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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넷맘 Jun 13. 2019

에세이 작가의 아주 흔한 고민

글은 감정을 담는 정제된 그릇이 되어야 한다.


예상했던 반응은 아니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부모님의 반응은 내가 생각했던 것의 정반대였다. 책을 한 권 내었다고 가족들에게 축하를 받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지나온 힘겨운 시간들을 조금 들여다보고 이해받고 싶은 마음,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나의 욕심이었다.    



 

“여보, 큰일이야. 아버님께서...”

이른 아침부터 남편이 자고 있던 나를 깨웠다. 다짜고짜 나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가족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에 웬일인지 아빠가 장문의 글을 올려놓았다. 글을 읽어 내리는 내내 막막함이 밀려왔다.     




“어느 가정에나 집안의 말 못할 이야기가 있다. 어떻게 얼굴을 들고 이 세상에 누굴 만날 수 있단 말인가. 부모에게 자기 자신들만의 인생을 사시는 분이라니. 노력해봤자 본전도 되지 않는다. 이제는 네가 말한 대로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우리대로 살고 싶다...”   

내 책을 읽고 아빠가 올린 장문의 글이었다. 글을 읽는 내내 말 못할 감정들이 쏟아져 나와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불안함, 죄송함, 섭섭함, 분노가 뒤섞여 울컥하고 목구멍에 차올랐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눈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 이 책에 이런 내용이 실리게 될 예정인데 엄마가 먼저 읽어봐 주었으면 좋겠어.”

원고를 퇴고하면서 나는 사전에 엄마에게 이런 부탁을 한 적이 있다. 나의 첫 책에는 대학시절 아빠 회사가 부도가 났던 일을 비롯해 어린 시절 아빠에 대한 상처, 그리고 육아를 하면서 느낀 엄마에 대한 섭섭함이 담겨있었다. 수십 번 퇴고를 하면서 민감한 부분은 빼고 거친 표현은 완곡하게 바꾸며 혹시라도 예민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 글을 다듬고 또 다듬었다. 부모님을 부정적으로만 풀어 내리지는 않았다. 이런 일이 있었지만 그 일을 통해 뒤늦게 깨달은 아빠에 대한 사랑, 엄마에 대한 고마움을 함께 담았다.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다 뺄 수는 없었다. 그 이야기들이 결국 나라는 사람을 의미하기도 하니까. 그게 어쩌면 에세이라는 것이니까.    



 

엄마에게 책 안에 이런 내용이 담길 거라는 이야기를 전하며 꼭 원고를 눈으로 읽어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엄마는 손 사레를 치며 극구 내 부탁을 거절했다.      

“나는 어떻게 표현되어도 괜찮아. 그냥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 표현하고 싶은 대로 쓰렴.”     

그날 엄마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내가 안일했는지도 모른다. 아님, 어려서부터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지내온 어색한 아빠에게  내 원고를 읽어달라고 차마 손 내밀지 못한 게 잘못이었던 것 같다.

우리의 온도는 극명했고 서로는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아빠가 쓴 장문의 글을 읽고 나서 나는 한참을 울었다. 이 책에는 내가 아들 넷을 독박육아하며 겪었던 처절했던 시간들이 담겨 있었다. 일반적인 부모라면 차마 알지 못했던 자식의 힘듦을 가장 먼저 바라봐주고 보듬어주고 싶지 않을까. 실제로 부모님보다 먼저 내 책을 읽은 이모는 나에게 장문의 글을 보내왔었다. 너무 고생했다고, 안쓰럽다고, 대견하다고 이야기하며 책을 읽으면서 이모가 아이를 키웠던 시절이 생각나 몇 번이고 울었다고 했다. 이모는 내가 바라던 헌신적인 엄마였다. 아빠회사의 부도로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자 부모님은 이모네에 우리 세 자매를 6개월간 맡겼다. 이모가 심성이 착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엄마로서의 이모를 가까이서 본 적은 처음이었다. 그때 나는 이모가 내 엄마였으면 어땠을까하는 철없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아빠가 네 책을 오십 권이나 구매해서 지인들에게 나눠줬대. 그저 네가 책을 낸 게 대견하고 자랑스러워서.”    

