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넷맘 Feb 05. 2019

도대체 제사가 뭐길래.

죽은 자를 추모하는 방식은 개인의 신념 문제이다.


“10시까지 와.”

뜻밖에 전화였다. 8시에 일치감치 시댁으로 나서려는 나에게 남편은 한마디를 던졌다. 시어머니가 오늘은 느지막이 10시에 오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아침 일찍 시댁으로 가면 시어머니는 나에게 왜 이렇게 일찍 왔냐고 하며 미안한 기색을 표현하시곤 했다. 지방에 있는 형님은 보통 음식을 다 만들고 난 뒤 오후 늦게 돼서야 도착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 늘 미안해하셨다.      


두 시간의 여유시간이 생겼다. 미역국을 끓여 아이들의 아침밥을 먹였다. 명절음식을 만들러 간다고 하니 큰애가 엄마를 도와주겠단다. 이제 열 살이 되었다고 엄마를 도와주겠다고 선뜻 이야기하는 큰애가 고맙다. 세쌍둥이는 남편이 집에서 돌보기로 하고 큰애와 집에서 5분 거리인 시댁으로 향했다.     


“아이고. 왜 벌써 시작하셨어요.”

시어머니는 이미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꼬치전이 나무꼬치에 끼워져 플라스틱 쟁반에 가지런히 놓여있었고, 시금치, 콩나물, 숙주나물도 무쳐져 있었다. 커다란 냄비에 탕국도 뭉근히 익어가고 있었다.   

   

왜 갑자기 음식을 시작하셨을까. 시어머니가 평소와 다른 느낌이다. 혹시 며칠 전 브런치에 올린 남편에 대한 글을 읽으신 걸까. 신혼 초기 시어머니의 페이스북 친구요청에 놀란 적이 있다. 브런치에 들어와 내 글을 읽고 있는 시어머니를 상상하니 머리가 쭈뼛 서는 느낌이다. 에이. 시어머니가 브런치를 알리는 없다. 아니라고 믿고 싶다. 내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괜히 죄책감이 밀려든다.     


“네 형수가 못 온단다. 애가 아프대.”

시어머니의 표정은 별로 좋지 다. 내심 아이들이 오랜만에 집에 오기를 기다린 눈치였다.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따뜻하게 재우려고 고장난 보일러를 육십 만원 주고 고쳤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어느 부모가 그렇듯 시어머니도 가족들이 모처럼만에 한 곳에 모여 세배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갖기를 바랐을 것이다. 시어머니의 어깨가 더욱 쳐져 보인다.     


“전 만드느라 늘 네가 고생이다.”

신문지를 깔고 전 만들기에 돌입한 나에게 시어머니가 한 마디를 툭 던진다. 시어머니는 내게 툭 애정표현을 하는 편이다. 나는 이것이 시어머니에게 최고의 애정표현이란 걸 안다. 시어머니는 친근감 있고 푸근한 성격은 아니다. 오히려 대쪽 같고 카리스마 있는 성격이다. 결혼식 날, 신랑 쪽 테이블에 있던 엄마의 친구들이 우연히 이런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여기 시어머니 자리 보통 아니야. 그걸 전해들은 나는 신혼 초기 시어머니의 말에 이등병처럼 반응하고는 했다.


그러나 십년을 겪어보니 시어머니와 내가 참 공통점이 많은 것 같다는 걸 느낀다. 가식적이지 않고, 말보다는 행동을 하며, 여우같지 않고 곰처럼 묵묵한 사람, 내가 세쌍둥이를 출산하고 힘듦을 글쓰기를 통해 토해냈던 것처럼 시어머니도 장애아의 엄마로서의 평생의 멍에를 글쓰기로 토해냈다. 삼십년 전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어머니는 소설가로 활동하였고 평생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아마 시어머니는 이번 명절에 올라오지 못한다는 형님네 때문에 나에 대한 미안함이 더욱 컸나보다. 그래서 아침부터 늦게 오라고 전화를 하고 음식을 미리 시작했나보다.   

    

“음식 다 만들었으니 바로 가거라.”

시어머니가 집에 가라고 등을 떠민다. 괜히 마음이 무겁다. 이럴 때는 눈 딱 감고 ‘어머니 가보겠습니다. 쉬세요.’라고 이야기하며 쿨 하게 뒤돌아 집으로 뛰어가고 싶지만 어두운 낯빛의 시어머니 얼굴이 계속 밟힌다. ‘이건 절호의 기회야. 빨리 엄마한테 전화해서 오늘 저녁 친정에서 모이자고 해보자.’ 마음의 소리가 들려오지만 이상하게 오늘만큼은 시어머니 곁에 있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스친다.

     

“제가 뭐 음식 만들러 왔나요. 더 있을게요.”

