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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넷맘 Mar 06. 2019

파란 하늘을 본 적 있니? 아주 조금이요.

우리 아이에게 하늘은 무슨 색으로 기억될까.

삼한사미.

'3일은 추위, 4일은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린다'는 뜻으로 최근 몇 년 간 심각해진 미세먼지 때문에 생겨난 신조어이다. 그런데 이번 겨울은 이 공식마저 유효하지 않아 보인다. 매일 매일 지독한 미세먼지 때문에 외출마저 꺼려지는 상황이다. 한창 뛰어놀 아이들이지만 최근 나들이를 나간 기억이 드물다. 주말이면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서 밖에 나가자고 졸라대는 아이들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밖에 나서도 결국 향할 수 있는 곳은 키즈카페뿐이다.      


어느 순간부터 바깥 놀이터는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고요해졌다. 아이들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흙을 만지고, 냄새 맡고, 느낄 기회보다는 키즈 카페에 있는 인공 모래와 장난감, 그리고 현란한 조명과 유투브 동영상에 익숙하다. 가끔 미세먼지가 심하지 않은 날, 아이에게 바깥 놀이터에서 놀라고 이야기해도 아이는 집 앞에 바로 놀이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깔끔한 키즈카페에 가자고 조른다.      



요즘 아이들은 깔끔하고, 다양한 놀잇감이 있는, 그리고 언제든지 물과 음료를 마실 수 있는 키즈카페를 선호한다. 결핍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이다. 만 원대의 가격에 무제한으로 맛있는 음식과 디저트까지 먹을 수 있는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 익숙하고, 원하는 애니메이션 동영상도 언제 어디서나 단 한 번의 클릭만으로 바로 볼 수 있다. 삶의 편의성은 아날로그가 주는 기다림의 미학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기다림보다, 역동적이고 즉각적인 정보에 환호한다. 아이들의 이런 익숙함이 이끌 몇 십 년 이후의 세상이 가끔은 무서워지기도 한다.   


  

아이들이 자연과 친숙해질 기회도 많지 않다. 더욱이 최근 몇 년간 미세먼지가 심각해지면서 부모들은 자연스럽게 실내 체험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졸졸졸 물이 흐르는 시냇가에 발이 움푹 파지도록 바짓단을 접고 들어가 소금쟁이를 잡는 게 아니라, 어린이 과학관에 전시되어 있는 소금쟁이 표본을 바라보며 소금쟁이라는 곤충을 이해한다. 흙을 만지고 느끼고 냄새 맡을 기회보다 인공 흙으로 그 느낌을 유추하고, 색소가 들어간 흙으로 만들기 놀이를 할 기회가 더 많은 세대이다.     



불현 듯 산과 들에 나가 곤충채집을 했던 나의 유년이 떠오른다. 문방구에서 오백 원을 주고 샀던 곤충 채집망과 채집통을 각각 양손에 쥐고, 사마귀, 잠자리, 나비, 매미 등 다양한 곤충을 담아 곤충 표본을 만들기도 했었다. 어릴 적,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은 방학이면 나와 동생을 시골 할머니 댁으로 보냈는데, 나는 할머니 댁에서 마치 시골아이처럼 자랐다. 이른 아침 내복을 입은 채로 닭장으로 뛰어가 따뜻한 달걀을 내복에 한가득 담아오기도 했고, 어미 닭이 보는 앞에서 달걀을 콕콕 이빨로 깨서 생 계란을 쭈욱 들이키기도 했다. 집 앞 냇가에서 고동을 잡거나, 개구리를 잡기도 했고, 개구리를 꼬치에 꽂아 아궁이에 구워먹기도 했다. 비료포대 껍데기를 주우면 그날은 운이 좋은 날이었다. 비료포대 껍데기에 엉덩이만 간신히 걸친 채 무덤가에 올라가 썰매를 신나게 탔으니까. 만화를 볼 수 없어도 지루함을 느낄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집 앞에 있는 냇가와 산과 들이 바로 거대한 자연 놀이터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마스크를 씌우고 아이들을 학교/어린이집으로 보낸다. 뿌옇게 하늘을 뒤덮은 미세먼지 때문에 대낮임에도 을씨년스러운 기분이 든다. 아주 오래 전, 출장차 들렸던 상하이의 모습도 이러했다. 뿌연 스모그가 도시를 온통 뒤덮고 있었고 사람들이 너도나도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불과 몇 년 만에 내가 사는 이곳의 모습이 이렇게 변할 것이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처참하게 변해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모습으로.  


   

최근 몇 년 간 심각해진 미세먼지의 원인에 대해 우리는 쉽게 중국 발 미세먼지의 영향을 떠올린다. 그러나 작년 말, 중국 생태환경부 대변인 류여우빈은 너무나도 단호한 태도로 “서울 미세먼지는 서울 탓이지 중국 탓을 하지 말라.”라고 이야기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실제로 중국의 미세먼지는 최근 몇 년 동안 개선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 동부에 몰려있는 공장지대, 중국 동부의 쓰레기 소각장 증가 등은 국내 미세먼지 원인에 여전히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인터넷에서 확인할 수 있는 구글맵의 미세먼지 현황 지도를 보면 중국 동부를 중심으로 형성된 주황색의 미세먼지 띠가 한반도까지 걸쳐있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거대한 주황색 띠가 우리나라에서 시작되어 중국 대륙으로 퍼져나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최근에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정체된 대기의 영향도 미세먼지 증가에 한몫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유가 어떻든 간에 항상 아쉬운 건 정부의 대응이다.



몇 년 전 미세먼지에 대한 심각성이 대두되었을 때 정부는 미세먼지의 원인으로 고등어와 삼겹살, 경유차를 지목했었던 웃픈 기억이 있다. 현재는 차량 2부제나 비상저감 조치 등 여러 가지 정책들을 펼치고 있지만 외교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여전히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형성된 중국과 우리나라의 관계 때문에 정부의 적극적인 외교 노력은 앞으로도 쉽지 않을 거라 생각되지만, 미세먼지는 국민의 생존이 걸린 중대한 사안이기에 현 상태를 유지하는 소극적인 정책이 아닌,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되어야 할 것이.    


  

얼마 전, 중국 CCTV에서 만든 <Under the dome>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기자는 '언더 더 돔'이라는 미국 영화를 보고 거대한 돔 안에 갇힌 마을의 모습이, 스모그에 갇힌 채 집에서 나올 수 없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어 프로그램명을 영화 제목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우리의 미래가 곧 이렇게 변할 수도 있으리라는 끔찍한 상상이 되었다. 심각한 공기오염으로 암 환자가 증가하고, 자연은 복구할 수 없는 정도로 훼손되며, 가시거리조차 확보되지 않을 정도로 뿌연 스모그 때문에 교통 대란이 발생하고 사람들은 길거리를 걸을 수도 없다. 이것은 상상이 아니라 불과 몇 년 전 중국에서 발생된 사실이었다.



환경규제를 외치는 선진국과 발전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개발도상국, 더 발전하기를 원하는 개발도상국의 입장도 이해는 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환경오염이 이미 심각한 수준으로 도래했고 한번 훼손된 지구는 그 보다 수백 배의 노력이 가해져도 돌이키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미세먼지, 폐플라스틱 바다 오염, 쓰레기 문제 등에 대한 기사를 접할 때마다 이상한 죄책감에 가슴 한편이 묵직해져 온다.     





마지막으로 다큐멘터리 중간에 어린 아이를 인터뷰하는 장면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무리 하고 싶다.


파란하늘을 본 적 있니?

아주 조금이요.     


과연 우리 아이에게 하늘은 무슨 색으로 기억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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