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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넷맘 Dec 12. 2018

스무살, 나마스테 인디아!

한때 나에게도 (1) 무작정 떠난 아련한 추억이 있다.

길은 또 다른 길을 가리키고

세상의 나무 밑이 그대의 여인숙이 되리라.

별들이 구멍 뚫린 담요 속으로 그대를 들여다보리라.

그대는 잠들고 낯선 나라에서 모국어로 꿈을 꾸리라.

-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중에서




  

       

“가자!”

불과 책을 덮은 지 삼십분이 채 지나지 않았다. 한 손바닥으로 책의 뒷면을 지그시 누른 채 스무 살의 그녀는 무언가 결심한 듯 소리쳤다. 이제 막 덮여진 책은 아직도 그녀의 살결이 지나간 자리를 떠나보내지 못했다. 책 안은 여전히 그녀의 숨결과 손바닥의 온기로 가득했다. 책 속의 온기가 식기도 전에 그녀의 열정은 불타올랐다.

떠나리라. 깨달으리라. 이곳으로 가리라.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 그녀가 이 책을 만난 건 중앙도서관 어느 한 구석의 서재였다. 기말고사를 끝내고 찾은 도서관 한켠에서 만난 한 권의 책, 이 책의 책장을 넘긴 순간 마치 판도라의 상자에 휘말리듯 그녀는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는 광속으로 활자를 읽어 내려갔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그녀는 앉은 자리에서 한권의 책을 집어 삼켰다. 삼십분이 지나자 책을 감싸고 있던 온기가 비로소 조금씩 대기 중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그녀의 가슴에는 이제 막 불이 지펴진 상태였다. 책을 덮고 바로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다. 

떠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인도행 비행기 티켓, 50리터의 배낭 그리고 두꺼운 여행책자 한 권이 전부였다.





짐짓 50리터가 족히 되어 보이는 커다란 배낭을 메고 캘커타 공항을 나서자 매쾌한 캘커타 공기와 탄듯한 계란 냄새가 코끝을 아릿하게 찔러댔다. 길거리에는 까마귀, 개, 물소, 원숭이 그리고 거지들이 뒤엉켜 생활하고 있다. 이제 두 돌 정도 된 아기가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채 비위생적인 길거리를 누빈다. 거리에는 드문드문 물소의 분비물로 가득하다. 위태로워 보인다. 누가 사람이고 누가 동물인지 도저히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이들은 거리라는 거대한 집에서 서로 뒤엉켜 생활한다. 동물과 사람이 하나의 공간에서 이처럼 완벽한 공존을 할 수 있는 나라가 존재할 수 있을까.





앞으로 한 달간의 자유여행을 시작할 터였다. 캘커타에서 가야, 바라나시, 카주라호, 아그라를 거쳐 델리까지 북인도 대륙을 기차 및 버스로 횡단하는 것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대략적으로 정한 여행루트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정해진 루트대로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언제나 마음가는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이곳에 머물고 싶으면 이곳에 더 머물기로 했다.



 





벌써 네 시간 째, 가야로 가는 기차가 도저히 플랫폼에 들어올 생각이 없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울그락불그락 상기된 얼굴로 기차역 직원에게 항의해보지만 그는 늘상있는 일이라며 모르겠다고 한다.

“우리도 기차가 언제 올지는 몰라요. 하지만, 오겠죠. 오늘이 아니면 내일, 내일이 아니면 모레라도 올 겁니다. 도대체 왜 화를 냅니까? 화를 내도, 내지 않아도 달라지는 건 없어요.”





컴컴한 어둠이 내려앉고 간간히 작은 불빛들이 칠흑같은 어둠을 걷어내자 그제서야 기차가 서서히 플랫폼에 들어온다. 곳곳에는 하얀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창문에는 유리조차 없는 이 흉측한 기차가 앞으로 스무 시간을 함께 보낼 나의 안식처였다. 어느 박물관 유물처럼 전시되어야 할 것 같은 이 낡은 기차에 순식간에 수십명의 사람들이 달려든다. 기차는 이미 출발했지만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달리고 있는 기차에 가까스로 올라타는 사람도 허다하다.





기차 안으로 들어서니 좁은 통로 양옆으로 파란색 이층 침대가 빽빽이 달려있고 그 안에는 제각각 사람들이 누워있다. 침대에 오르기 전, 화장실에 잠시 들린다. 별도의 하수시설이 없는 인도 기차의 화장실은 말이 화장실이지 동그란 구멍 하나뿐이다. 구멍 아래로 배설물들이 바로 땅으로 떨어진다. 잠시 기차가 흔들리기라도 하면 저 구멍 아래로 추락할 것 같아 아찔하기만 하다.

