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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넷맘 Jun 10. 2019

결심한지 십분 만에 다낭으로 떠나다.

<아들 넷을 데리고 무작정 떠난다는 것>


이끌리듯 떠났다. 나에게 여행은 도화선에 불이 붙어 타오르듯 갑자기 시작되는 것이었다. 책 한 권을 읽고 무언가에 홀린 듯 인도로 배낭여행을 떠났던 기억, 그 애와 눈이 마주쳐 무작정 남해로 가는 밤기차에 올랐던 기억, 몬트리올의 어느 섬을 자전거를 타고 일주했던 기억. 떠나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았다. 50리터의 배낭과 운동화. 청춘의 여행에서는 언제나 그렇듯 파릇한 싱그러움이 흘러나왔다.      



 

아이와의 여행은 생각만큼 싱그럽지가 않다. 모든 것은 통제 하에 있어야 하고 챙겨야 할 것도 만만치가 않다. 뜨거운 태양, 자외선 지수, 미세먼지, 아이의 낮잠시간까지, 고려해야 할 것들도 참 많다. 물놀이를 좋아하는 아이들 때문에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리조트를 벗어나는 일은 드물다. 수영장과 키즈 클럽을 전전하다보면 이곳이 어디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무언가에 이끌려 떠나는 여행은 이제 더 이상 내 인생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떠나고야 말았다. 남편과 마주친 찰나의 눈빛에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 하나에 기어코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아이와의 여행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망각한 채. 그것도 아들 넷을 데리고 무작정 떠난다는 것이 때로는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를 잊은 채. 나는 정말 오랜만에 내 안에 꿈틀대는 무언가를 쫓아서 따라 가보기로 했다.     




그날은 다름 아닌 생애 처음으로 강연을 했던 날이었다. 한 시간이 넘는 강연을 마치고 지하철에 오르니 가슴 속이 텅 빈 것 같은 공허함이 밀려왔다. 집으로 돌아와 수북이 쌓인 설거지를 이어갔다.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는 나의 일상으로 돌아왔는데 이상하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마침 새벽 비행을 마친 남편이 집에 도착했다.     




“떠나고 싶다...”

그냥 떠나고 싶은 날이 있다. 뭐라고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허전해진 가슴속을 무언가 생경한 공기로 채우고 싶은 날이 있다. 쓸쓸해진 눈망울에 생각지도 못한 낯선 거리 풍경을 밀어 넣고 싶은 날이 있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가 귓속을 가득 채우는 그런 거리를 정처 없이 거닐고 싶은 날이 있다. 그날이 내게는 그런 날이었다.

그냥 떠나고 싶은, 그런 날.


“떠나고 싶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술을 조심스럽게 떼었다. 시원함과 섭섭함이 오묘하게 섞여진 한숨을 조용히 뱉었다.     




“진짜 떠나고 싶어?”

토,일,월. 남편의 스케줄이 비어있는 운이 좋은 주말임을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남편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진짜 떠나고 싶어. 어디로든.      




남편이 비행기 티켓 잔여좌석이 있는지 부랴부랴 검색했다. 비행기 좌석만 남아있다면 무작정 떠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사실 남편이 파일럿이라고 하면 다들 비행기 공짜 티켓을 마음껏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항공사마다 복지규정은 다르겠지만 남편이 일하고 있는 항공사는 매년 직원에게 25장의 비행기 티켓을 제공하고 있다. (근속연수에 따라 다르며 세금은 부과된다.)

그러나 이 티켓은 비행기에 공석이 있을 경우에만 사용이 가능한데, 비행기에 공석이 생기는 경우는, 더욱이 여섯 식구인 우리 같은 대가족이 한꺼번에 탈 수 있는 경우는, 쉽게 발생되지 않는다. 그리고 가까스로 여섯 자리가 생겨난다 해도 느지막이 고객이 신규 구매를 하거나, 다른 직원이 먼저 대기를 하게 되면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된다. 항공사 직원의 가족의 경우 공항까지 갔다가 허탕을 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허다하다고 한다. 역시나 공짜는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닌 것 같다.     




“다낭 행 비행기 자리가 있네. 일곱 석 남았어. 일곱 석.”  

다낭은 많은 한국인 관광객이 찾는 곳이라 항상 좌석이 여유 없는 곳이다. 일곱 석은 공항에 간다고 해서 우리 가족이 모두 탈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는 규모도 아니다. 더구나 오후 여섯시 반 비행기다. 현재 시각은 세시 반. 지금 당장 출발한다고 하더라도 인천공항까지는 한 시간이 족히 넘을 것이다. 수속을 위해서는 최소 두 시간 전에는 도착해야 하고, 이 말은 지금 당장 떠나야 한다는 것.         




“어떻게 할래? 가려면 십분 안에 짐 싸서 나가야 돼.”

“해보자. 한 번. 못 타게 되더라도... 그냥... 어디로든 떠나보자.”      




미친 듯이 짐 싸기를 시작했다. 늘 그렇듯 아이들이 많은 우리 집은 최소한의 짐으로 이동을 하고는 한다. 남편과 나의 어깨에 백 팩 하나씩, 그리고 기내용 캐리어 하나. 어찌 보면 놀라울 정도로 단출해 보이는 규모다. 쌍둥이 유모차와 일인용 유모차를 끌어야 하기에 이보다 더 짐이 생긴다면 곤란하다. 큰애가 일인용 유모차 하나를 담당하고, 나는 백팩을 메고 쌍둥이 유모차를 끈다. 그리고 남편은 백팩에 캐리어를 맡는다. 이 안에 아이들의 기저귀, 수영복, 물안경, 옷가지, 썬 크림, 썬 캡 등을 차곡차곡 넣는다. 대부분이 아이들의 물건들이다.   