결국 남편에게 세쌍둥이를 데리고 오라고 전화한다. 그리고는 쓸쓸히 앉아있는 시어머니 옆에 말도 없이 가만히 앉는다. 정적이 우리를 감싼다. 불편한 정적이 아니다.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 무뚝뚝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다. 갑자기 시어머니가 입을 연다.     


“사실 다들 모이면 이번 명절에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어. 이제 아버지도 나도 쇠약해졌어. 나는 제사를 지낸지 사십년이 되었어. 맏며느리라는 이유로, 그 책임감으로 제사를 지냈어. 제사라는 것이 여자에게 얼마나 힘든 멍에인지는 남자들은 모를 거야. 그래서 너희에게는 제사를 물려주고 싶지 않아. 앞으로 조금씩 제사를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했으면 해.”


여든을 바라보는 시아버지와 일흔을 넘긴 시어머니는 내게 항상 어려운 존재였다. 매우 보수적인 가정이었고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시어머니에게 이러한 결정은 쉽지 않았을 터다.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지만 선뜻 입이 열리지 않는다.

지난 사십년간 시어머니는 단지 맏며느리라는 이유로 일 년에 여섯 번씩 제사음식을 차렸. 시어머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집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적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러나 다시 돌아와야만 하는 며느리라는 자리, 현실의 무게, 멍에의 되물림, 내가 무너지면 집안의 질서가 흔들릴 것이라는 믿음, 그 책임감이 그녀를 지난 사십년간 버티게 했다.   

  

얼마 전 제사 때문에 친정에는 갈등이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맏며느리인 엄마가 제사를 이어받았는데, 5년 동안 제사를 지내다가 힘에 부친 엄마는 둘째 작은 아버지 댁으로 제사를 넘겼다. 처음 제사를 못하겠다고 하자 작은 아버지들과의 갈등은 최고조가 되었다. 아빠의 권위는 추락했고 동생들은 아빠에게 서슴지 않고 고성을 질렀다. 결국 할아버지에게 유산으로 받은 시골집을 둘째 작은 아버지에게 주는 조건으로 제사를 넘겼다고 한다. 집안의 제사를 넘기는 일에는 돈이 필요했다. 누가 제사를 지내고 비용은 어떻게 할지 전체적인 조항을 정리한 각서를 전문적으로 공증 받아 각자 보관하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엄마에게 건넨 유언은 단 한가지였다고 한다. 제사를 지내라는 것, 그래야 우리 집이 갈등 없이 지낼 수 있다는 것.


도대체 제사가 무엇이길래. 지난 사십년간 한 여자에게는 멍에로 얼룩진 삶을 살게 하고 한 가정에게는 형제간에 되돌이킬 수 없는 고성을 지르게 하는 건지. 사십 년 전의 한 며느리에게도, 사십년 후의 그 며느리의 며느리에게도, 제사라는 절차는 슬프도록 잔인하기만 하다.       


<한국 문화의 몰락>이라는 책에서 저자는 한국의 제례문화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주자가례' 등 제사를 보급시킨 것은 죽은 사람의 혼령이 아닌 살아있는 사람의 가부장적인 종법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였고, 조선 왕조의 가부장적 통치 질서를 각 가정 차원에서 '내면화' 한 것이 바로 제사이며, 결국 제사는 고도의 정치 행위였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조선 왕조의 패망, 일본 식민 통치, 그리고 대한민국 건국에 이르는 지난 100여년 동안 제사를 지내는 집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박정희 대통령 때는 아예 '가정의례준칙'을 만들어 정부가 제례문화에 대한 메뉴얼을 배포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제례문화는 우리 사회에 아주 깊숙이 파고들었다.      



죽은 자를 추모하는 방식은 개인의 신념 문제이다. 제사를 지내는 집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제사를 통해 조상들을 가슴에 새기고 건강을 염원하며 마음에 위안을 얻는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순기능이 있음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가 누군가에게 부담이 되어지는 구조가 되는 건 반대한다. 그리고 변화하는 사회의 패러다임 속에서 앞으로 한국의 제례문화는 각 가정의 개인차는 있겠지만 서서히 그 모습을 변형해갈 것이라고 믿는다.


너네 집에서 모시니, 우리 집에서 모시니, 티격태격 싸우다가 울며 겨자 먹기로 얼굴을 마주하는 것 보다는, 함께 묘지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맛있는 밥을 함께 하는 것이, 조상님도 더 원했던 그림이 아닐까.    










덧글) 효자남편에게는 인정하기 싫은 치명적인 장점이 있다. 바로 효자아들. 이번 명절에는 전부치는 것이 외롭지 않았다.



#제사

#며느리

#제례문화

#효자남편

매거진의 이전글 신이시여. 저에게서 식욕을 앗아가소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