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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넷맘 Mar 03. 2019

이케아, 패배감, 그리고.

소박한 희망사항은 좋지만 그보다 더한 열등감은 내려놓고 싶다.


정확히 70평이라 했다. 어느 지방 도시에 위치한 아주버니의 신혼집이,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는 어느 부부의 보금자리가, 바로 70평이라 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실 나는 적지 않게 당황이 되었다. 평생 엄마, 아빠, 언니, 동생과 함께 살았던 친정집도 30평대 중반을 넘어선 적이 없었기에, 신혼부부의 첫 보금자리에 70평은 과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우리 부부의 첫 시작은 단출했다. 십이 평대의 작은 빌라였던 전셋집은 일억 중반대의 가격이었는데, 사회초년생인 나와 남편의 저축액으로 이 금액을 메우기 버거워 결국 대출을 얻어 그 비용을 겨우 충당했던 기억이 있다. 기차에서 만난 남자와 2개월만의 임신, 갑작스러운 결혼이었기에 당시 나는 집에 대한 욕심조차 없었다. 오히려 서울 시내에 우리의 작은 보금자리가 생긴 것에 소소한 행복감을 느꼈다. 




세간살이도 최소한으로 준비했다. 아현동 가구거리에 위치한 어느 매장에서 저렴한 가격에 가구를 주문했고, 가전제품도 당장 필요한 것만 구매했다. 별로 덥지 않다며 에어컨조차 사지 않고 선풍기로 한 여름을 보내기도 했으니 본의 아니게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했던 셈이다.     




2년 마다 메뚜기 생활을 반복했다. 

이사, 이사, 이사. 내 집인 듯 내 집이 아닌 이 생활도 벌써 십년이 되어간다. 물론 세간살이에도 변화는 없다. 십년 전 아현동 가구거리에서 구매했던 쇼파는 여기저기 찢어져 낡아버렸고, 하이마트에서 구매했던 분홍색 꽃 프린트가 촌스러워 보이는 냉장고는 이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아이들이 많아지니 집안은 거대한 놀이터의 모양새가 되었다. 알록달록 매트가 바닥 전체에 깔려있고, 커다란 미끄럼틀 옆에는 자질구레한 장난감과 책장에는 여기저기 찢겨진 온전하지 못한 모양의 책들이 무질서한 모양으로 겹겹이 쌓여있다. 거실의 삼분의 이는 커다란 침대가 차지하고 있다. 세쌍둥이가 어느 곳에서나 잠을 잘 자게 되면서 아이들과 나는 최근 몇 개월 전 부터 거실에서 함께 잠을 자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의 이불과 베개, 장난감들이 뒤엉켜 집안은 정말 못 봐줄 꼴로 변하기도 한다. 한때 나에게도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가득한 북유럽 감성의 심플하지만 모던한 느낌의 그런 집에서 살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나의 이상은 언제나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어디쯤에 머물러있지만 현실은 어질러진 낡은 집의 모습이다.   





  

아주버니의 신혼집은 예상보다도 훨씬 멋졌다. 솔직히 나는 살면서 그런 집을 처음으로 보았다. 70평대의 아파트에는 마치 축구장을 연상하게 하는 커다란 거실, 방 네 개, 다다미로 분리된 아이들의 놀이방, 해리포터에 나올법한 거대한 일자 식탁, 카페처럼 꾸며진 부부만의 티타임 공간, 서재, 월풀 욕조 등이 있었다. 부부가 단둘이 사는 집임에도 불구하고 손님방을 따로 만들어 각 방에 침대를 들여 놓았다. 거대한 모델 하우스 같았다.   


  

“네 형수가 혼수 준비에 꽤 신경을 쓴 것 같더라.”            



남편으로부터 시어머니의 말을 전해 들으며 이상한 죄책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불현 듯 시어머니가 처음 우리의 신혼집에 들어섰던 그날이 스쳤다. 아무 말도 없이 좁은 신혼집 내부를 찬찬히 둘러보시던 그 모습이 떠올랐다. 정적은 곧 불만을 의미했다. 고요한 정적은 곧 내게도 경직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날 시어머니가 내게 직접적인 불만을 표시하지는 않았지만, 남편에게는 무언가 이야기한 것 같았다. 2년 후 다른 집으로 이사할 때 에어컨을 사게 되었는데 남편이 시어머니에게 친정에서 선물로 주었다고,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는 말을 듣고는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어린 나이에 결혼했던 나는 혼수에 대한 개념도 없었다. 예물, 예단에 대한 허례허식보다 조금이라도 더 줄여서 알뜰하게 시작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했다. 신혼부터 번듯한 집에서 시작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신혼은 신혼만이 가지고 있는 소박한 감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조그마한 집에서 집을 아주 조금씩 키워나가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재미가 아닐까 자위한 적도 있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것은 개인의 합리성보다 집안의 문화, 관습, 사고를 받아들이고 절충하는 보다 현실적인 과정이었다.     