책이 나오자 아빠는 나에게 말하지도 않고 책을 오십 권이나 주문했다고 한다. 책이 도착하자 읽어보지도 않고 기쁜 마음에 지인들에게 열권을 먼저 돌렸다. 책을 읽은 아빠의 친구는 아빠에게 이런 내용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주었고 놀란 아빠는 그제야 책을 열어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성격이 급한 아빠는 문제가 된 그 페이지만 읽고 화가 나서 장문의 글을 보냈던 것이다. 언니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또 한 번 복잡한 감정들이 내 가슴속을 헤집어 놓았다.

불안함, 죄송함, 섭섭함, 걱정, 그리고 딸을 향한 아빠의 사랑...    



 

결국 부모님과 다시 마주하기까지 두 달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화가나 책을 치워두었던 아빠는 어느 날인가부터 퇴근하고 집에만 오면 책을 조금씩 다시 읽으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떤 날은 책을 읽으며 껄껄 웃으시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눈물을 보이셨다고 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어느 날 아빠는 지인들에게 다시 책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십 권을 주변에 다 나눠주고도 여전히 모임이 있을 때마다 서점에 들려 아직도 내 책을 구매해 나눠주신다.      




아빠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는 어릴 때나 커서나 제일 힘든 딸이야.”     




그 일은 내게 평생 붙어있던 힘든 딸이라는 꼬리표를 더욱 완강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일은 나에게 미처 보지못했던 여러 단면들도 발견하게 했다.

아빠라는 사람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깨달았고,

헐레벌떡 서점으로 뛰어가 책을 사들고 지인들에게 나눠주었던 아빠의 마음에는

이모가 보내온 장문의 카톡보다 더 진한 사랑이 담겨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사랑을 뒤늦게 깨달았어도 아빠처럼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는 바보 같은 나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에세이라는 장르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운이 좋게 책을 출간했다. 나는 글쓰기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사람이었다. 아들 넷 육아로 인해 십 년을 근무한 직장을 떠나 홀로 아이들을 독박 육아하며 그 힘든 시간들을 견디기 위해, 밑바닥까지 추락한 자존감과 가슴속에 차오른 응어리들을 어딘가에 쏟아내기 위해, 나는 무작정 글을 써내려갔다. 난생 처음 글쓰기라는 것에 대해 칭찬을 받았다. 거침없이 글을 썼고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문장 하나, 가슴을 옥죄는 문장 하나를 놓치지 않고 글로 옮겼다. 글쓰기라는 것을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내 감정을 옮겨 담는 그릇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글쓰기 일 년 만에 책을 계약했다. 정말 운이 좋았다.     




지난겨울, 브런치에 아이들을 데리고 택시에 올랐다가 곤란을 겪은 한 에피소드를 올린 적이 있다. 조회 수가 엄청났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동시에 악플도 달렸다. 한 사람은 자신을 현직 택시기사라고 소개하며 이런 글을 볼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적었다. 그 댓글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스트레스가 되다니. 너무나도 가슴 아팠다. 힘들게 쓴 글이었지만 그 글을 바로 삭제했다. 그 일은 나에게 글의 힘에 대해 깨닫게 했고, 앞으로 어떤 글을 써야할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많은 시간 고민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내가 책을 쓴 이유는 한때의 나처럼 힘든 누군가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기 위해서였다. 따뜻한 글을 쓰고 싶었다. 적어도 내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일은 없기를 바랐다. 그러나 책을 한 권 출간하고 글을 쓰면 쓸 수록 글쓰기가 더욱 어렵게 느껴졌다.

사람마다 저마다 가진 온도가 다르기에 그 온도를 헤아리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정일 것이다. 그렇지만 조금만 더 신중해지자고 다짐한다. 글이 때로는 날렵하고 첨예한 칼이 되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기에. 글은 감정을 담는 그릇이지만, 나아가 정제된 그릇이 되어야 하기에.


 

   

누가 에세이를 쉽다고 했던가. 에세이는 픽션이라 더 날카롭다. 푸른 서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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