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넷맘 Feb 28. 2019

저는 강남엄마입니다.

이곳, 강남에서, 고비는 종종 찾아온다.


골목은 커다란 놀이터였다. 광명사거리 너머에 어느 남루한 주택에서 태어난 나는 허름한 골목 사이사이를 누비며 자랐다. 온 동네가 집이었던 시절이었다. 아랫집 임경이네에서 점심을 얻어먹고, 옆집 희선이네에서 한참을 보내다가 골목으로 나와 뛰어놀고는 했다. 여름이면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가 농사로 지은 수박을 한가득 트럭에 담아 광명으로 올라왔는데, 어린 나는 트럭 위에서 손님을 모은답시고 춤을 추었다. 방역차가 지나가면 숨이 턱턱 막혀올 때까지 방역차를 쫓아 뛰었고, 쓰레기장에서 위험천만한 숨박꼭질을 하기도 했다. 노오란 채변봉투, 이를 잡기 위해 엄마가 빗어주었던 참빗, 80년대의 향기는 아직도 내 가슴에 진하게 남아있다.    

  

“공순이나 되지, 머리 아프게 공부는 왜 하냐.”     


학창시절, 나의 부모는 단 한 번도 공부하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아빠는 공부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항상 입에 달고 살았다. 어릴 적 나는 아빠의 그 이야기가 듣기 싫었다. 그래서 공부하고 싶었고 보란 듯이 성공해서 인정받고 싶었다. 광명사거리 시장 옆 보잘 것 없는 동네에서, 그렇게 나는 꿈을 키웠고 지금은 휴지조각이 되었지만 한때는 국내 해운업계 1위였던 대기업에 입사했으니, 그리고 지금은 내 이름이 적힌 책 한권을 출간한 작가가 되었으니, 개천에서 용은 아니지만 작은 뱀 한 마리는 나왔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지금 나는 강남구 도곡동의 어느 오래된 아파트에 살고 있다. 개포동의 어느 빌라에서 자란 남편이 평생을 보낸 이 동네에서, 우리는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남편은 마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5학년때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고 한다. 남편이 어릴 적 개포동은 학구열이 높은 동네는 아니었다고 한다. 뭐, 지금도 이곳은 대치동 학원가와 타워팰리스 부근 학교만큼의 매서운 치마 바람이 불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살다보면 가끔은 강남이라는 이름값을 절감하기도 한다.



사실 나는 아이 교육에 열을 올리지 않는 편이다. 무엇보다도 어린 나이부터 아이에게 공부에 대한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나이에는 그 나이에 어울리는 옷이 있다고 믿는다. 천천히 시작해도, 조금 늦어도, 아이에게 재능이 있고 흥미가 있다면 선행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난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며 자라지 않았다. 나이에는 그 나이에 어울리는 옷을 입으며 자랐다. 그래서 어린 나이부터 묵직한 가방을 메고 학원 뺑뺑이를 다니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지금 큰애는 강남엄마들이 제일 기피하는 - 얼마 전 송파 헬리오시티 사건으로 논란이 되었던 - 혁신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아이가 학교에 입학할 당시 이 학교는 일반 학교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혁신초등학교로 전환이 되었다. 학부모들은 우려와 불신의 눈초리를 보냈다. 솔직히 나도 불안한 마음이 들긴 했다. 새로운 시도는 혁신과 발전을 이끌기도 하지만, 수많은 부작용을 이끌기도 하니까.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현 교육 실험의 마루타가 되게 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2년을 겪어보니 혁신초도 분명히 장점이 있다. 특히, 작년 담임 선생님이 아주 열의가 있는 분이었는데 한해동안 토론, 독서 수업 등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지도했다.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수업설계는 혁신초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전형적인 수업방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새로운 시도는 동시에 우려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아이를 키우다보면 교육에 대한 부모의 걱정은

더욱 커지기도 한다.

내 아이가 뒤떨어지지 않을까하는 조바심이다.

특히, 이곳 강남에서, 고비는 종종 찾아온다.






첫 번째 고비는 영유였다. 큰애가 다섯 살이 되자 엄마들 사이에서 영유 바람이 불었는데, 절반은 영유로 이동했고, 절반은 유치원에 남았다. 일반 유치원에 남은 절반의 아이들도 부지런히 영어 학원에 다녔다. 어떤 아이는 영어 학원 높은 레벨을 받기 위해 겨울 방학 동안 원어민 과외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아이를 별도로 영어학원에 보내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알파벳을 처음 배운 나도 영어를 좋아했기에 공부 시기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믿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니 주변에 영어학원에 다니지 않는 아이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느지막이 영어 학원을 알아보았지만, 아이가 들어갈 수 있는 영어 학원은 정해져 있었다. 대치동의 유명한 영어 학원의 문턱은 영유 출신의 높은 레벨의 아이들에게만 허용되었다. 어린 나이부터 올라가지 못할 문턱이 정해져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출발선이 다른 느낌이었다.     



