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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넷맘 May 02. 2019

책쓰기 클래스, 꼭 필요할까요?

작가가 되고나니 분명한 가치가 보인다. 그것은 기본이라는 가치였다.



바로 이거다! 

정확히 55만원이었다. 수 백 만원을 호가하는 책 쓰기 클래스 시장에서 이 정도는 매우 저렴한 강의에 속했다. 놓칠 수가 없었다.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나의 동공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책에 대한 컨셉을 정하고 서점에 수시로 들락거리며 목차를 만들었다. 이제 초고쓰기만 시작하면 되었다. 커다란 선박은 항해를 앞두고 있었다. 양손에 단단히 방향키를 잡고 돛을 내리고 출항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득 이 방향이 맞는지 누군가에게 묻고 싶어졌다. 초행길에 대한 불안함이었다.



책 쓰기 클래스를 찾아보기로 했다. 책 쓰기 클래스를 검색하니 수많은 클래스가 검색되었다. 대부분이 수 백 만원에 이르는 고가 강의였다. 책 쓰기에 대한 꿈은 간절했지만 강의를 듣는데 이렇게나 많은 돈을 쓸 투자할 금전적 여유는 없었다. 퇴직금의 대부분은 대출 빚을 갚는데 충당되었고 남편의 월급으로 여섯 식구의 생활비, 카드 값, 대출 이자, 정기적금 등이 빠져나가고 나면 통장에는 남는 것이 없었다. 통장의 잔고는 언제나 스치듯 안녕이었다. 남편이 송금해주는 생활비가 통장으로 입금되는 순간 하이에나들이 무섭게 몰려들었고 순식간에 살코기는 사라지고 앙상한 뼈다귀만 그곳에 남았다.     



퇴직금이 입금되기 전 나는 적어도 퇴직금의 일부를 나에게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무언가 다시 공부를 시작하든, 무언가를 배우게 되든, 퇴직금의 일부는 오롯이 나에게, 아직 남아있을 -남아있다고 믿고 싶었던- 나의 미래에 투자하고 싶었다. 남편도 나의 말에 동의를 했다.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언제든 그렇게 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의 퇴직금이 대출금을 갚는데 순식간에 저 대기 중으로 사라져버리고 나니 남편에게 떳떳하게 요구할 수 있을 것 같던 나의 의지도 감쪽같이 사그라져 버렸다. 수 백 만원에 이르는 책 쓰기 클래스는 그림의 떡이었다. 대신 조금 더 저렴한 클래스가 있을지 계속 찾아보았다. 그러던 중 A라는 책 쓰기 클래스를 만났다.



A책쓰기 클래스는 저렴한 가격이었다. 수업을 시작한지 겨우 몇 년 남짓 된 곳이었는데 그동안 배출한 신인 작가가 수 백 명에 이르렀다. 강의에는 오프라인 수업과 온라인 컨설팅이 포함되었다. 이 금액도 사실 나에게는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55만원이라는 금액은 나에게 있어 몇 번이나 고민을 거듭해야 하는 금액이자, 결국 수업을 듣기로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도 남편에게 또다시 결제를 받아야하는 그런 금액이었다. 소심하게 몇 번의 말할 기회를 틈 타 겨우 남편에게 개미 목소리를 내뱉었다. 잠시 비참함을 느꼈지만 그래도 무언가 다시 배우고 싶은 것을 강렬하게 찾았다는 것에 더 설레었던 밤이었다.


     




A는 적어도 상업적인 곳은 아닌 것 같았다. 사실 수 백 만원을 호가하는 책 쓰기 클래스 중 일부는 마치 다단계 조직을 연상시키는 상업적인 단체 같이 보였다. 피라미드의 가장 상단에 있는 조직의 수장 아래는 그를 돕는 몇몇 코치가 있었고, 그 아래는 수장을 맹신하는 추종자들이 있었다.


“의심하는 자는 떠나라. 나만 믿으면 얼마 안에 고수입을 얻을 수 있다. 나만 따르면 몇 개월 안에 차 키를 몇 개 가질 수 있다.”


수 백 만원을 호가하는 클래스였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조직에 들어가지 못해 안달이었다. 그곳의 수장은 유명한 작가로 출판계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다. 또한 그곳 출신 작가들은 여러 미디어, 기관에서 활발한 강연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강렬한 꽃향기가 났다. 그러나 그 향기를 맡고 있으면 그것에 취해 내가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그곳은 책을 만드는 하나의 거대한 공장 같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의 냄새는 그곳의 인위적인 향기에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우리는 다른 클래스에서는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인 투고용 출판사 리스트까지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투고용 출판사 리스트를 심지어 십여 만원에 예비 작가에게 판매하고 있었다. 얼마나 차별적인 정보를 가진 리스트길래 엑셀 리스트 하나에 십여 만원씩 받는 걸까. 예비 작가들의 얇은 주머니를 긁어내어 모은 수십억 연봉으로 그곳의 수장은 얼마 만큼의 진심으로 그들을 대하고 있는 걸까. 내 주머니에서는 당장 수 백 만원이 나올 구멍도 없었지만 그런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지 않았다. A는 그러던 와중 우연히 찾은 곳이었다.





A의 수장은 언제나 진심을 강조했고 저렴한 강의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글 쓰는 삶을 살기를 바랐다. 그는 글쓰기에 간절한 사람이 있다면 언제나 그곳으로 달려가겠다고 단언했고 실제로 나의 간절한 메일 한 통 때문에 예정에 없던 주중 클래스를 개설해주기도 했다. 저렴한 가격에, 진심까지. 정말 잘 만났다 싶었다.     



