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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넷맘 Feb 08. 2019

라라랜드를 본 남편의 눈물에 담긴 심리.

누구나 옛 사랑을 추억할 때가 있다.


미아는 꿈에 그리던 유명한 배우가 되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졌다. 단란한 가정과 평생의 꿈까지 성취한 그녀는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행복해야 했다. 우연히 SEB‘S라는 간판의 재즈카페로 들어섰다. 남편과 오붓한 저녁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옛사랑 세바스찬을 만날 줄은 몰랐다. 무대에 있던 세바스찬은 단번에 미아를 알아보았다. 그는 미아를 보며 찰나의 순간 ‘만약 미아와 헤어지지 않았더라면’하는 가슴 아픈 상상을 한다.

마지막으로 찡긋하는 서로의 눈인사에 영화는 끝이 난다. 여운이 남는 엔딩신이었다.     



바로 이 장면, 그들이 교환한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코를 훌쩍거리며 미아를 향한 세바스찬의 눈빛에 빠져들었다.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처럼 그들의 결말이 안쓰러웠다. 사실 나의 눈물은 예견되어 있었다. 휴먼다큐, 인간극장 등 웬만한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쉽게 흘러내리는 눈물 때문에 이 정도 가슴 아픈 엔딩신에서는 언제나 그랬듯 수도꼭지를 열어주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옆에서 아주 작게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슬며시 옆을 보니 남편이 울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난 십 년간 남편이 울었던 기억을 거의 떠올릴 수가 없을 정도로 그는 눈물에 야박한 사람이었다. 남편이 딱 한번 울었던 적이 있는데, 어렸을 때부터 키웠던 푸들(뽀삐)가 죽었을 때였다. 갑작스런 뽀삐의 비보를 듣고 186센티미터의 장신이 침대에 일자로 엎드려 베갯잇에 얼굴을 묻고 한참동안 눈물을 흘렸는데, 사실 당시 남편에게는 너무 미안했지만 그의 모습이 이상하게 웃겨서-마치 중학생 아이가 토라져 우는 모습같았다-속으로 웃음을 겨우 참았던 기억이 있다.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철저한 이성주의자로 살며 감성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왜 하필 이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는 걸까. 혹시 그 여자 때문일까.     






내가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신혼 였다. 만삭의 몸으로 남편과 나란히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남편의 전화벨이 울렸다. 일요일 밤이었다. 개그콘서트가 끝나면 내일은 출근을 해야 하기에 일찌감치 잠을 자기로 했다. 핸드폰을 보는 남편의 얼굴이 순간 묘하게 굳었다. 직감이 스쳤다. 남편은 차갑게 대답하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날 밤,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져 잠을 잘 수 없었다. 결혼 전, 헤어진 여자가 있었던 건 알았지만 결혼한 전 남자친구에게, 그것도 일요일 밤에, 이렇게 당당하게 전화할 줄은 몰랐다.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아직도 남편에게 핸드폰을 건내줄 때 보았던 전화번호가 선명히 떠올랐다. 곤히 잠이 든 남편을 옆에 두고 그녀의 전화번호를 저장하였다. 전화번호를 저장하니 언제부턴가 그녀의 카톡이 떴다. 그럼 그녀에게도 내 카톡이 뜨는 것일까. 순간 망설였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그건 내가 신경쓸 일이 아니고 네가 신경쓸 일이니까. 아무튼 그녀의 근황을 의도하지 않게 십 년째 카톡을 통해 전해 듣고 있다. 그녀는 우리가 결혼한 이듬해 결혼을 하였고 1남 1녀의 엄마가 되었다. 그녀의 이름, 얼굴, 직업, 남편, 아이들까지 모두 접수 완료. 




그러나, 그녀의 존재가 강렬하게 거슬리게 된 또 한 번의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 이후 5~6년이 지난 이후였다. 외부에 있었던 남편이 컴퓨터 공인인증서 로그인을 해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서랍 안 USB에 인증서가 있다고 했다. 신혼여행지에서 산 나비장식이 걸려있는 조그마한 USB였다. 서랍 깊숙이에서 USB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버렸다.     