  

당신이 꾸미지 않는 사람이라 가능하지. 십분 안에 짐을 다 준비하다니.”

결혼 전에는 나도 외출을 위해서는 한 시간씩 소요되는 사람이었다. 딸만 셋, 딸 부잣집이었던 우리 집에는 기본적으로 옷이 많았다. 계절이 바뀌기 전에는 언니, 동생과 항상 동대문에 가서-당시 핫 플레이스였던 두타나 밀리오레–밤을 세서 옷을 사고는 첫차를 타고 집에 돌아온 적도 많다. 외출 전에는 무슨 옷을 입을지 1안, 2안, 3안까지 생각을 했고 패션쇼를 하며 어떤 스타일이 제일 나은지 언니, 동생에게 묻기도 했다. 가방과 신발도 스타일에 따라 항상 달라졌다. 대부분이 언니의 옷이라 절대 우선순위는 언니에게 있었지만, 언니가 잠들어 있을 때 몰래 언니 가방을 메고 나갔다가 혼난 적도 엄청 많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유치하도록 웃음이 나지만 밖에 있는 나에게 화가 난 언니가 연락을 해서 지하철 화장실에서 옷을 도로 바꾸어 입거나 가방을 바꾼 적도 있다.      




그러나 엄마가 되고나서의 외출 준비는 눈물 나도록 심플해졌다. 항상 같은 가방에, 편한 신발, 불룩 나온 배를 커버할 수 있는 붙지 않는 상의와 편한 바지, 그렇게 치마를 좋아하던 과거의 내가 바지만 입고 외출하는 지금의 나를 본다면 정말 놀랄 것 같다. 남편의 말대로 내가 여전히 꾸미는 여자였다면 여행준비에 시간이 곱절이상 들었을 것이다. 여행지의 분위기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드레스 코드를 바꾸기 위해 호텔방을 들어갔다 나오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예쁘게 치장한 누군가가 더 이상 부럽지가 않다. 수수하고 털털한 그대로의 나. 누군가가 입은 옷이 부럽지도 신경이 쓰이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내가 좋다.



    

“운이 좋으시네요. 한 번에 일곱 석이 남아있기 쉽지 않거든요.”   

차안에는 큰애의 미처 끝내지 못한 학교 숙제가 담긴 책가방과 어린이집에 들려 바로 태우느라 설거지가 되지 않은 세쌍둥이의 도시락 통이 남겨져 있다. 눈 한 번 질끈 감고 카운터로 향하자 직원이 보딩 티켓을 내민다. 정말 떠난다. 오늘 아침에 입은 강연을 위해 입은 흰 블라우스와 검은 바지 그대로, 큰애는 학교에 갔던 그 복장 그대로, 삼둥이는 어린이집에 갔던 그 복장 그대로, 우리는 그렇게 다낭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결론적으로 3박 4일간의 다낭 여행은 무작정 비행기에 오른 것 치고는 꽤나 만족스러웠다. 다낭에는 저렴한 숙박비용에 깔끔한 숙소들이 많았고 십만 원대의 가격에 수영장에 조식까지 제공을 했다. 렌터카가 기본적으로 허용되는 곳은 아니라 교통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어디서나 택시를 쉽게 잡을 수 있었고 우버와 같은 현지 앱을 통해 택시기사를 부를 수도 있었다. 또한, 향신료가 강한 베트남 음식 때문에 아이들의 식사가 걱정되기도 했는데, 다낭에 위치한 롯데마트에서 한국음식을 쉽게 구할 수 있었으며 한국인 관광객이 많은 곳이라 그런지 심지어는 카카오 톡으로 배달 한국 음식을 주문할 수도 있었다. (카톡으로 메뉴를 선택하면 배달하는 직원의 사진까지 보내주기도 한다.) 여행을 떠나 배달 한국 음식을 먹다니 신세계였다. 베트남까지 와서 한국 음식을 먹는다는 건 결혼 전에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제 여행의 모든 선택은 아이들을 기준으로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는 전에는 미처 꿈도 꾸지 못했을 여러 일탈들을 시도해보았다. 

우선은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떠났다는 것,

사람들로 붐비는 놀이공원(빈펄랜드)에서 하루를 보낸 것,

아이들의 자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호이안 야시장 거리를 정처 없이 방황해본 것.

논누억 비치에서 모래놀이를 하는 아이들 옆에서 한가로이 썬 배드에 누워본 것.

아직도 내게 아이들과의 여행은 하드코어이지만 조금씩, 아주 조금씩은 발전하고 있는 것 같다.



     

돌아오는 한국 행 비행기 안, 남편이 웃으며 나에게 조용히 한 마디를 속삭인다.

“이렇게 무작정 떠나는 여행은 더는 안 되겠어. 너무 힘들어. 당분간 해외여행은 생각하지 말자.”     



 

그러나 나는 안다. 우리는 다시 떠나고야 말거라는 걸.

언젠가는 우리가 수없이 상상했던 미국 서부 캠핑카 트립을 아이들과 떠나게 될거라는 걸.

온몸이 쑤시고 땀에 젖어도 언제 그랬냐는 듯 어디론가 향하게 되리라는 걸.



여행은 중독이다. 특히나 하드코어는 중독성이 강하다.     













호이안 밤거리에서, 우리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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