이어리에 지나지 않을까. 그동안 발버둥 쳐온 나의 행위는 그저 책을 출간했다는 자기 위안에 지나지 않을까. 자기 위안이라면 첫 책을 출간했을 때 느낀 성취감이면 충분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보다 ‘더’를 원했다. 책에 대한 기대감은 높았고 나도 모르게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한동안 글을 쓰기가 싫었다. 스스로에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핑계를 갖다 부치기도 했지만 글쓰기가 그저 싫었던 것 같다. 바람이 빠진 풍선처럼 글쓰기에 대한 열정 또한 맥없이 사그라져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죄책감이 느껴졌다. 어느 누구도 내게 글을 쓰라고 강요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이상하게 늘 가슴 한편에 묵직한 돌덩이가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내 글을 기다려주는 독자 때문이었다. 비록 많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내 글을 기다려주는 몇몇의 독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진심으로 내 글을, 내 삶을 응원해주고 있었다. 새 글이 올라오지 않자 몇몇의 독자로부터 개인적인 메일을 받았다. 댓글로 안부를 묻는 독자들도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길래 글을 쓰지 않느냐는 유머가 섞인 독촉도 받았다. 진심 어린 누군가의 댓글을 볼 때마다, 한 글자 한 글자 마음을 담아 써 내려간 내 책에 대한 서평을 우연히 마주할 때마다 이상하게 죄책감이 느껴졌다.   



   

그중 유난히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 그분은 몸이 아프신 분이었다. 힘겨운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데 내 글이 삶에 위안이 된다는 말을 했다. 그는 도서관에 가서 몇 시간 동안 내 책을 읽었다고 이야기했다. 시각장애를 갖고 있어 음성으로 책을 듣는 서비스를 이용하여 내 책을 들었는데 잘 들리지 않아 한 권의 책을 몇 번이고 들었다고 했다. 그 순간 어느 지방의 한 도서관에서 한 글자 한 글자 음성에 집중하며 내 글을 읽었을 누군가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상하게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그의 장문의 댓글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죄책감이 밀려왔다. 내 글이 누군가의 하루를 할애하게 만들 만큼 가치 있는 글일까. 나는 그동안 글을 쓰며 얼마만큼의 진심으로 글을 대했었나. 어느 순간부터 나의 글쓰기는 순수함을 잃지는 않았나. 처음 글을 만나고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내야 살 수 있었던 처절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누군가를 위해 글을 쓰자고 다짐했던 설렘 가득했던 지난 나의 모습과 수많은 밤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던 지난 기억의 마지막 끝에 한 가지를 깨달았다. 글을 통해 내가 건넸던 위로만큼이나 나도 위로받고 있었다는 것을. 어쩌면 내가 준 것보다 훨씬 큰 울림과 감동이 내 삶에 스며들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내 삶을 지탱하는 또 다른 원동력이 되고 있었다는 것을.      




작가와 독자라는 경계. 이 경계는 어느 순간부터 허물어졌다.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지점은 누군가의 삶 속에 스며들어 있고 누군가는 나의 삶 속에서 의미를 건져 올려 그의 삶을 버틴다. 나의 하루는 그의 하루이기도 하고, 그의 하루는 나의 일부가 되었다. 글을 쓰며 나는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네고 누군가의 작은 움직임은 내 삶에 또 다른 의미가 되어 돌아온다. 삶에서 결코 분리될 수 있는 불가분의 무언가처럼 이제 글쓰기는 내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나는 깨닫는다. 그것이 그럼에도 내가 글을 쓰는 이유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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