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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넷맘 Jun 17. 2019

그들은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

세상에 그 누구도 누군가를 무시할 그 어떤 권리는 없으니까.



눈물이었다. 방금 내 다리 위에 떨어진 차가운 촉감은 다름 아닌 눈물이었다. 그것이 살결에 떨어지자마자 나는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어찌해야 할까, 난감했다. 지금 내 다리를 주무르고 있는 마사지사가 울고 있다니.     



  

일 년에 한 번 방문을 할까, 큰마음먹고 방문한 타이 마사지 숍이었다. 사전에 쿠폰을 다운로드 받아 90분에 5만 원으로 할인을 받았다. 할인된 가격이 아니면 쉽게 방문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평소 검소한 성격이기도 했고, 더욱이 나를 위해 무언가를 지출한다는 것이 엄마가 되고 나서는 그리 익숙한 그림이 되지 못했다.  



    

옷장에 있는 대부분의 옷가지들은 결혼 전 신나게 입었던 그러나 지금의 내 몸에는 맞지 않는 것들이다. 버리는 것에도 익숙하지 않아 이사를 갈 때마다 입지 못하는 옷가지들을 끌고 다녔다. 옷가지는 산더미처럼 쌓여있지만 그중 마땅히 입을 만한 옷은 몇 벌도 채 되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시간이 날 때면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가 아이쇼핑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러나 막상 결제를 하는 순간에는 이것저것 핑계를 붙여가며 장바구니에서 옷을 하나둘 삭제했다.


이 옷은 너무 과해. 이 옷은 입고 나갈 일도 없을 거야. 이 옷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결국 실컷 아이쇼핑만 하다 인터넷 창을 닫아버렸다. 늘 그렇듯 교복이 되어버린 옷가지 몇 개를 돌려 입는 게 일상이 되었다. 언제부턴가 놀랄 정도로 나는 자신을 위한 소비에 인색해져 있었다. 그렇게 지독해진 내가 정말 오랜만에 온전히 나를 위해 소비하기로 결심하고 향한 곳 바로 이곳이었다.    




질끈 감은 눈을 슬며시 떠보았다. 마사지사의 동그란 콧날에 대롱대롱 눈물이 맺혀 있었다. 후회가 밀려왔다. 큰마음먹고 방문한 마사지 숍인데, 오늘은 정말 편안하게 몸을 풀고 싶었는데 왜인지 일이 복잡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돌이켜보니 그녀가 시작부터 말이 많았던 것 같았다. 그녀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주지 말걸, 이기적인 생각이 마음속에 몽글몽글 피어났다.     




갑자기 그녀가 가빠진 호흡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들어 천천히 나를 바라보았다. 두 눈에는 여전히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있었. 갑자기 그녀가 말을 이어나갔다.


“남편은요. 죽었어요. 일 년 전이었죠. 택시 운전사였는데 사고가 나서 세상을 떠났어요. 저에게는 아이가 둘 있어요. 큰애는 열다섯 살 남자아이구요. 둘째는 이제 다섯 살이 된 딸이에요.”     




그녀의 대답은 나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었다. 사실 내가 기대했던 그녀와의 대화의 범위는 아주 좁은 스펙트럼 안의 것이었다. 아주 일상적인, 별 볼일 없는, 흘려들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대화라고 정의하기조차 부끄러운 대화, 서로가 서로에게 단지 입을 열어 단어를 뱉는 것 그 이상의 감정은 섞여있지 않은 자연스럽고 무미건조한 대화. 나는 그녀에게 그런 대화를 기대했다. 아님, 우리에게 그 어떤 대화도 일어나지 않기를 기대했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 나는 그러한 생각을 품었다. 태국 사람 치고 살집이 있는 그녀를 본 순간 나는 그녀의 체격을 보며 오늘의 마사지는 제법 시원할 거라는 기대를 품었다. 90분간 내 몸을 시원하게 해 줄 사람, 그녀에게 그 이상의 관심은 없었다. 그녀의 삶 안에도 나와 같은 삶이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제 고향은 치앙마이예요.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이죠. 하루아침에 가장이 될 줄은 몰랐어요. 슬프고 힘들었지만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이 보였어요. 아이들 학비를 벌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어요.”


그녀의 고향은 치앙마이라고 했다. 남편과 더없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왔던 그녀는 하루아침에 집안의 가장이 되어야 했다. 아이들의 학비를 벌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이는 마흔을 훌쩍 넘었고 일을 쉰지도 오래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소개로 마사지를 배웠다. 태국의 한 마사지 숍에 취업을 해 돈을 벌었지만 큰돈을 벌기는 어려웠다. 결국 한국으로 오기로 결심을 했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어린아이 때문에 오래 머무를 수는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두 달째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에 무언가 먹먹한 것이 느껴졌다. 이제야 내 앞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의 그녀가 보였다. 동시에 그녀 앞에 있는 나도 보였다. 하루아침에 집안의 가장이 된다면 나는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 엄마일까. 내가 누리고 있는 지금의 행복이 누군가에게는 부여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는 절실한 일상은 아닐까. 서투른 영어로 전해진 그녀의 삶 속에는 내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힘듦과 처절함이 스며있었다.


갑자기 다낭의 길거리에서 만난 한 아이가 떠올랐다. 큰애와 동갑인 아이는 길거리에서 강물에 띄우는 초를 팔고 있었다. 맨발에 남루한 옷가지를 걸친 채 능숙한 한국어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아이의 능숙한 한국어에서는 생존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살아남아야만 하는 아이, 아주 어린 나이부터 살아남아야 하는 법을 배워야만 하는 아이의 삶은 고단해 보였다. 아이는 능숙한 한국어에 여유 있는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그것은 열 살의 아이의 얼굴이 아니었다. 너무 능숙해서, 너무 그 미소가 여유 있어서, 나는 설명할 수 없는 애잔함을 느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야기를 건네도 대답을 잘 안 해 줘요. 그저 세게, 더 세게 주무르라는 말만 하죠. 때로는 무시하는 눈빛으로요.”     


분명한 목적성이 깔려있는 이해관계적인 만남. 점원과 손님, 텔레마케터와 고객, 경비원과 주민, 회사 상사와 직원...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한다. 이해관계의 모든 접점에서 사실 상대에 대한 지나친 감정과 관심은 불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소한의 예우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그 누구도 누군가를 무시할 그 어떤 권리는 없으니까. 지금 내 앞에 있는 누군가도 사실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더없이 소중한 가족이니까.      




마사지가 끝나고 나는 그녀에게 팁을 내밀었다. 한국에서 굳이 팁을 건넬 필요도 의무도 없지만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보탬이 되고 싶었다. 아마 평생 내가 내민 팁 중에서 가장 큰 금액이었다. 그녀의 손을 잡으며 힘내라고 이야기했다. 조금만 더 견뎌서 고향으로 잘 돌아가라고 말했다.








며칠 전, 한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 대기 량이 많아 기다림이 길어지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따르릉. 상담원과 통화가 연결되는 소리와 함께 자동 멘트가 흘러나왔다.     


“지금 통화하게 될 이 직원은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          


익숙한 멘트였지만 귀를 기울여 들어보기는 처음이었다.  자동 멘트를 들으며 불현듯 얼마 후 고향으로 돌아갈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두 팔 벌려 다섯 살 딸을 품에 안은 채 활짝 웃고 있을 그녀의 미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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