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넷맘 Apr 07. 2019

어쩌다 아들 넷 엄마

인생은 모순 덩어리. 그게 인생 아닐까.


휴우. 한숨이 절로 나왔다. 검정색 스타렉스에서 우르르 내리는 아이들을 보자 자연스럽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놀란 두 눈이 점점 커졌다. 하나, 둘, 셋, 넷. 차에서 내리는 아이들의 숫자를 눈으로 셌다. 동시에 아이들과 함께 내리는 친구를 향해 강렬한 눈빛을 발사했다. 뭐야. 지금 이 상황은. 친구의 표정도 좋지 않다. 놀란 내 얼굴을 보자마자 친구는 고개를 푹 숙였다. 내 기억에 오류가 없다면 오늘 멤버에 적어도 이 아이들은 계획에 없는 것이었다. 대학교 방학을 맞이해 처음으로 온 스키장인데. 맥이 탁 풀렸다.



“미안해. 일이 이렇게 되었어.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어. 그래도 제법 큰애들이고 스키를 잘 타는 애들이라 지들끼리 잘 놀 거야. 우리가 신경 쓸 건 없다니까.”  



겨울방학을 맞은 친구의 사촌 동생들이라고 했다. 어리게는 4학년부터 6학년까지 섞여 있어 우리가 할 일은 아이들의 점심만 챙겨주면 된다는 것이었다. 제법 붙임성이 좋은 애들이었다. 처음 보는 나에게 이모라고 부르면서 엉겨 붙었다. 아이들의 재잘대는 소리와 귓속 깊숙이 파고드는 돌고래 같은 함성에 스키장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온몸의 진이 다 빠지는 것 같았다. 나에게 팔짱을 낀 분홍색 스키복을 입은 아이의 손을 슬며시 놓았다. 아직 나는 이 아이의 손을 잡아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지금이 아홉시잖아. 저 시계탑 보이지? 우리는 열두 시에 모이는 거다. 그때까지 자유 시간!”



자유시간이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아이들은 그저 해맑게 함박웃음을 지으며 까르르 웃었다. 지금이야. 바로 지금. 웃으면서 친구에게 강렬한 눈빛을 보냈다. 친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럼 이따 보자. 그제야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이는 듯 했다.



그러나 스키장의 규모가 작은 게 문제였다. 그보다 더 문제가 있다면 우리의 비루한 보드 실력이나 아이들의 스키 실력이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초급 코스를 이용했다. 그랬기에 리프트를 타고 정상으로 올라가 그곳에서부터 내려오기까지 우리의 이동경로는 아이들의 이동경로와 똑같았다. 고글을 쓰고 아이들을 모른 척도 해보았다. 아이들을 겨우 따돌렸다고 생각하며 정상에 올라갔다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소리에 지레 질겁하고 서둘러 내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 아이들을 계속 모른척할 정도로 모질지도 못했다. 그렇게 나는 하루 종일 아이들의 보모가 되어야 했다. 대학시절, 최악의 기억이었다.     






“세쌍둥이라고요?”



하나도 둘도 아닌 셋이라니.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럼 내가 네 아이의 엄마가 되는 것인가. 두려움이 밀려왔다. 삶이란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첫애를 낳고 회사에서 인정받기 위해 얼마나 악착같이 일했던가. 이 자리를 얼마나 힘들게 지켜왔던가. 이제야 일도, 첫애 육아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기다니 두려웠다. 의사는 선택유산을 권유했다. 아이와 엄마에게 선택유산만이 최선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고민을 거듭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결론은 정해져있는 것 같았다. 나라는 사람은 어떤 아이를 선택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 결국 아이들을 낳기로 했다.



한 아이의 엄마였던 삶과 아들 넷의 엄마가 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삶이었다. 기차에서 만난 한 남자와 두 달만의 연애에 갑작스럽게 한 아이를 임신하고, 이제 갓 입사한 회사의 신입사원으로서 엄마가 되어야 했을 때, 스물일곱의 나는 온 세계가 무너져 내린 것 같은 막막함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끊어질 듯 아슬아슬해 보이는 동아줄을 잡고 버티는 것처럼 불안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은 있다고 믿었다. 남들보다 더욱 열심히 일했고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세쌍둥이가 찾아왔을 때, 아들 넷 엄마가 되어야 했을 때, 철옹성이라 믿었던 회사가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되어야 했을 때, 나는 막막함이라는 단어로 형용할 수조차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세계 속에 갇혀버린 것처럼 힘겨웠다. 이제 더 이상 내 이름으로 살 수 없을 것 같은 기분, 아들 넷의 엄마가 된다는 것은 그동안 힘겹게 잡고 있었던 동아줄을 누군가 잔인하게 잘라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잘려진 동아줄을 놓지 못한 채 바닥으로 추락했다. 힘겹게 그 자리에 섰다. 아직 내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아들 넷의 엄마가 되어서도 꿈을 가지고 내 이름을 보존하기 위해 사투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철없고 이기적인 엄마처럼 비치기도 했다. 다들 아들 넷 엄마로서 꿈을 갖는 건 욕심이라고 했다. 모두 다 정답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어린 아이들에게 누구보다 엄마가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과 아이들을 키울 사람도 오로지 엄마, 단 한 사람뿐이라는 사실은 벗어나고 싶지만 절대 벗어날 수 없는 당장의 현실이었다. 엄마라는 단어의 무게가 이렇게 잔인한 것인지 무서웠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게였다. 나는 누구보다 나를 사랑했던 사람이었으니까. 나라는 존재를 지워버리고 오로지 엄마로서 행동하고, 사고하고, 살아가야만 하는 삶 속에서, 내가 영영 없어질 까봐 두려웠다.