얼마 전에도 고비가 있었다. 학부모 사이에서 논술 과외 때문에 난리가 난 적이 있었는데, 3학년 진급을 앞두고 어느 유명한 논술 과외 선생님의 과외 팀에 들어가기 위해 엄마들 사이에서 피 튀기는 싸움이 한바탕 일어났다. 물론 정보력이 바닥 수준인 나는 팀 구성이 끝날 무렵 그 소식을 가까스로 전해 들었는데, 엄마의 조바심만으로 거대한 행렬에 편승해 아이를 구겨 넣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어 결국 거절하고 말았다. 거절과 동시에 마음이 가느다랗게 흔들렸다. 3학년의 전체 학생 수가 약 80명 가까이 되는데,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같은 선생님에게 과외를 받는다는 사실을 듣고는 황당하면서도 이상한 불안함을 느꼈다. 혹여나 내 아이가 뒤처지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었다.



오랜시간 남편과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결론은 언제나 같았다.      

미안하지만, 아이들에게 다 시켜줄 수는 없어.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여기엔 현실적인, 금전적인 이유가 크다. 지금 큰애는 수학, 영어학원에 다니는데 아이에게 매달 적지 않은 사교육비가 들어간다. 올해 네 살이 된 세쌍둥이도 조금 더 크면 교육에 대한 지출이 생길 텐데 아이들에 대한 교육비를 다 감당할 수 있을지 사실 걱정되기도 한다. 그리고 강남이라는 이 유난스런 지역에서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소신있게 아이들을 키울 수 있을지 때로는 자신이 서지 않을 때도 있다.






최근 종영된 스카이 캐슬은 한국 사회의 교육 문제를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서울 의대에 가기위해 고액 코디네이터를 붙여 혹독하게 공부를 시키는가 하면, 우리 사회를 피라미드라고 설명하며 상위 1%의 삶을 강조하기도 한다. 드라마를 보면서 씁쓸한 우리 사회의 단상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사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적나라한 얼굴이기도 하다. 백여 년 전 한국 사회에서 사라진 신분 계급은 돈이라는 매개를 주축으로 새로운 신분 계급을 만들었다. 돈이 많은 부자는 자신의 직원을 소나 개 부리듯이 막 대하기도 하고 서슴없이 욕설을 뱉거나 손찌검을 한다. 몇년 전 방송되었던 이국종 교수의 세바시 강연에서 그는 외상센터 환자의 대부분이 노동자로 소위 말해 빽도 돈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사회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한 신분 계급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신분 계급은, 가난하다는 이유로, 사람으로서의 평등한 권리와 기본적인 자유마저 박탈하고 있다.      



결국 부모들은 자신의 가난을 되물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내가 겪은 불평등을 내 자식이 겪지 않았으면 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부모는 자연스럽게 교육열을 올리게 되고 공교육을 불신하고 사교육을 전쟁하듯 경쟁시킨다. 그리고 아이들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경쟁사회 안에서 경쟁하는 법, 살아남는 법, 성공하는 법을 체득한다.    


 

헬조선이라는 단어에는 ‘한국이 지옥에 가깝고 전혀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높은 실업률, 불공정한 사회, 양극화 현상 등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수많은 과제들이 남아있다. 그래서 모두가 평등하고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라는 표현은, 어느 이상주의자의 현실 물정 모르는 실없는 발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언젠가는, 우리 아이들이 성장해서 이끌 수십 년 후의 대한민국의 모습은, 바로 이런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국민이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이 사회의 시스템 안에서 안전을 느끼며,

서로 존중받고 평등한 사회,

피라미드의 상단으로 올라가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각자의 생김새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도,

어색하거나 불안하지 않은 사회,

내 아이들에게는 이런 사회를 물려주고 싶다.     



피라미드는 중간에 무게중심이 다. 가장 안정되고 평안한 자리는 피라미드의 꼭대기가 아니라 피라미드의 중간일 것이다. 피라미드의 중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행복을 찾고, 적성을 찾고, 삶의 의미를 찾고, 무엇보다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긍심을 찾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자신만의 본연의 색깔대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들 넷 성교육을 대하는 엄마의 자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