사진 한 편에 던 ‘강원도 여행’이라는 폴더에는 엣띤 얼굴의 남편과 카톡에서 지겹게 보았던 그녀의 얼굴이 있었다. 순간 가슴이 세차게 뛰고 부글부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도대체 같이 사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있는 사람인지 그의 행동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솟아오르는 분노를 겨우 참고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USB에 정리되지 않은 사진이 있는 걸 보았는데 상대방에 대한 추억은 존중하지만 적어도 같이 사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지켜줬으면 좋겠어.”


“정말 미안해. 그 사진이 있는 줄은 정말 몰랐어. 지웠다고 기억했는데 기분 상하게 해서 너무 미안해.”


그날 나는 남편에게 화내지 않았다. 여태까지 그걸 지우지 않았다는 게 괘씸했지만 실수라 여기고 넘어가주었다. 넌덜머리나게 물어뜯는 것보다 강하게 침묵하는 것이 오히려 그에게 죄책감을 지울 것이라 생각했다.     






남편의 눈가가 어느새 촉촉이 젖어있었다. 왜 하필 이 장면이란 말인가. 라이언 고슬링의 우수에 젖은 환상적인 눈빛이 담긴 아름다운 이 장면에서 나는 왜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들을 소환시켜야만 하는가. 갑자기 세바스찬의 얼굴이 남편으로 바뀌고 미아의 얼굴이 그녀로 바뀌는 것 같았다. 남편과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남편과 그녀가 주인공인 영화에 내가 하찮은 조연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괜히 남편이 얄미워졌다.






몇 달 전, 친구들과의 단톡방에서 싸이월드 이야기가 나왔다. 싸이월드가 폐쇄되고 난 뒤, 게시했던 사진들을 옮겨두지 않으면 사라져버린다는 흉흉한 소문들이 한동안 돌기도 했는데, 싸이월드가 폐쇄될 당시 첫애 육아를 힘겹게 이어갔던 시절이었기에 싸이월드가 폐쇄된 지도 사실 몰랐었다. 대학교 때 여행 사진, 친구들과의 사진, 캐나다 어학연수 사진 등 나의 20대가 고스란히 싸이월드에 있었지만 그 추억들이 증발되어버린 것 같아 한동안은 꽤 우울하기도 했다. 그런데 싸이월드가 다시 어플로 나왔다고 하는 것이다. 그 얘기인즉슨 나의 옛 사진들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이야기! 나는 당장 싸이월드 어플을 깔았다.    

 

그 안에도 판도라의 상자가 있었다. 잊고 있었던 옛 사랑과의 추억이 담긴 폴더들이 있었다. 분명히 그 애와 헤어지고 모든 사진과 편지들을 버렸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남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이런 사진이 있는 줄은.


사진을 보는 내내 가슴이 콩닥거렸다.

죄를 지은 적도 없는데 괜히 죄책감이 들었다.


폴더를 삭제하기 위해 삭제버튼을 클릭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끝내 삭제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십년 만에 우연히 그 때의 사진을 만난 것처럼, 사진을 덮어두고 또 언젠가 이 사진들을 열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애에 대한 미련이 있는 것은 전혀 아니었다.


그저 그 시간들을,

치열하게 사랑하고 서투르 풋풋했던,

미래는 불투명했지만 꿈으로 가득 찼던,

서로의 꿈을 응원해주며 조금씩 성장했던,

빛났던 그 시간들을 흘려보내기가 싫었다.


끝내 나는 삭제버튼을 누르기를 포기하고 어플을 닫았다. 남편에게 은밀한 비밀 하나가 생긴 것 같은 묘한 기분과 함께.      






아직도 남편은 블루트스 스피커에 라라랜드 OST를 틀어 크게 듣고는 한다. 그가 단순히 음악들을 좋아하는건지, 아니면 미아와 세바스찬의 애틋한 사랑에 자신의 옛 추억을 대입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 는 조금 너그러워진 것 같다.


누구에게나 옛 사랑은 있고 그것을 담을 작은 방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리고 어쩌면 그가 추억하는 건 흘러간 그 사람이 아니라 흘러간 옛 시간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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