예상대로 아들 넷의 엄마가 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임신부터 출산, 그리고 바로 이어진 혹독한 육아는 매순간 삶의 극한을 느끼게 할 정도로 처절했다. 수면교육, 이유식, 수유. 작은 것 하나 쉽게 넘어가지를 않았다. 나의 마음가짐은 비장할 수밖에 없었다. 첫애를 키웠던 불안하고, 미숙하고, 물렁했던 태도로 아들 넷의 엄마가 될 수는 없었다. 아들 넷 육아를 마치 전투처럼 치렀다. 세쌍둥이가 생후 138일이 되었던 날부터 독박육아를 시작했고 어린 아이들에게 독하게 수면교육을 시켰다. 아이는 절대 울리면 안 돼. 누군가는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너무 혹독한 것이 아니냐는 시선을 던지기도 했다. 나조차도 첫애를 키웠을 때는 작은 행동 하나에 벌벌 떨면서 아이의 모든 울음에 대응해주었고, 아이를 재울 때도 손목이 나갈 때까지 무조건 안아주기도 했었다. 그게 아이와의 안정된 애착을 형성하는 길이라 생각한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세쌍둥이 육아는 전투였고 생존이었다. 나는 노련해야만 했다. 노련해지기 위해서는 육아에 대한 지식도 풍부해야 했고, 무엇보다 자기 확신이 있어야 했다. 육아서를 밥 먹듯이 보았고 아이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면서 나만의 육아방식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우는 아이들을 보면서 가슴이 무너지는 것처럼 괴로운 순간도 많았다. 내가 가는 길이 맞는 지 흔들리기도 했다. 흔들릴 때마다 마음을 다잡았다. 누가 뭐라 해도 이 아이들의 엄마는 나였다. 내가 흔들리면 아이들도 흔들릴 거라 생각했다. 고맙게도 아이들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잘 따라와 주었다. 나는 엄마로서의 확고한 중심을 만들고 그것을 토대로 아이들을 양육했다. 십년 전 첫애를 불안하게 육아했던, 아이가 울면 어쩔 줄 몰라 따라 울었던 울보 엄마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아들 넷을 키우는 육아의 시간은 아이를 키우는 것 이상으로, 나 자신을 성숙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하나, 둘, 셋, 넷. 눈동자로 아이들을 세며 미간을 찌푸렸던 십여 년 전의 철없던 학생은 아들 넷의 엄마가 되었다. 자기밖에 몰랐던 사람이 아들 넷의 엄마가 되다니, 삶이라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을 키우는 시간은 아주 어려운 인생 수업처럼 삶에 녹아들어 내 인생에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표면의 나무가 조금씩 문질러지고 매끈해지며 멋진 조형물로 재탄생하는 것처럼 나는 그렇게 아이들을 통해 삶을 조금씩 배워나가고 있다. 아이들을 키우며 부족했던 과거를 떠올리고 현재의 나를 바라보기도 한다. 아이들의 얼굴에서 안쓰러운 유년의 내가 보이기도 하고, 잊고 있었던 엄마의 사랑이 가슴을 시리게 만들기도 한다.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 힘겨운 누군가에게 손을 뻗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엄마가 되는 시간은 감정에 끝과 끝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하고, 사랑, 환희, 질투, 좌절, 시련, 행복, 즐거움, 가치 등 그동안 추상적으로만 느껴졌던 단어들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한다. 그렇게 나는 어제보다, 오늘 더, 오늘보다 내일 더, 세상을 폭넓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해하고, 느끼고 있다. 엄마가 아니었다면 절대 깨닫지 못했을.      



철부지 대학생이 아들 넷 엄마로. 인생은 모순 덩어리.

그게 인생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부부는 무성(無性)이 아닙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