자리로 돌아와 난간처럼 간신히 매달아놓은 2층 침대에 가지런히 눕는다. 커다란 베낭을 베개삼아 땀으로 젖은 머리를 기댄다. 기차 안은 짜이(밀크티)장수의 구수한 목소리와 인도 특유의 냄새가 어우러져 그 나라의 짙은 향기를 뿜어낸다. 꿈만 같다. 단 며칠만에 어딘가로 훌쩍 떠날 수 있다는 것이. 눈 앞에 펼쳐진 이국적인 세계가.


코 끝을 찌르는 사원의 향 내음, 유난히 새까맣던 길거리 아이들의 눈동자, 검게 그을린 릭샤꾼 목줄기를 타고 흐르던 땀방울, 아녀자의 미간에 찍혀있던 새빨간 빈디까지.

눈을 감으니 오늘 나를 스쳐간 인도가 선명히 살아있다.








어느덧 여행의 중반부에 이르자, 나의 남루한 행색은 인도사람이라고 착각할 만큼 인도에 동화되었다.

자유롭게 인도의 이곳저곳을 여행했다. 자전거 트래킹으로 카주라호를 누볐고, 낙타를 타고 푸쉬카르 사막 한가운데 누워 침낭에 얼굴만 빼꼼히 내민 채 당장 내게로 쏟아질 것 같은 무수한 별들을 보며 잠을 청하기도 했다. 시신을 태우고 있는 갠지스 강의 화장터 옆에서 인도사람들처럼 목욕을 했고, 아름다운 타지마할을 보며 언젠가 내게 찾아올 진실한 사랑을 꿈꾸기도 했다.




프랑스의 한 소설가인 마르셀 프루스트는 여행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우리가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뜨기 위해서라고. 인식의 불꽃이 튀어야 비로소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인도여행은 청춘의 나에게 세상을 향한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준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그래. 다시 가는 거야! 십년 후에 꼭 남인도 횡단을 해보자!”

인도를 다녀온 뒤, 그녀는 야심차게 계획을 세웠다.

뭄바이, 고아, 방갈로르, 마두라이, 첸나이에 이르는 비교적 자세한 여행 루트도 짜보았다.

하지만, 그때는 미처 몰랐다. 십년 후의 나에게 이 여행은 그저 허황된 꿈이 될 것이라는 것을.

 







분홍색 고무장갑을 낀 삼십대의 그녀는 분주하게 설거지를 하고 있다. 설거지가 끝나면 이유식 준비를 해야 하고, 청소기를 돌려야 하며, 밀린 빨래를 해야만 한다. 고요한 집안에서 분주히 하루를 보내는 사람은 오직 그녀뿐이다. 해도 해도 티가 나지 않는 가사노동의 굴레는 도대체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약 없는 싸움이기도 하지만, 오늘만은 설거지를 하는 그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진다. 이번 주말에 아이들과 가족 여행을 떠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 간만에 콧바람을 쐴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기껏해야 서울 근교의 어느 리조트에서 아이들을 실컷 물놀이시키고 겨우 재운 뒤 남편과 방구석 어딘가에 쭈그려 앉아 아이들이 깰까 호들갑을 떨며 아주 조용히 맥주잔을 기울이게 될 것이겠지만.





언제부터인가 여행은 휴식이 되었다. 큰마음 먹고 해외여행을 가게 되더라도 먹고, 놀고, 자고 모든 것이 한큐에 해결될 수 있는 리조트만 찾게 되었다. 어린 아들 넷을 데리고 여행다운 여행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잠시 나온 거리에서 동네 들개가 아이들 근처에 서성대기라도 하면 호들갑스럽게 개를 쫓아내기 바빴고 아이들의 약한 면역력 때문에 물소와 원숭이의 분비물로 가득한 곳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여행은 잠시 현재의 나를 내려놓고 나라는 존재를 조금 멀리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는 사색의 시간이 아니었다. 이제 여행은 아이들 중심으로 철저히 계획하고 움직여야만 하는 그래서 그 안에 나라는 존재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그저 그런 시간이 되었다.




십년 전,

야생 원숭이와 들개 사이에 앉아 버젓이 먹이를 주었던,

겁 없는 소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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