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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넷맘 Jun 05. 2023

마흔, 아직도 노예 같은 삶을 살고 있다.

feat. 마흔이 되면 달라질 줄 알았는데... 불안해서 누워서도 공부

나에겐 한 가지 버릇이 있다. 손가락 살을 뜯는 것이다.


한번 뜯기 시작하면 쉬이 끝나지 않는다. 손으로 다른 손가락을 더듬으면서 뜯을 것을 계속 찾는다.


까끌한 것이 사라질 때까지 뜯어야만 한다. 기어코 피를 보고 나서야 끝이 난다.


휴지에 젖은 흥건한 피를 보면 이상한 쾌감이 느껴진다. 그것은 새빨간 피에 대한 시각적인 흥분이 아니다.


뜯는 작업이 끝이 났다는 안도감에 가깝다. 피부가 건조해지는 시기에는 더 자주 뜯는다.


무언가 불안하거나 초조할 때면 더 심해진다.



나는 평생 쉬어본 적이 없다. 아니,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손가락 살을 뜯기 시작한 것은 쉬기를 시작한 바로 그 타이밍이다. 쉼과 동시에 불안이 시작되는 것이다.


회사에 다닐 때도 그랬다. 금요일 저녁 야근을 하고 돌아오면 불금 단 몇 시간만 해방된 느낌이 들었다.


토요일에는 월요일에 처리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고, 일요일에는 다가오는 월요일 때문에 우울해서 하루 종일 두통을 앓았다.


오랜만에 휴가를 떠나도 비슷했다.


나는 오롯이 그 시간들을 즐기지 못하고 다시 돌아가 처리해야 할 일들, 벌어지지 않은 일들을 미리 걱정하기 바빴다.



나는 일 중독이었다.


세 쌍둥이를 출산하고 회사를 퇴사했을 때, 그렇다고 그동안 짓눌렀던 업무에서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느낀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전보다 더 많은 불안과 초조함을 느꼈다.


그것은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실망감이 아니라,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일이 없다는 사실에 늘 초조함을 느꼈다.


미래의 불확실성은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고 비생산적이라는 삶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게으름을 피우는 것은 늘 숨이 막혀 조여 오는 느낌이었다.


24시간의 끝이 없는 아들넷 육아,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글을 쓰기 시작했고 연이어 두 권의 책을 출간했다.


아들넷을 독박 육아했던 내게 아무도 무언가 하라고 이야기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시간들을 견디기 힘들었다. 시간을 쪼개 글을 쓰며 할 수 있는 것들을 실현했다.


나는 나를 더욱 가혹하게 만들어야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뉴질랜드에 왔을 때도 비슷했다.


연고도 없는 이곳에 홀로 아이들과 떠나와 나에게 무언가 해야만 한다고 독촉한 사람은 없다.


오히려 대학에 다시 가겠다고 남편에게 이야기했을 때 남편은 나의 결정에 걱정을 많이 했다.


왜냐하면, 그 과정에서 얼마나 내가 나를 가혹하게 만들지, 그 안에서 내가 얼마나 스트레스받을지 알기 때문이었다.


다들 타지에서 아이들을 홀로 키우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말했다. 아니, 그것만으로 충분히 대견한 일이라 했다.


그러나, 나는 무언가 더 해야만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불안감이 늘 나를 힘들게 했다.


그렇게 나는 홀로 아이들을 키우며 다시 대학을 졸업했고 취업을 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끝이 아님을 알고 있다.


이렇게 글을 쓰며 유튜브를 찍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어쩌면 불안에서 도망가기 위한, 스스로 비생산적이라는 죄책감에서 해방되기 위한, 몸부림일지도 모르겠다.



뉴질랜드에 삼 년간 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곳 특유의 여유로움이다.


사람들은 일하는 것만큼이나 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곳은 요트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 집이 더러 있다. 차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요트를 사는 것이 특별하지 않다.


주중 주말 가리지 않고 개인 요트나 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젊은이들은 세일링, 서핑, 혹은 카약을 가지고 바다로 가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세일링을 나간다.


waterwise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세일링을 배우고 생존에 필요한 뗏목을 만들기도 한다.


어린 나이에 공부보다 중요한 것은 운동이다. 이곳 아이들이 유일하게 다니는 학원은 각종 운동을 배우는 것이다.


테니스, 축구, 짐네스틱, 골프 등 이곳 아이들은 다양한 운동을 배우고 경기를 나간다.


학부모들은 크고 작은 시합 경험을 중요시한다.


운동을 하는 목적은 운동선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경험과 취미를 쌓는 것에 있다.



마흔이라는 나이의 자락에서 그동안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무언가 인생의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쉬고 싶지만 쉬지 못했던 나에게, 일만 하다 지나쳐버린 인생에게, 늘 불안과 초조함을 느꼈던 가여운 나에게, 나는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일하는 것만큼이나 온전히 쉬는 법을 배우는 것 또한 삶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는 사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입시주의, 공부, 경쟁에 쫓기며 늘 일하고 치열하게 살아왔다.


휴식은 잠시 현실을 도피하는 잠깐의 시간이었을 뿐이었다.


건강하게 여가를 즐기는 습관이나 삶에 필요한 '휴식의 기술'을 배우지 못하며 살아왔다.


개인적으로 즐길 운동, 지쳐있는 나의 소울을 재충전해줄 악기 등 문화 예술 생활을 하고 서로 공유할 공간도 너무 부족했다.


중고등학교 때 체육시간은 건강한 육체를 돌보는 시간이 아니라 입시에 필요한 점수를 채워야 하는 의무적인 시간이었다.


번잡한 세상에서 자신을 진정으로 돌보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고 나는 지금까지 자신을 가혹하게 채찍질하며 살아오기만 했다.


마흔이라는 나이까지 좋아하는 운동 하나, 다룰 줄 아는 악기 하나 없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내면에 평화로움이 깃들면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다. 일에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도 자신의 몸과 마음을 상쾌하고 새롭게 가꾸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작년부터 우쿨렐레라는 악기를 독학하며 배우고 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악기를 연주하는 이 시간이 참 소중하다.


이제는 중급 정도의 수준이 돼서 내가 원하는 어렵지 않은 곡들을 찾아서 연주하게 되었다.


내가 악기를 배우니 아이들도 악기에 부쩍 관심이 많아졌다. 큰애도 나를 따라 우쿨렐레를 시작했는데 우리는 선의의 경쟁을 하며 함께 배우고 노래한다.


삼둥이에겐 전자 피아노와 심플리 앱을 깔아주었는데 아이들은 도레미를 배우지 않고도 간단한 곡을 연주하게 되었다.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마흔의 나는 여전히 불안하고 서툴지만 이제나마 어렴풋이 그 의미를 알겠다.


그리고 내 아이들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돌볼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란다.


https://youtu.be/tuRnzXSo_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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