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넷맘 May 27. 2019

Move on, 그래도 삶은 계속되니까.

돌아가신 할머니가 건넨 위로.


열 감기였다. 도대체 언제 앓았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희미했던 열 감기라는 녀석이 아주 오랜만에 나에게 찾아왔다. 아마도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마지막으로 열 감기를 앓았던 기억은 첫 사랑에게서 결별을 선고받은 다음 날이었다. 일방적으로 결별을 건네받고 나서 나의 연락을 받지 않았던 그 애의 집에 무작정 찾아갔던 기억이 있다.      



네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게.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그 애의 집 앞 벤치에 홀로 앉아 하루 종일 그 애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한 겨울이었다. 매서운 바람이 온 몸을 비집고 피부 속으로 가느다랗게 스며들었다. 몇 시간이 지나자 발가락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몸이 꽁꽁 얼어버렸다. 그래도 기다렸다. 어느 덧 땅거미가 지고 사방이 어둠이 깔릴 때까지 무식한 기다림은 계속되었다.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새벽같이 없어진 내가 연락을 받지 않자 부모님께서 계속 전화를 했다. 결국 그 애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차갑게 얼어버린 얼굴로 집에 들어가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날부터 삼일 간을 끙끙 앓았다. 무서운 열 감기였다. 꽤나 아팠던 첫 사랑의 기억이었다.     






38.9도

체온계를 재어보니 열이 많이 올라있었다. 아이들에게 열 감기는 자주 찾아오는 것이었지만 내가 열이 오르긴 정말 오랜만이었다. 아이들의 귀에 꽂아 재곤 했던 디지털 체온계를 익숙한 듯 내 귀에 찔러 넣었다. 체온계 화면이 빨갛게 변해있다. 고열이라는 의미다. 빨간 화면을 보면 늘 심장이 떨린다. 아이에게 해열제를 많이 먹이는 것은 좋지 않기에. 밤을 세어 아이를 체온을 관찰해야 하기에. 40도 이상 체온이 오르면 응급실로 뛰어가야 하기에. 그런데 이번에는 아이들이 아닌 내가 고열이다. 내가 고열이라는 사실이 이상할 만큼 어색하다. 이마는 뜨겁고 머리는 무겁다. 어지러운 느낌이 지속된다. 결국 타이레놀을 한 알 집어삼킨다. 억지로 그렇게 잠을 청해본다.      



익숙한 곳이 나타났다. 대림동 낡은 주택의 꼭대기 층, 할머니 댁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이후로는 찾지 않았던, 어렸을 적 추억들로 가득한, 바로 그곳이다. 커다란 창을 통해 햇살이 거실을 비추고 있다. 거실에는 할머니가 웃고 계신다. 손뼉을 마주치며 웃고 계신다. 생전 자주 건네주셨던 따뜻한 미소다.    


  

할머니, 저 대학에 입학했어요.

할머니, 저 회사에 취직했어요.

할머니, 저 아이를 낳았어요.     



할머니는 항상 손뼉을 치며 기뻐하셨다. 내가 잘해도, 잘하지 못해도, 실수해도, 두려워도, 할머니는 나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응답해주셨다. 개구쟁이 세쌍둥이를 할머니의 가슴팍에 안겨드렸을 때도 할머니는 몸이 아프신 상태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웃으시며 손뼉을 치셨다.


아들 넷을 혼자 어떻게 키우니. 내가 조금만 젊었더라면 아이들 키우는 거 도와주었을 텐데. 미안해.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할머니는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건강하셔야 해요. 조금만 더 버티셔야 해요.

나는 울먹이며 할머니에게 이야기했다.

아니야. 나는 늙어서 죽어야 돼. 그게 맞는 거야. 

할머니는 웃으시며 대답했다.


결국 눈물을 흘리며 나는 할머니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응석부리는 어린 아이처럼. 삼십대 중반의 아줌마가 되어서도 나는 할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늘 그랬듯 할머니 앞에서 나는 어린 아이가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리운 따뜻한 할머니의 가슴.     



꿈에서 할머니는 한참을 웃으셨다. 박수를 치시며 기뻐하셨다. 그리고는 할머니 손을 닮은 퉁퉁한 내 손을 잡아주셨다. 나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아마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걸 꿈에서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다시 마주잡은 할머니의 손이 너무 따뜻해서, 묵묵히 안아주시는 당신의 품이 너무나도 그리워서 눈물이 났다. 한참을 흐느끼다 잠이 깼다. 잠이 깨어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일어나서도 나는 계속 울었다.     



조막만한 손들이 나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린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이들이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이들의 따뜻한 눈동자는 할머니의 눈빛과 닮아있다. 조건 없는 사랑. 절대적인 지지. 엄마를 바라보는 네 명의 반짝이는 눈망울을 바라보며 깨닫는다. 여기, 나를 응원하는 사랑스러운 나의 아이들이 있다고. 내가 실수해도 때로 넘어져도 무조건 나를 바라볼 나의 아이들. 세상에 둘도 없는 나의 편이 나에게는 이렇게나 많다고.



최근 힘든 일을 겪었다. 소중한 곳을 쫓기듯 떠나야 했고 생각지도 못한 오해를 받아야 했다. 나에게 지난 몇 년 동안 쌓아왔던 인간적인 신뢰마저도 존재하지 않았던 건지 자괴감이 밀려왔다. 심신은 피폐해졌고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그리고 그것은 마침내 열 감기라는 촌스러운 형태로 나를 한 번 더 괴롭혔다.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을 정도로 망가진 내가 한심했다. 이제는 나를 믿어줄 누군가가 더 이상은 존재하지 않을 거라며 불안해했던 내가 한심했다.     






“호국원으로 가자.”

눈물이 조금씩 잦아들자 나는 남편에게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는 호국원으로 가자고 이야기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이들을 데리고 오기는 처음이었다. 25구역에 도착해서 사다리에 올라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곳을 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영정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속의 할머니는 웃고 계셨다. 꿈 속 그 모습처럼. 나에게 안녕을 건네면서. 나에게 위로를 건네면서.

한참을 흐느끼다 눈을 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파란 하늘이 눈부실 정도로 맑았고 푸릇푸릇한 여름내음이 코끝을 스쳤다. 뒤를 돌아보니 네 명의 아이들이 해맑게 웃고 있다. 파란 하늘만큼이나 눈부신 미소를 머금은 채.     




Move on.

그래도 삶은 계속되니까.











할머니, 귀여운 나의 할머니♡

아이들과 찾은 호국원..

앞으로 더 자주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뵈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촌지는 살아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