그의 동기부여 강의는 확실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통해 책을 왜 써야하는지, 책을 쓰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등을 수강생들에게 전달했다. 입담도 화려했고 유머도 있어서 적절하게 재밌고 지루하지 않은 강의였다. 그러나 그의 강의는 동기부여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예비저자에게 하루하루 글을 써야하는 원동력을 제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책 쓰기 클래스에서 내가 정작 바랐던 건 Why가 아니라 How였다. 그가 책 쓰기 방법이라고 이야기해준 건 한 꼭지에 대한 분량과 꼭지를 구성하는 요소 정도였다. 하지만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이것 외에도 수강생 한 명 한 명에게 책의 제목과 목차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자신이 도대체 무슨 책을 써야할지 감이 오지 않는 이에게 제목과 목차를 만들어주는 것은 도움이 될 수는 있겠다. 그러나 나는 그의 수업을 듣기 전 책의 제목과 목차를 이미 만들어 둔 상태였다.



A클래스를 들으며 하루에 한 꼭지 씩 치열하게 글을 써서 한 달 여 만에 초고가 완성되었다. 그에게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완성된 한 꼭지의 글을 전송했지만 글에 대한 피드백은 없었다. 초고쓰기를 마치고 투고를 진행하기 전까지 하루하루 나는 그의 최종 피드백을 기다렸지만 그는 2주동안 나에게 아무 답변도 지 않았다. 초고는 완성되어 투고를 앞두고도 한참의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까지 내 글이 어떻다는 피드백은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다. 그는 그저 기다리라는 대답만 하였다.



나는 그의 연락을 기다리면서 스스로 출간 기획서를 작성하고 출판사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강의를 처음 들었던 날부터 조금씩 피어났던 이 강의에 대한 의문은 더 이상 기다림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하고 말았다. A는 내가 원했던 책 쓰기 클래스는 아니었다는 확신과 함께.



“작가님, 전국적으로 강의도 하시고 책도 쓰시고 컬럼도 쓰셔서 바쁘신 건 알겠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피드백이 제공되기까지 얼마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수강생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게 좋지 않을까요? 수강생에게도 하루하루는 간절하고 소중한 시간입니다. 무작정 기다리게 하는 것 보다는 앞으로 A의 발전을 위해서도 수강생들의 여러 가지 고충들을 들어보고 좀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변화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참지 못하고 토해낸 그와의 통화에서 그의 대답은 시원치 않았다. 그는 작가이자 강연가이고 적지만 나름의 추종자들을 거느린 수장이었다. 아마 그에게 일개 수강생의 도발은 가볍게 흘려보낼 수 있을 정도의 물살일 것이다. 그러나 그 후 받은 그의 메일에 나는 더욱 실망을 했다. 그는 자신의 투고용 기획서 및 메일 양식에 나의 글을 그대로 복사한 채 나에게 답장을 했다. 최종 피드백 안에도 나의 초고가 어떻다는 것에 대한 그의 의견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작가님! 축하드립니다! 샴페인 터뜨릴 준비만 하면 되겠네요!”



출판사와 계약을 앞두고 그가 나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였다. 아마 수 백 군데의 책 쓰기 클래스 중 내가 경험한 일부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수면 아래 깊은 곳 어딘가에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수강생에게 진심을 다하는 그런 강의가 있기를 바란다.






‘투고 대비 백 퍼센트 출간 계약률, 당신도 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작가의 문턱이 낮아지고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되면서 상업적인 책 쓰기 클래스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책 쓰기 클래스들은 출신 작가들을 대문짝만하게 광고하며 그곳의 성과를 자랑한다. 오늘날 우리는 인생 버킷리스트에 자신의 이름으로 책 출간하기 쯤은 적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초행길은 언제나 불안하기 마련이다. 나도 불안했던 수많은 예비 작가 중 하나였고 결국 불안함을 떨치지 못하고 이 길을 함께 걸어줄 동행자를 찾아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다.



그러나 작가가 되고나니 분명한 가치가 보인다.

그것은 기본, 기본이라는 가치였다.   

   


책 쓰기는 엄청난 인내심과 지구력을 요하는 작업이다. 사람들은 흔히 책 쓰기를 산고의 고통으로 비유하는데 그것은 그만큼 책 쓰기에 치열함과 꾸준함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매일 규칙적으로 20매 원고지 분량의 글을 쓰는 건 글쓰기에 수많은 수련의 시간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스타작가가 되어있는 상상은 꿈속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절실한 심정으로 눈 한 번 질끈 감고 적지 않은 비용을 투자해 책 쓰기 클래스로 향한다. 금수저, 흙수저, 개인의 능력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사회적 인식과 청춘의 불안감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장밋빛 미래만을 광고하는 상업적인 책 쓰기 클래스에 현혹시키고 있다. 그러나 다시 얘기하지만 책 쓰기는 요행을 바랄 수 없는 끈질긴 자신과의 엉덩이 싸움이다. 무엇을 써야할지, 어떻게 써야할지, 왜 써야할지는 자신의 외부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찾을 수 있는 것들이다. 불안함에 힐끔힐끔 밖을 내밀어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신 마음을 열어놓고 자신의 이야기들을 찬찬히 바라보며 그것을 꾸준히 글로 옮기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책 쓰기 클래스를 서성거리고 있는 누군가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한 마디이다.  


   

얼마 전 우연히 A책쓰기 클래스를 보니 그세 가격을 두배 이상 올렸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책쓰기 클래스에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불안할 것이다. 막막할 것이다. 그러나 기억했으면 좋겠다. 책 쓰기란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게 아니라 온전히 내가 해야 하는 싸움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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