“여보, 여기 봐. 형네 서재가 딱 우리집만하다.”



서재에 들어선 남편이 바보같은 미소를 장착하고 한 마디를 건넸다. 씁쓸한 미소가 입가 전체로 번졌다. 나의 씁쓸한 표정을 눈치 챈 시어머니가 남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동서, 글쎄. 나는 큰 집이 싫어. 청소하기가 얼마나 힘든데. 이 집 청소하려면 정말이지, 장난 아니야.”

“그렇겠네요. 정말 힘드시겠어요.”



당시 고작 십여 평의 빌라에서 살고 있었던 나는 애써 웃으며 형님을 위로했다. 누가 누구를 위로해야 하는 상황일까. 그렇다고 굳이 허름하고 작은 집에 살고 있다고 위로받고 싶지는 않지만, 이상하게 상대적인 박탈감이 느껴졌다.      







“여보! 지금 형네가 우리 집에 잠깐 들린대.”


어제는 시어머니 생신 겸 가족이 모여 함께 저녁을 먹었다. 하룻밤을 집 근처 시댁에서 보낸 형님네가 오늘 집으로 돌아가기 전 갑자기 우리 집에 들른다는 이야기였다. 형님네 아이들이 우리 집을 보고 싶어 한다는 이유였다.      


“그냥 이 근방 키즈 카페에 가서 같이 놀자고 하자.” 


온다는 아이들을 내치기가 힘들어 남편에게 우회적인 방법을 권유했다. 그러나 우리 집을 잠시 구경하고 놀고 싶다는 이야기만 이어졌다. 씻지 못한 남루한 행색, 아수라장인 집안 꼴, 벽에는 아이들의 낙서가 가득하고 거실은 이불과 장난감이 엉킨 채 발 디딜 틈조차 없다. 결국 나는 남편에게 다음에 집이 정리되었을 때 오게 해달라고 다시 이야기해보았다.      


“남도 아니고 가족인데, 잠깐 집에 오는 게 도대체 왜 싫은 거야?”


도저히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의 남편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작은 틈조차 없는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감정적인 말은 또 다른 감정적인 말을 불러일으킨다. 나도 모르게 남편에게 소리를 지른다.


“내가 싫다고! 그거 이야기하는 게 그렇게 힘들어? 그냥 다음에 오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는 거잖아!”     


결국 남편이 아이들 핑계를 대며 오늘은 힘들겠다고 전화한다. 그러나 여전히 나에게는 이해되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에게는 나를 이해하려는 작은 마음의 틈조차 없는 것일까. 물론 나에게도 그의 가족을 좀 더 유연한 모습으로 마주하려는 작은 틈조차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부부싸움은 언제나 팽팽해진 고무줄처럼 서로를 당긴 채 시작되고,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다시 본연의 모습 그대로 줄어든다. 화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노트북을 들고 글을 쓰러 무작정 밖으로 나온다.     






아수라장 같은 집을 떠나 내게는 어색할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예쁜 커피숍에 앉아 가슴 속에 수북이 쌓인 감정들은 천천히 꺼내본다. 무언가에, 누군가에 휘둘리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가 나보다 잘 살든, 좋은 집에 살든, 부유하든, 유명하든, 그것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었다. 나에게 집중하며 오롯이 나를 이해하며 살고 싶었다. 그러나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일 뿐이었다. 누군가 나보다 잘나면 그것을 의식하고 촌스러운 패배감에 둘러싸여 스스로를 힘들게 했다. 




그랬다. 나는 촌스러운 패배감을 느끼고 있었다. 형님네에 있는 실버 색상의 양문형 냉장고를 갖고 싶었고, 은은한 촛대장식이 놓인 커다란 식탁을 바라보며 언젠가 이런 식탁을 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가끔 이케아에 가면 북유럽 감성 가득한 모던한 가구들을 보면서 언젠가, 언젠가, 언젠가,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미래의 언젠가를 그리며 끊임없이 상상했다. 언젠가는 이런 예쁜 집에서 살고 싶다고.      




어쩌면 모델하우스처럼 번듯한 집은 내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모델하우스처럼 예쁜 집에 살면 이내 곧 그보다 더 좋은 걸 열망하게 될 것이다. 소유는 언제나 더 큰 소유를 원하기 마련이니까. 그렇기에 소박한 희망사항은 좋지만 그보다 더한 열등감은 내려놓고 싶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은 지금 내가 평안을 찾는 가장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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